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향한 시의 절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향한 시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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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95) 마웅 타 노에·마웅 스완 이 엮음, 임동확 옮김,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 문학들, 2010.
마웅 타 노에·마웅 스완 이 엮음, 임동확 옮김,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 문학들, 2010. 출처=교보문고.

1.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 쿠테타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짓밟고 있다. 외신은 미얀마의 적나라한 실상을 날마다 타전한다. 쿠데타군은 민주주의를 절규하는 사람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할 뿐만 아니라 무차별적 강제 연행과 체포 및 고문을 가하는가 하면, 심지어 이를 취재하는 내외 언론도 탄압하고 있다. 

우리는 미얀마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과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참담히 겪은 국가폭력이 상기된다. 그래서 작금 미얀마의 소식을 우리와 동떨어진 다른 나라의 내정에 국한된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구체적 실현은 서로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인권을 유린하는 부정부패한 독재 권력이 민주주의를 사칭하면서 폭압적 방식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반민주주의 독재 권력에 공모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2.

나는 최근 미얀마의 소식을 접하면서 십여 년 전 한국어로 번역 소개된 미얀마의 시집을 다시 펼쳐본다. 임동확 시인이 2008년에 '버마 시 선집'으로 영역된 시집을 원본으로 하여 한국어로 번역한 시집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에는 모두 14명의 시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을 곱씹으면서 미얀마의 삶과 현실에 마주하는 시인의 육성이 이명(耳鳴)으로 남아 있다. 

오 세이지?/넌 눈부시거나 가물거리는,/다채로운 색조의 아홉 가지 보석들,/두꺼운 레이스로 장식된 다이아몬드,/서로 뒤엉킨 루비들, 아라베스크식 연꽃들/속에 있었구나. 금 쟁반이 놓인 거기서 하프 줄을 뜯는,/그 악보를 누가 제공했던가?// (중략)

일본 천왕 헤이카로부터/땅에 끄는 칼을 찬/총사령관 임명장을 받고/단숨에 정종을 잇달아 받아 마시면서/보인 부드럽고 밝은 미소와 인사는/널 두 번이나 뜻을 꺾게 만들었는데,/한 나라의 국가(國歌) 아시아의 태양이/울려 퍼지는 대형 홀에서 다시 너야!//

이 왕궁의 대통령의 리셉션에/샹들리에 아래, 때 묻은 소파 위에/부드럽고 우아한 물결무늬 디자인을 반짝거리며/빛나는 분홍색 터번 모자들,/금실로 꿰맨 나일론,/설치된 네온, 푸르고 붉은 카펫,/가극의 흥행주, 라이선스 소개업자,/브로커, 상인, 군중들이 초청되었는데/왜, 넌 거기에 다시 포함되어 있는가!

— 다공 따야의 ‘오, 세이지, 어떻게 된 일이지?’ 부분

시인은 시적 대상인 세이지를 풍자한다. 세이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에 야합하는 인물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을 때는 영국의 식민권력에 편승하는가 하면,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에는 일본의 식민권력에 협력하고, 이들 양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군부 독재권력화 과정에서 그 권력과 결탁한 온갖 부정부패한 세력들 사이에서 기생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세이지를 향한 풍자는 과거 영국령 버마로부터 현재 미얀마에 이르는 역사에 대한 시적 비판으로 손색이 없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세이지와 같은 제국의 식민권력에 적극 협력한 역사가 과거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라 현재 부정부패로 점철된 반민주주의 현실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인의 날카로운 비판적 문제의식은 바로 이것이다. 세이지는 그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사그라들지 않은 채 군부정권과 한 몸이 된 채 타락한 정재계의 권력과 공모하면서 반민주주의를 한층 구조화하고 있다. 최근 퇴행하는 미얀마의 민주주의의 현실을 목도할 때 그 직접적 원인(군사 쿠데타)에만 주목할 수 있는데, 위 시를 곱씹어보면, 그 원인(遠因)이 제국(영국과 일본)의 식민권력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파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

그래서인지, ‘세 라 영을 기리며’에서 영국령 버마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반식민주의 최전선에 섰던 ‘세 라 영’(아웅 산 장군의 증조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미얀마가 현재 마주한 역사의 질곡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시적 전언이 녹아들어 있다. 

