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제주아트플랫폼 핵심은?] ① 문광위 주장, 조건·활용·비용 모두 현실과 떨어져

제주아트플랫폼 사업이 해가 지나도 첩첩산중이다. 감사위원회, 검찰 고발뿐만 아니라 타당성 검토위원회 결과가 나왔지만 제주도의회를 필두로 사업 반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왜 제주아트플랫폼을 추진하는지’ 본질을 놓친 부수적인 비판이라는 우려가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높아지는 상황. [제주의소리]는 세 차례에 걸쳐 제주아트플랫폼에 대한 주요 쟁점을 살펴본다. 

“다른 문화예술계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170억원이면 그 장소(재밋섬) 말고, 야외공연장도 있고 문화예술인들이 활동하기 좋은, 주차하기도 쉽고, 그런 곳에 땅을 사서 건물을 신축하는 게 더 좋겠다. 그런 의견들이 많아요.”

- 2월 26일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문경운 위원

“지금 그 건물이 지하 1~3층은 주차장인데 그런 지하 시설 필요 없습니다. 지금 5~6층 영화관 하는데 영화관은 그대로 쓰려고 하고 있잖아요. 영화관 굳이 쓸 일이 뭐가 있습니까? 민간 영역은 민간 영역에 맡겨야죠. 결국 재단 사무실, 연습공간, 이런 것들 아니겠습니까?”

- 같은 회의, 안창남 위원장

“우리가 진솔하게 왜 이 공간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 또한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안 돼 있는 것 같고…”

- 같은 회의, 박원철 위원

[기사 수정=3월 22일 오후 9시 57분]

지난 2월 26일 도의회 제주문화예술재단 업무보고에서는 ‘제주아트플랫폼(아트플랫폼)을 원도심이 아닌 다른 장소로 옮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반기 내내 이어진 절차적인 논란에 이어 입지도 문제 삼은 것이다. 하지만 도의원들의 지적은 사업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다,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제주아트플랫폼을 원도심이 아닌 다른 장소로 옮기라’는 주장에 대해 사업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다른 장소? 주차장? 비판 방향 자체 어긋나

아트플랫폼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한문위)가 추진하는 ‘공연예술연습공간 조성 및 운영 사업’(공연예술연습공간 사업)을 기초로 한다. 공연예술연습공간 사업은 공연예술인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에 연습 공간을 빌려주는 사업이다.

한문위가 누리집 ‘사업공모’ 게시판에 올린 공연예술연습공간 사업 조건을 보면 ‘자치단체 등이 소유한 공공건물 또는 장기임대 가능한 건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공연예술연습공간 조성에 필요한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한다. 설계, 시공, 감리, 비품 구비 등에 필요한 비용이다. 즉, 자치단체가 소유한 기존 공공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공연예술 연습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사업의 필수 조건이다.

여기에 ‘입지 조건 및 현황’을 보면 ‘시설 접근성’을 공간이 가진 중요 요건으로 보고 있다. 시설 접근성은 세 가지 필수 사항이 있는데 ▲대중교통까지의 거리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지와의 거리 ▲주변 문화시설 및 문화지구 존재 여부 및 거리 등에 대한 정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연습공간 선정 기준을 보면 대중교통, 도심지 접근성이 필수 사항이라고 명시돼 있다. 출처=한문위 누리집.

결국 “땅을 사서 신축”하거나 “연습공간”에 부정적인 도의원들의 지적은 기초적인 사실 관계부터 틀린 셈이다. 아트플랫폼이 추진하는 사업 방향 자체가 ▲자치단체 소유 유휴건물 ▲대중교통 근접 ▲도심지 인접 ▲인근 문화시설 존재 ▲연습공간 마련 같은 조건과 부합해야 한다.

공연예술연습공간 사업을 지원받아 연습장을 운영 중인 타 지역 사례를 봐도 상당수가 버스, 지하철 등으로 찾아가기 용이한 장소를 선택했다.

# 돈이 있나, 땅이 있나

백번 양보해 ‘리모델링이 아닌 신축’이라는 도의원들 지적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공유지라면 적절한 부지를 찾기 힘들고, 사유지를 매입한다면 막대한 소요 예산을 마련할 방법이 막막하다.

참고할 만한 사례는 ‘제주문학관’이다. 제주문학관은 제주시 도남동 1218-3번지에 지상 4층 규모로 면적은 3212㎡(2필지)다. 지난해 1월14일 기공식을 열고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 책정 예산은 97억원이다. 제주문학관 전체 부지는 공유지로, 토지 매입 비용은 들지 않았다.

애초 추진 과정에서 제주문학관 위치는 접근성을 고려해 제주시 원도심을 1순위로 뒀다. 후보지를 100개 이상 추리고, 원도심 반경 5km 안에 포함하는 후보지를 또 골라냈지만 결국 찾아낸 곳이 연북로 하천 옆 현재 위치다.

마땅한 부지를 물색한 끝에 연북로 도로 옆을 선택한 제주문학관(붉은 색). 출처=네이버 지도.  

