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19) 젓가락 도둑으로 집안 망한다

* 조븜 : 젓가락

출처=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밥 먹을 때 젓갈 하나 나물 무침 하나라도 집어먹으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수저의 하나가 ‘조븜’이다. 출처=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젓가락 도둑’이라 함은 젓가락을 훔친다는 뜻이 아니라, 젓가락으로 반찬을 조금씩 집어먹듯이 훔친다는 의미다. 조금만 해야지 하면서 집안의 물건을 하나둘 훔쳐내다 보면 크게 축나게 마련이다. 그게 곧 집안이 망하는 원인이 된다 함이다.

우리 제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있었다.

“홋설썩 홋설썩 호단 보난 점점 복장머리가 커진 거 아니라게. 경핸 망헌 거주기. 집안 망하는 게 먼 디 있지 아니허연 바로 집 안에 이어시네게.”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니 점점 통이 커진 거 아나냐. 그래서 망한 거지. 집안 망하는 것이 먼 데 있지 않아 바로 집 안에 있었지 않아.)”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집안에서 물건을 조금씩 밖으로 훔쳐 내가다 보면 화수분이 아닌 이상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집안 망하는 건 눈앞의 일이다. 흔히 며느리를 잘못해서 집안 재물이 밖으로 샐 때 하던 말로, 자고(自古)로부터 밖에서 며느리를 데려올 때 사람을 잘 골라야 한다고 했다.

이를 조금 확대해석하면, 방죽도 개미구멍에서 무너진다. 혹은 좀도둑이 쇠도둑 된다와 유사한 말이다.

재물이란 것은 티끌 모아 태산으로 쓰지 않고 모아야 되는 것이다. 요즘 5만원권 한 장을 써 보면 실감이 나고도 남는다. 쓰는 순간, 5만원권이 만원권 다섯 장이란 생각은 머릿속에 지워져 버린다. 그냥 지폐 한 장, 푸른 배춧잎보다 조금 큰돈이란 정도로 인식이 바뀌어 버린다. 거품이 날아가듯 얼마나 가벼운가.

‘조븜 도둑으로 집안 망헌다.’

‘조븜’이라는 방언이 참 정겹지 않은가. 그 정겨움이 집안을 쥐어흔들 줄을 누가 알았으랴. 밥 먹을 때 젓갈 하나 나물 무침 하나라도 집어먹으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수저의 하나가 ‘조븜’이다. 밥 한술에 꼬박꼬박 반찬을 집듯 그렇게 집안 물건을 밖으로 내친다면 천석꾼 집이라도 견뎌낼 재산이 없을 것이다. 

중이 좁썰 쌔물듯(쥐 좁쌀 갉아먹듯) 하다 보면 남는 게 없을 것은 정한 이치다.

조냥하며 살아온 우리 제주 선인들이 집안 재물이 축나는 것을 모를 것이며, 그냥 지나쳤을까. 그렇게 반찬 집어먹듯 훔치다 보면 결국 집안이 망하고 마는 법이라고 경계한 것이다. ‘조븜 도둑’이라는 비유가 사실감을 도드라지게 했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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