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연구소, 구술집 '4.3과 여성' 두 번째 발간

제주4.3연구소가 4.3시기를 살아낸 제주 여성들의 이야기 ‘4.3과 여성2-그 세월도 이기고 살았어’(도서출판 각)를 펴냈다. 이번 책은 지난해 ‘4.3과 여성-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에 이은 두 번째 구술집이다.

‘4.3과 여성2’에는 10대 소녀 시절 4.3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거나 겪었던 여성 6명이 어떻게 그 삶을 뚫고 나갔는지를 ‘날 것’으로 보여준다. 

연구소는 “무엇보다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4.3과 당시의 삶, 이후의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4.3이 남긴 트라우마, 고통을 이겨낸 삶의 시간 속에 그들의 정신사를 추출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봉영(1934년생)은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해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귀향했다. 마을 이장이던 아버지를 1950년 예비검속으로 잃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고문 후유증으로, 막내 동생은 굶어 죽었다. 6남매의 맏이였던 그는 소녀가장의 삶을 살아야 했다. 가난보다 힘들었던 폭도 가족’이라는 누명. 아버지의 ‘빨간 줄’을 벗기 위해 19살에 여군에 지원했다.

김을생(1936년생)은 제주읍 영평리가 고향으로 4.3당시 열네 살이었다. 집이 불타고 마을이 초토화된 현장을 직접 겪어야 했으며, 와중에 농사짓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참혹한 고문을 마주해야 했다. 이후 아버지는 대구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됐다. 4.3 피난처에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 남동생을 보살펴야 했다. 2021년 아버지에 대한 4.3행방불명인 재심 재판을 신청,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양농옥(1931년생)은 제주시 정실마을에서 살다가 9살에 부모가 일하는 일본으로 건너가 16살에 귀향했다. 4.3시당시 아버지, 언니, 형부, 조카를 잃었다. 아버지가 남긴 항아리에 감춘 돈을 밑천 삼아 소녀가장으로 여동생 둘과 살아갔다. 1960년 대 말 제주를 떠나 성남개발단지 천막 생할을 하며 노점 야채상을 시작으로 하숙, 공장일 등을 하며 자식 4명을 키웠다.

송순자(1938년생)는 4.3당시 용강리에서 살았고 큰 아버지, 아버지가 행방불명되고 삼촌 등 친인척 여럿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었다. 6남매가 흩어져 삶을 살았고, 어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성담 쌓기에 동원됐으며, 어머니와 함께 가족의 삶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새끼 꼬아 팔기, 양복점 기술자 등 온갖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나갔다.

임춘화(1947년생)는 대정 출생으로 4.3당시 행방불명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재가로 인해 어린시절 친척집에 맡겨졌다. 자신의 이름 대신 '양옥이 사촌 누이'라고 불리며 "감자떡 비누가 고구마로 보이는" 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2021년 ‘징역 7년, 목포형무소’ 수형인명부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아버지의 군법회의 재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영자(1941년생)는 해방 전 어려서 일본에서 가족과 함께 귀향했다. 4.3을 만나 7살에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9살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평생 노동 속에서 살아야 했다. 열네 살에 모슬포 신영물에서 부추, 갈치장사, 열여덟 살에 등짐지고 동네 여인들과 옹기장사에 나서기도 했다. 70여년 동안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그는 지난 2020년 제주국제공항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유전자 감식을 통해 아버지와 상봉했다.

허영선 소장은 “죽을 것 같은 세월을 버티고 견뎌낸 제주4.3의 여성들은 삶이란 이런 것이다를 말없이 보여준 존재들이었다.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혹한을 이겨내고 살아낸 당당하고 위대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