산언덕에 자리한 인적 끊긴 만마니,/가장 안전하다는 곳으로 도망간 어떤 이들은,/자신들의 지식을 밑천 삼아 망명도생을 꾀했지./아마도 그건 운명이었을 거야./떵딘 시 출신의 빛나는 명예의 주인공인/그가 영국을 쳐부수었지만,/승리하기 전에 체포되었던 것은,/그러한 결행을 하기엔 그들이 너무 점잖았다고,/네 기둥의 집이 줄지어 선 마을에서/그들의 머리가 동시에 참수됐지/산골짜기 출신의 승려인, 나의 문하생들이여,/참언구(讖言句)로 네 스스로를 위로하여라./만달레이의 흐릿한 해와 달빛 속/그가 이 땅을 다스리도록 일어서기 전,/어둠이 밀려왔고, 승리의 화환은 시들었다,/아웅 산의 할아버지, 세 라 영이여.

— 따킨 꼬더 마앙의 ‘세 라 영을 기리며’ 부분

우리에게 ‘아웅 산’이란 이름은 그리 낯설지 않다. 널리 알 듯이, 지금 미얀마의 반쿠데타 민주주의 세력을 이끌고 있는 ‘아웅 산 수치’는 옛 버마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아웅 산’ 장군의 딸인바, ‘아웅 산’이 표상하는 것은 폭압적 권력에 맞서 저항한 해방의 정치적 상상력과 연동돼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위 시에서 “아웅 산의 할아버지, 세 라 영”을 기억한다. 제국의 식민권력에 저항하는 길에서 “머리가 동시에 참수”된 젊은이들의 희생을 역사의 뒤안길로 팽개치는 게 아니라 이들 희생이 건져올릴 역사의 미래를 향한 그 무엇의 언어를 ‘참언구’로써 되새기며 폭압의 현실 속에서 자기존재를 버팅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이처럼 미얀마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시인들의 시적 전언은 과거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상처를 응시하면서 도래할 미래의 역사적 정동을 희망적으로 노래한다. 

울퉁불퉁한 옹이투성이인, 늙은 삐인마 그루터기가/산 위의 한 마리 독수리처럼 앉아 있다./흰개미들이 버려진 트렁크 안에 둥지를 틀고/붉은 곰팡이병이 궤양이 걸린 줄기에 붙어 있다/산등성이 옆 갈라진 틈에 파묻힌 움푹 파인 헬멧은/여기가 전쟁터였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전쟁으로 파괴됐고,/칼날의 공격을 받았으며,/햇볕에 반쯤 죽어갔던,/늙은 삐인마 그루터기는/폭풍에 굴복하지 않는다/여름이 다시 묵은 잎새에 다가왔을 때/줄기에서 싹 튼 새 잎이 나온다/용기 있고 씩씩한 삐인마 그루터기는 바람 속에서/청년다운 아름다움의 표정을 짓고 있다.

— 민 뚜운의 ‘삐인마 그루터기’ 전문

이 시를 읊조리면서, 문득, 강덕환 시인의 ‘불 칸 낭’이 떠오른다. 

삭신이야 온전할 리 있겠습니까/정처 없는 동백 씨앗/겨드랑이 타올라 뿌리 뻗고/담쟁이 목줄에 감겨 와도/모두 아울러 살아갑니다

— 강덕환의 ‘불 칸 낭’ 부분

어떤가. 민 뚜운의 ‘삐인마 그루터기’와 강덕환의 ‘불 칸 낭’은 서로 다른 역사적 현실을 노래하고 있지만, 두 시인은 각기 자신의 지역에서 일어난 근대의 폭력적 참화를 온몸으로 받아 안은 ‘늙은 삐인마’와 ‘불 칸 낭’이 소멸하지 않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재생하고 있는 경이로움을 주목한다. 아시아의 두 시인이 지닌 시의 창조적 힘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이처럼 만나 한데 어우러져 있다. 

4.

누구는 미얀마의 시집 '어느 침묵하는 영혼의 책'을 읽는 일이 최근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 사태를 저지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지극히 회의적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아시아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다른 곳의 반인간적 ․ 반민주주의적 구조악(構造惡)과 행태악(行態惡)에 눈감을 수 없지 않은가. 분명,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일은 일상 속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외신 미디어가 미처 타전하지 못하는 사람의 상처와 비극, 그리고 희망의 시적 진실을 공감하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은 4.3항쟁과 5.18민주화운동과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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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
야생화 2021-03-29 10:58:37
미얀마군부를 뒷배봐주는 중공이 나쁘다.
21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