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제주대 사고 여학생 중태 사연에 도민 발 벗고 나서 
생애 첫 헌혈자 ‘지정 헌혈’ 위해 선뜻 용기 내기도

이웃끼리 말 너무 속상했어요. 내가 다친 학생 부모 입장이었다면 이럴 때 누구라도 도와주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마치 내 일인 것 같아서 헌혈하러 왔어요. 헌혈하러 많은 사람이 오고 있어 고맙고 그 학생도 꼭 쾌유됐으면 좋겠어요.”(학부모 김은희 씨 인터뷰 중에서)

6일 오후 하굣길에 일어난 제주대학교 사거리의 대형 교통사고와 관련해 의식불명 상태인 대학생 김 모(21) 씨가 긴급 수혈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제주의소리] 등 언론 보도와 SNS로 확산되면서 8일 오후 도내 헌혈의 집엔 지정 헌혈을 하러 온 도민들 행렬이 이어졌다. 

제주적십자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도내 헌혈의 집에서 지정헌혈에 참여한 인원은 100여 명이 넘은 상태였다. 

피해 학생은 트럭과 버스 추돌사고로 인해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된 뒤 심폐소생술 끝에 가까스로 심박동을 되찾았지만, 현재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다. 이날 오전부터 긴급 수술을 받고 출혈이 지속되고 있어 AB형 혈액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언론 보도, SNS 등을 통해 긴급수혈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은 도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일처럼 주저 없이 가까운 헌혈의 집으로 향했다. 

헌혈행렬은 흡사 과거 제주 공동체의 오랜 전통이었던 수눌음 문화를 떠올리게 했다. 일손이 부족할때 이웃끼리 서로 도와가며 일하던 수눌음 정신이 다시 빛나는 순간이다.

취재기자가 제주시 이도이동 헌혈의 집 한라센터를 찾은 오후 6시께, 마감을 한 시간이나 남겨둔 상황임에도 헌혈 대기자들이 넘쳐 오늘은 더이상 접수 받을수 없다는 직원의 설명에 시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지난 6일 제주대학교 입구 사거리에서 사고를 당한 제주대 학생 김 모(21) 씨가 수혈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도민들이 힘을 보태기 위해 8일 헌혈의 집을 찾았다. ⓒ제주의소리
지난 6일 제주대학교 입구 사거리에서 사고를 당한 제주대 학생 김 모(21) 씨가 수혈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도민들이 힘을 보태기 위해 8일 헌혈의 집을 찾았다. 왼쪽 위 사진출처=에브리타임. ⓒ제주의소리

AB형 혈액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정 헌혈을 하러 온 김승희(22, 직장인) 씨는 “오후 4시쯤 도착했는데 그때도 사람이 많았다. 거의 다 지정 헌혈을 하기 위해 오신 분들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SNS로 내용을 전파하면 그 친구들이 다시 전파하는 방식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이들 오는 것 같다”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사고로 다치고 돌아가신 분들이 있어 마음이 많이 안 좋다.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퇴근길에 지정 헌혈을 하러 온 최이레(26, 직장인) 씨는 “회사 동료가 SNS를 보고 나더러 AB형이지 않냐고 말해서 알게 됐다. 안타까운 마음에 차마 그냥 갈 수 없어 퇴근길에 들렀다”고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최 씨가 헌혈의 집에 도착해 문진을 받기 위해 예약표를 뽑은 시간은 오후 4시 17분이었으나, 실제로 헌혈을 시작한 시간은 오후 6시 24분이었다. 지정 헌혈을 위해 헌혈의 집을 찾은 도민들이 많아 약 2시간을 꼬박 기다려 헌혈에 참여할 수 있었다. 

최 씨는 “헌혈의 집에 도착했을 당시 대기 인수만 33명이었다. 그래도 모두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기다려 헌혈에 참여했다”라면서 “안타깝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다. 집에 가는 길에 사고가 난 분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끊이지 않는 헌혈 행렬은 기자가 헌혈의집 현장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오후 6시께 이미 대기자가 가득 차 헌혈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수십 명이 찾아와 헌혈 가능 유무를 묻고, 다음날이라도 하겠다며 예약 방법을 묻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이어 피해 학생과 같은 제주대학교에 아들이 재학 중인 학부모 김은희(54, 자영업) 씨는 아들의 권유와 안타까운 마음에 생애 첫 헌혈을 지정 헌혈로 참여했다.

김 씨는 “아들이 제주대에 재학 중인데 아들은 혈액형이 다르고 나는 AB형이니 아들이 헌혈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해 사고당한 학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여기 왔다”고 참여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당사자 부모님들은 얼마나 무섭고 걱정됐을지 제3자인 나도 가슴이 아프다”라며 “예전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 소나무가 있었을 때는 사고도 없었고 속도도 어느 정도 조절됐던 것 같은데 조형물이라도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다음 날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사고 현장을 지났는데 다 정리돼 있는 모습을 보고 또 마음이 아팠다. 사고는 한순간에 벌어지고, 또 없었던 일처럼 다 잊힐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고 먹먹한 속내를 비쳤다.

다친 학생들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최 씨는 “학생들이 다친 친구를 위해 헌혈도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너무 고마운 일인 것 같다. 이런 응원에 힘입어 사고당한 학생도 얼른 꼭 나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6일 오후 5시59분쯤 5.16도로를 내려오던 트럭이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1톤 트럭과 시내버스를 잇따라 들이받으면서 대학생 등 3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6일 오후 5시59분쯤 5.16도로를 내려오던 트럭이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1톤 트럭과 시내버스를 잇따라 들이받으면서 대학생 등 3명이 숨지고 중상자 5명을 포함한 6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사고가 난 355번 버스 내부. 사고 충격으로 차량 내부가 많이 훼손되어 있다.  ⓒ제주의소리
사고가 난 355번 버스 내부. 사고 충격으로 차량 내부가 많이 훼손되어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같은 소식에 제주대 물결 총학생회는 제주적십자사를 통해 헌혈 버스 협조를 요청하는 등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헌혈 버스는 오는 14일 제주대를 방문해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단체 헌혈을 진행할 예정이다. 

물결 총학생회 관계자는 제주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통해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우리 학우가 홀로 병마와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마음을 모아 함께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총학생회 역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환우와 함께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제주적십자사 관계자는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지정 헌혈에 참여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아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오시는 분들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헌혈 경험이 있다면 레드커넥트 어플을 통해 전날 예약하고 와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지정 헌혈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평소에 헌혈에 많은 관심을 보내주는 것”이라며 “AB형 혈액의 경우 사람이 적어 보유량이 전체의 10%에 불과할 정도다. 10일분이 있더라도 중환자가 발생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헌혈한 혈액은 검사가 끝난 뒤 해당자에게 전해진다. 문제없는 혈액을 전달할 수 있도록 헌혈 수칙을 잘 지켜주시고 찾아와주셨으면 감사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지정 헌혈은 가까운 혈액원을 방문한 뒤 ‘제주대학교 사거리 교통사고 한라병원 외상중환자 김 모 학생’ 앞으로 지정 헌혈을 하러 왔다고 말하면 가능하다. 피해 학생의 혈액형은 AB형이며 R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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