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알프스 영주산

제주의 오름 속에 들어가 보면 저마다 애절한 이야기가 마치 세상사는 이야기처럼 담겨져 있다. 더욱이 산세가 높고 산수가 수려한 오름일수록 그 속에 담긴 스토리는 더욱 애틋하다.

제주 오름 전설은 설문대할망으로부터 생성됐는지도 모르겠다. 덩치가 큰 설문대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 한라산을 만들다가 그 치마가 구멍이 뚫려 흘러내린 흙이 제주 오름이라는 이야기는 허구지만 신비스럽다.

여름이 초입에 들어가는 지난 10일, 신선이 살았었다는 영주산을 찾았다. 영주산은 부잣집 처녀와 가난한 총각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전설 속 오름. 사랑하는 처녀총각이 마을에서 쫓겨나 산(영주산)과 바위(무선돌)이 되었다는 전설 이야기가 담긴 오름이다. 또한 영주산은 중국설화에 나오는 삼신산인 봉래산(금강산), 방장산(지리산), 한라산(영주산)의 하나. 과연 영주산 속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 완만한 능선타고 푸른 향연 마시며

 
▲ 산수국 가득한 영주산 부잣집 정원 같다.
ⓒ 김강임
 
지도 하나만으로 찾아나서는 영주산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사거리에서부터 시작됐다. 도로에서는 거대한 영주산이 보이는데도 그 입구가 어딘지 몰라 헤맸다. 다행히도 성읍리 한 가게 주인의 친절로 영주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표고 326m의 영주산은 한라산 분신이라 할 만큼 그 크기와 위엄성도 방대했다. 때문에 어떤 이는 영주산을 제주의 알프스 산이라 말하기도 하고, 신령스럽다하여 영모루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영주산은 신비롭고 장엄하다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영주산에 올라보면 그 희비가 엇갈린다.

 
▲ 엉겅퀴 꽃 위에 나른하게 잠에 빠져 있는 나비
ⓒ 김강임
 
나는 영주산 동쪽의 완만한 능선을 타고 올랐다. 초여름 6월의 푸른 향연이 영주산 잔디 위에 깔려 있었다. 아스팔트길을 걷다 제주 오름 속에 들어가 보면 푸른 공기를 통째로 마시는 기분에 흥분이 된다. 또 화산쇄설물을 밟는 느낌은 또 다른 촉감을 안겨 준다. 발끝에 느껴지는 촉감이 마치 푹신푹신한 솜이불을 밟는 기분이랄까.

이때 오름 입구까지 마중 나온 나비 한 쌍이 보라색 엉겅퀴의 달콤함에 빠져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안식을 느끼듯 지구상에 숨 쉬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에 기대며 살아간다.

# 보랏빛 산수국, 부잣집 정원 같다
 

 
▲ 영주산 전체가 보랏빛 꽃무리 이루다.
ⓒ 김강임
 
비스듬히 누워있는 능선을 따라 걷자니 동쪽으로 이어진 말굽형 분화구가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했다. 말굽형 분화구는 크기가 방대하여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했다. 능선의 굴곡은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인간이 걸어갈 수 있을 만큼의 비탈길을 만들어준 것이 신의 섭리인 것 같다. 그 능선을 걸으니 영주산 정상이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정상이 느낌이 금방이라도 가슴에 와 닿는다.

20분 쯤 올랐을까? 영주산은 어느 부잣집 정원 같았다, 보랏빛 산수국이 영주산을 덮고 있었다. 누가 심어 놓은 것도 아닐텐데 능선과 능선사이, 말굽형분화구, 해발 326m까지 보랏빛 꽃무리는 장관을 이뤘다. 테마가 있는 정원 같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름 꽃들은 나그네를 초대했다. 신산의 신비가 이런 것일까. 산수국의 넓적한 이파리 뒤에 숨어있던 산딸기까지 나그네를 유혹한다.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풀섶 위를 걸었다.

