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97) EBS 다큐프라임 '미래학교' 제작진, ‘미래학교’, 그린하우스, 2019.

EBS 다큐프라임 '미래학교' 제작진, ‘미래학교’, 그린하우스, 2019.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는 학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인공지능이 사람들이 하던 일을 대체한다는 미래의 세상에서는 어떤 공부와 배움이 필요할까? 현기증 나는 변화의 속도 속에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대,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책은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들이 한국, 싱가폴, 인도, 노르웨이 네 나라의 학생들을 모아 ‘미래학교’를 운영한 결과를 펴낸 것이다. <다큐프라임>의 영상 제작을 위한 기획에서 나온 부산물이기 때문에, 물론 다큐멘터리 영상에 기초하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다큐에서 모두 나오지 않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EBS의 미래학교는 2주 동안만 실험적으로 운영되었지만, 연구와 준비 기간만 해도 6개월 이상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네 나라의 12명의 학생이 참여하도록 구성하는 것에도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책과 다큐에 따르면, 이 혁신적인 학교에서 잠깐 공부한 학생들에게는 놀랄 만한 성장과 변화가 있었다. 학생들이 흥미진진하게 학업에 임하는 것을 보다 보면, 학창 시절에 이런 신나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한탄하게 된다.

미래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교과목 성적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 있었다. 그것은 PISA 지수와 메타인지다. 메타인지는 PISA에 비해 비교적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란, 한 마디로 앎에 대한 앎, 즉, 내가 아는 것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PISA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Programme of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의 약자로, 학업의 흥미와 자신감을 측정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학업성취도가 높아도 PISA 지수가 낮은 학생은 향후 학업성취도가 낮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반대 역시 가능할 것이다. 

미래의 교육에서 메타인지와 PISA 지수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 사회는 지금까지의 사회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지능지수는 500에서 1000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각 교과목의 지식 내용을 철저히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계속되는 변화에 대응하는 삶을 위해서, 혹은 계속 다른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평생학습과 자기주도적 학습은 필수적이다. 특정 과목과 지식에 대한 공부보다는 ‘공부에 관한 공부’가 더 의미 있는 세상이 오기 때문이다. 그런 미래 사회에서는 지속적으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역량 자체가 중요해진다. 

하지만, 미래학교에도 아쉬움과 한계가 드러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이를테면, 미래학교의 수업은 주로 STEAM 위주로만 편성되었다. 한국의 STEAM 교육은 미국과 영국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STEM 교육에 인문, 예술(A)을 더한 것이다. STEM 교육은 과학기술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과학, 기술, 공학, 수학에 중점을 둔다. 그러니까 사실상, STEAM 교육 역시 과학기술 중심의 교육인데, 미래교육이라고 해서 반드시 과학기술 교육을 위주로 공부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미래학교는 협력(collaboration), 의사소통(communication), 창의성(creativity)의 3C를 아주 중요한 미래 역량으로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인성이나 윤리, 예술적, 인문학적 상상력이 중요한 목표나 가치로 설정되지는 않았다. 이 책과 다큐에 따르면, 경쟁이나 시험 결과에 민감한 학생들이 해커톤(Hackathon)과 같은 모둠 활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협력과 소통을 익혀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만 우연의 산물일 수도 있고, 다만 학생들이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 학습에서 단기적인 협력과 소통을 추구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음으로 미래학교에 참여한 학생들의 학부모에 관한 이야기다. 이 학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학부모들은 상당한 교육열을 지닌 학부모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큐에는 나타나지 않은 점을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국적을 떠나 12명 학생의 학부모들 가운데 최소 3~4명 이상은 프로그래머였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학교를 이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EBS 제작진들은 학부모들의 직업이나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측면까지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미래학교에 참여한 학생들은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계급에 ICT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학부모이거나 교육열이 상당한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이 학생들은 학습에서 각각의 장점과 취약점이 있었지만, 미래학교 프로그램을 통해서 소통, 창의성, 협력과 교과 내용 지식 등의 발전을 거둘 수 있었다. 미래학교 기획은 이 점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다큐에서, 인도의 한 교사가 TV가 있는 이장 집에 모이는 학생들에 착안해 낮은 수업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비디오를 활용한 수업을 고안해낸 이후에 컴퓨터 활용 수업이 도입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디지털 격차에 따라 교육의 양극화와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화될 수도 있다. 

또한 미래학교가 선보인 ‘미래 교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태블릿 PC나 학습용 드론, 3D 프린터와 같은 새로운 교육 도구와 유능한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사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명문대 입학이 대한민국 교육의 최우선 과제가 되는 현재 상황에서 미래학교의 실험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s) 세대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 세대에게 자신들의 낡은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강요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래학교는 학교 건물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와 가정이, 학교 울타리 너머의 무한대의 학교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 노대원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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