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70) 툭,/변종태

과속방지턱을 넘는 계절. ⓒ제주의소리
과속방지턱을 넘는 계절. ⓒ제주의소리

양복 안감 솔기에 실밥 하나가 늘어져 있다. 담뱃불로 툭, 끊어낸다. 네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간다. 떨어진 자리에 툭, 던진 붉은 한마디에 여름이 온다. 툭, 장미가 핀다. 여름이 과속방지턱을 넘으면 초여드렛달이 진다. 달그림자 뒤편으로 매미 소리가 툭, 떨어진다. 아니 내 귀에는 툭, 툭, 떨어져 나간 네 목소리만 들린다. 골목은 휘어져 툭, 툭, 끊어지는 인연들, 하필이면 그때 담배 생각이 툭, 떨어져 나가는 담뱃재 너머로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툭, 툭, 빗방울이 어깨를 건드린다. 참았던 울음의 솔기가 뜯어지기 시작한다. 와르르 폭우가 쏟아진다. 툭, 

-변종태, <툭,> 전문-

양복 안감 솔기에서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던 실밥의 힘겨움을 생각한다. 언젠가 떨어져 나갈 운명을 뻔히 알고 있지만 최대한 끝까지 그 지점을 늦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프다 얘기할 수 있는 건 아직 참을 만하다는 것. 백까지 숫자를 헤아려 보기를 몇 번째, 힘겨움도 내성이 생겨 이만하면 조금 더 참을 수 있겠다 싶을 때, 느닷없이 툭 소리가 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손을 빠져나가버린 그 무엇. 

상실의 자리에서 ‘장미가 피’고 ‘달 그림자 뒤편으로 매미’가 울다 가고, 이 쪽에서 저쪽으로 몇 번의 경계선을 넘어도 여전히 ‘네 목소리’에 맞춰진 주파수의 성능은 감소하지 않는다. 한 번 끊긴 세상은 도미노처럼 나의 일상을 다 흔들어놓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돌고, 어느 순간 보면 그 원심력에 끌려 착실히 제 궤도를 밟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때 또 무언가 ‘툭’ 떨어져 나가는 상실감.

그렇게 안간힘으로 버티던 시간들이 무색해지고 경계선이란 게 사실 넘고 보면 이쪽과 저쪽이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여기도 다 고만고만한 일들이 일어나고, 다 고만고만한 아픔이 있고, 또 그 만큼의 웃음이 존재한다고, 그렇게 살면 된다고 자신을 합리화 시켜낼 무렵, ‘툭, 툭, 빗방울, 몇 개, ’어깨를’ 친다. 끝내 ‘참았던 울음의 솔기’ 뜯어진 것이다. 폭우가 오려나 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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