여름 제주 오름은 포만감을 안겨준다. 땅 한 평 갖지 못한 가난뱅이도 자연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듯 자연은 누구에게나 늘 평등하다.

# 우마의 발자국에 짓밟힌 능선

 
▲ 우마의 발자국에 짓밟힌 영주산 능선
ⓒ 김강임
 
영주산의 비경에 빠긴 것도 잠시, 오름 중턱에 올라선 순간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했다. 영주산의 몸통이 갈기갈기 찢어져 신음하고 있었다. 화산쇄설물이 뒹구는 능선은 우마의 분비물들이 널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우마의 발자국은 영주산 능선을 짓밟아 버렸다. 발가벗은 능선은 알몸만 보여줬다. 그 신음소리는 영주산 정상 경방초소까지 이어졌다.

 
▲ 화산쇄설물로 알몸 보이다.
ⓒ 김강임
 
"올여름 장마를 영주산 능선이 견뎌낼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걱정이 앞선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오름에 오르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 조차 했다.

 
▲ 외래식물 번식으로 생태계 파괴 심각
ⓒ 김강임
 
차마 화산쇄설물이 바람에 날리는 영주산 능선을 걷지 못했다. 그리고 비스듬히 타고 올라간 굼부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능선 언저리마다 외래종 개민들레가 마치 영주산의 주인인 듯 만개해 있었다. 개민들레는 요즘 제주 어느 들녘을 강타하고 있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그 개민들레는 다른 식물의 서식을 방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다가는 생태계가 깡그리 멸종되겠군."

독백처럼 내뱉는 소리는 해발 326m 신령의 산에 머물렀다.

# 오름 관리 대책 시급하다

 
▲ 정상의 모습
ⓒ 김강임
 
그러고 보니 영주산은 사유지이거나 마을 공동목장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보니 목장주인은 오름에서 우마를 기르게 된다. 최근 제주도는 오름관리계획을 수립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세부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다.

사유지나 마을공동목장의 소유인 제주오름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오르자, 산불을 단속하기 위해 세우진 경방초소와 우마를 돌보며 망을 보는 곳 같은 작은 막사가 흉물처럼 존재했다.

 
▲ 말굽형 분화구에 서식하는 식물들
ⓒ 김강임
 
자연은 말이 없다. 만약 인간 같았으면 아픔을 소리쳤을 테지만.

해발 326m에 서서 영주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성읍리 마을을 바라보았다. 정상에서 느끼는 희열보다 안타까움만 가슴을 치밀었다. 멀리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아스라이 떠 있었다.

 
▲ 능선 뒤로 성읍리 마을이 보이다
ⓒ 김강임
 
 
▲ 오름 주변의 땅을 파헤치는 개발의 소리만 들려
ⓒ 김강임
 
정상에 올라와 풍경을 보지 못하는 마음. 그저 영주산 주변은 땅을 파 해치는 문명의 소리만 들려왔다.

"올여름 장마에 영주산 능선이 살아남을까?"

하산 길에 뒤돌아 보는 '부잣집 정원' 능선은 알몸이 보였다. 능선은 구름을 이고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전설 속 오름 영주산  
 
 
 
▲ 영주산의 말굽형분화구
ⓒ김강임


영주산은 서귀포시 표선읍 성읍리 산 18번지에 소재해 있다. 표고 326m, 비고 176m의 말굽형분화구를 가지고 있다. 영주산은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졌으며, 주변에는 광활한 목장과 초원이 펼쳐졌다.

영주산은 부잣집 딸과 가난한 총각의 전설이 서린 곳으로, 마을에서 쫓겨 난 부잣집 딸은 영주산이 되고 총각은 무선돌이 되었다는 전설 속 오름이다. 산과 바위가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하며 영주산 봉우리에 안개가 끼면 비가 내린다는 속설이 있다. / 김강임

 
 

☞ 찾아가는 길 : 제주시-동쪽(16번 도로)-성읍리 사거리-수산(1km)-알프스승마장-영주산으로 1시간 정도  가 걸린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김강임의 제주테마여행>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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