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65) digest 소화하다

di·gest [didʒést, dai-] vt. 소화(消化)하다
졸속(拙速), 이제 설러불어사
(졸속(拙速), 이제 그만두어야)

digest는 dis- ‘분리하여(=apart)’와 –gest ‘나르다(=carry)’의 결합이다. 이 –gest에서 나온 낱말로는 congest ‘혼잡하게 하다’, suggest ‘제안하다’ 등이 있다. 접두사 dis-의 여기서의 의미는 ‘분리하여(=apart)’인데,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따로따로’, ‘서로 충분한 시간을(거리를) 두고’ 정도가 된다. 소화(digestion)란 ‘섭취한 음식물을 분해(decomposition)하여 영양분(nutrients)을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변화시키는 일’을 뜻하며, ‘배운 지식이나 기술 따위를 충분히 익혀 자기 것으로 만듦’을 비유적으로(metaphorically) 이르는 말이다. 어떤 종류의 소화이든 반드시 얼마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런 시간을 무시(ignorance)하고 밀어붙이려는 게 바로 ‘졸속(with more haste than caution)’인 것이다. ‘매사에 시간적 간격을 두어 차근차근 진행하지 않고 빨리만 하려는 태도(manner)’를 지칭하는 이런 졸속은 모든 정신적(mental), 육체적(physical) 소화불량(indigestion)의 직접적(immediate) 원인이 된다. 

The parliamentary process is essentially a system of delay and deliberation. So, for that matter, is the creation of a great painting, or an entrēe, or a book, or a building like Blenheim Palace, which took the Duke of Malborough’s architects and laborers 15 years to construct. In the process, the design can mellow and marinate. Indeed, hurry can be the assassin of elegance. As T.H. White, author of Sword in the Stone, once wrote, time “is not meant to be devoured in an hour or a day, but to be consumed delicately and gradually and without haste.” 

(의회의 절차란 것도 알고 보면 지연(遲延)과 숙고(熟考)의 연속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명작 그림이나 정찬의 메인 요리, 위대한 저서, 짓는 데 15년이나 걸렸던 말보로 공작의 브렌하임 궁도 마찬가지다. 그런 오랜 과정을 통하여 최초의 계획은 더욱 익어가고 숙성되는 것이다. “아더왕의 검”의 작가 T.H. 화이트가 언젠가 쓴 것처럼, 시간이란 “한 시간이나 하루 안에 다 써버리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조금씩 아끼면서 서두르지 않고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Michael Demarest의“Fine Art of Putting Things Off” 중에서 -

졸속은 졸속을 낳게 된다. 결과를 빨리 얻기 위한 과정을 단축하는 결과주의로 인해 한국 현대사에는 슬픈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했다.

결과(outcome)를 빨리 얻기 위해 과정(process)을 가급적 단축하는 결과주의는 한국 현대사(modern history)의 슬픈 그림자(painful shadow)라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90년대 중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연이은 붕괴(collapse)에서부터 최근에 쏟아지는 일련의 부동산 정책들(real estate policies)과 매표용으로 볼 수밖에 없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passage)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아직도 결과주의의 늪(swamp)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거기서 빚어지는 졸속의 틀(frame)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거짓말(lie)이 거짓말을 낳게 되듯이, 졸속이 졸속을 낳게 된다는 점이다. 한 번으로 그쳐야 할 졸속을 제대로 반성(reflection)하지 못하고 그에 대해 합리화(rationalization)만 하려 하니 여러 번의 졸속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습성(habit)도 그렇겠지만, 결과주의와 그에 따르는 졸속도 단호해야만 단절할 수 있는 질긴(persistent) 습성인 듯하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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