제주문학관 건립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예술인 A씨는 “전시실을 비롯해 수장고, 대강당, 세미나실, 북카페까지 필요한 시설을 갖출 빈 공유지를 시내권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민간 부지도 알아봤지만 부지 매입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외곽지로 나가도 민간 부지 가격은 마찬가지였다. 제주도 담당자와 리스트를 보고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특히 “문학관은 김태환, 우근민, 원희룡 도정을 거쳐 10년도 넘게 걸렸다. 만약 아트플랫폼을 부지를 구해 새로 짓는다고 가정하면 과연 얼마나 걸릴까. 부동산 시세가 더 상승해 부담이 클 것”이라면서 “아무리 짧게 추진해도 5년 이상이 소요될 텐데, 과연 지금 문광위 소속 도의원들이 책임질 수 있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방선거인데 명확한 대안도 없이 '바깥에 아트플랫폼을 지으면 된다'는 도의원들은 스스로 발언이 무책임하지 않은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만약 현재 아트플랫폼 계획이 무산되면 적어도 10년은 재추진하기 힘들 것”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 현실성 없는 아트플랫폼 신축 계획

최근 제주도는 세수 감소, 코로나19 대응 등을 이유로 긴축 재정을 공식화한 상태다. 미술관 작품 구입비마저 대거 삭감할 만큼 재산 확보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외곽지 신축”을 거론하는 문광위 도의원들의 비판이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재밋섬 건물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배경은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바로 국비 지원 때문이다.

한문위는 지난해 공연예술연습공간 사업 기준, 리모델링비로 최대 17억원을 지원한다. 여기에 5년간 공간 운영비를 추가 지원한다. 연차별로 금액이 줄어드는데 한해 최대 지원 운영비는 1억3000만원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 국무조정실 등이 추진하는 공모 사업에 참여해 최대한 국비 지원을 이끌어내 부담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거의 지방비에 의존해야 하는 신축 사업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도정 차원에서 핵심 문화정책으로 과감히 예산을 투입해 새로운 아트플랫폼을 짓는 상상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소소한 보조금 사업까지 칼질하며 살림살이를 마련하는 최근 재정 상황을 비춰볼 때 신축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건축사 B씨는 “최근 마을회관 하나를 새로 짓는 공사에도 비용이 평당(3.3㎡) 800만~900만원이 소요된다. 아트플랫폼은 공연예술 연습장이기에 각종 추가 시설을 고려할 때 신축할 경우 건축비만 평당 1500만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B씨는 “새로 건물을 지으면 필요한 용도를 원하는대로 갖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막대한 비용이 관건이다. 그에 비해 리모델링은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물론 기존 공간을 용도에 맞게 바꿔야 하기에 100% 원하는 대로 채우기는 힘들다. 활용하는데도 많은 고민이 필요해보인다”며 지금은 아트플랫폼 활용을 위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데 무게를 실었다.

한문위는 공연예술연습공간 사업을 위해 공연예술 장르별 기준에 맞는 유효 천정고, 면적을 정해두고 있다. 일반적인 사무 공간, 주택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다. 아트플랫폼이 들어설 재밋섬 건물은 극장, 놀이시설 등으로 활용돼 천정고를 충족시킨다는 평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정해둔 공연예술연습공간 사업의 공간 기준. 출처=한문위 누리집.

# 공연연습 시설이 왜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무엇보다 아트플랫폼을 두고 보여준 제주도의회 태도는 '목적을 상실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높다. 왜 아트플랫폼이 필요한지, 왜 제주에 공공공연연습장이 필요한지 공감하지 않고, 감사위원회·검찰 판단까지 끝난 과정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이다. 공연연습공간, 독립영화관 등 아트플랫폼의 필요성을 낮게 평가한 지난 2월26일 업무보고가 대표적이다. 

연습공간의 필요성은 두말하면 입 아픈 실정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0 공연예술실태조사’를 보면 제주지역 공연단체 가운데 67.1%가 연습실을 임대한다고 대답했다. 이는 광역자치단체 평균인 44.4%를 뛰어넘고, 전국에서도 가장 높았다.

문제는 공연단체 수는 늘어나지만 갈수록 연습실은 부족해지고 있다.

제주지역 공연단체는 ▲2015년 21개 ▲2016년 24개 ▲2017년 25개 ▲2018년 32개▲2019년 35개로 꾸준히 늘어났다. 연도별 연습실 임대 비율을 살펴보면 같은 기간 41.3%→64.7%→46%→77.4%→67.1%로 나타났다. 2015년과 2017년은 소유 비율이 임대를 앞섰지만 전체 흐름으로 보면 임대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공연 예술을 꿈꾸는 창작자들은 조금씩이라도 나오지만, 역량을 쌓을 수 있는 핵심 인프라인 연습 공간은 계속 부족한 실정이다.

제주 공연단체들의 연습실 이용 실태. 임대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출처=예술경영지원센터.

제주에서 독립영화를 전담해 상영하는 영화문화 공간, 일명 시네마테크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건물 내 극장을 시네마테크 용으로 탈바꿈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복합 공연장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다. 풀뿌리 제주 영화인들이 가장 시급하게 요구해온 공간이 바로 시네마테크다. 제주에서 열리는 많은 영화제들이 때마다 상영관을 옮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아트플랫폼의 기본 틀을 ▲공공공연연습장 ▲소극장 ▲독립영화관 ▲커뮤니티공간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여론 수렴을 통해 정한다는 입장이다. 제주 예술계에 꼭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갖춰 나가겠다는 방향인데, 도의회의 대응은 현장과 크게 동떨어진 듯 보인다.

제주 예술단체 임원을 역임한 C씨는 “공공공연연습장, 독립영화관, 소극장 같은 시설이 제주에 얼마나 필요한지 현장에서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도의원들의 모습을 보면 예술하는 입장에서 정말 야속하기 그지없다. 많은 예술인들이 분개하는 상황”이라며 “아트플랫폼이란 본질은 사라지고 절차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물론 지난 과정들이 다소 선명하지는 않았다. 성급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미 감사위원회의 판단을 거치지 않았느냐. '문화'를 달고 있는 상임위에 속한 도의원들이 왜 아트플랫폼이 필요한지 문화적인 판단은 전혀 하지 않는다. 현장 예술인들의 의견을 들으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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