[김길웅의 借古述今] (214) 접막부리 제 가늠 모르면서 싸움질한다

* 접막부리 : 뿔이 꺾이거나 벗겨져 망가진 소
* 몰르멍 : 모르면서
* 찔레질혼다 : 싸움질한다

뿔은 소의 무기다. 점잖은 소도 뿔로써 겉으로 위의(威儀)를 마냥 뽐낸다. 황소는 몸집이 우람한 데다 큰 뿔을 가지고 있어 주위를 압도한다. 한눈에 질려 꼼짝하지 못한다. 더욱이 앞발로 땅을 차며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 숨을 죽일 판이다. 황소가 성나면 그렇게 무섭다. 혹여 상대가 덤벼들거나 하면 달려들어 뿔로 공격해 기를 죽여 놓는다. 느리고 미련해 보이지만 자기방어엔 물러서는 법이 없다. 소를 우직하다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접막부리’란 뿔이 꺾였거나 벗겨져 형편없이 망가진 부상당한 소를 말한다. 한데 저에게 유일무이한 무기인 뿔이 성하지 못하면서도, 그것도 잊고 싸움질을 한다면 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승산이 있겠는가. 하지만 짐승도 성질이 각양각색, 덤벼들며 오히려 싸움을 걸기 일쑤인 그런 소가 있다.

뿔이 성치도 못한 소가 제 주제 파악도 못하고 천방지축 날뛰는 모습은 가관일 것이다. 불리할 걸 모르니 짐승이겠으나, 짐승도 만용(蠻勇)을 타고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보나 마나 결과는 뻔하다. 자멸(自滅)이다. 자초한 낭패다.

공격적이라야 용감한 것이 아니다. 참다운 용기란 진용을 의미한다. 출처=픽사베이.
공격적이라야 용감한 것이 아니다. 참다운 용기란 진용을 의미한다. 출처=픽사베이.

사람도 한가지다. 자신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다. 힘도 없으면서 싸움을 걸어 말썽부리는 행태가 그것이다. 공격적이라야 용감한 것이 아니다. 참다운 용기란 진용(眞勇)을 의미한다. 부당한 일을 강요하는 자에게, 혹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자행하는 이에게 저항하는 것, 그게 용기다. 불경에 “무소의 뿔로 용맹정진하라”는 말이 담고 있는 함의(含意)가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을 공격과 방어라는 투쟁적 시각으로만 볼 것이 결코 아니다. 짐승도 가만있는데 건드리는 상대가 있어 싸움이 시작되는 법이다. 이 말에 등장하는 접막부리처럼. 그렇지만 않으면 싸울 일이 없는 게 그들의 세계다.

사람에 빗대더라도 그 사람의 개성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갖고 있는 고유의 본성은 간직하되, 남에게 함부로 하는 언행을 삼가자고 자신을 경계하려는 것. 이만한 절제는 세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기본 덕목이 돼야 할 게 아닌가.

그런 기본 도덕이 몇몇 사람의 부질없는 경거망동으로 무너지는 게 안타까운 세상이다. 그것을 풍자한 것으로 그 행간을 읽으면 좋다.

자신을 안다면 섣부른 공격으로 불화나 분쟁을 일으키는 무모한 짓은 않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자 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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