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도정질의] 현안 삼켜버린 원희룡 지사 불출마 돌출 발언...고성·지역구 챙기기 구태 여전

제394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도정질문. 사진=제주특별자치도의회

민선7기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한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도정질문 일정이 마무리 됐다.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주요 지역현안들에 대한 질의가 진행됐지만,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원희룡 지사의 '3선 불출마' 돌출 발언이 모든 이슈를 잠식하면서 결과적으로 도정 책임자로서의 책임감보다 정치인 개인으로서의 존재감만 부각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원 지사의 불출마 발언은 도정질문 첫 날, 첫 시간에 급작스럽게 터져나오며 3일간의 도정질의 일정은 출발부터 블랙홀에 빠져버린 모양새였다.

원 지사의 불출마 발언은 21일 오전 질문 과정에서 갑작스레 나왔다. 원 지사는 "내년 도지사 선거는 새로운 리더십이 맡는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내년 도지사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불출마를 공식화 했다.

이날 불출마 선언은 측근들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돌발적인 발언이었다. 실제 주변에서도 원 지사의 불출마 의지를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발표 시기는 가늠하지 못했다며 적잖이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원 지사의 대권 도전은 공식화하지만 않았을 뿐 익히 예상돼 왔다. 최근 들어 원 지사의 서울 행보가 더욱 잦아졌고, 중앙정치 이슈에 대한 발언도 끊이지 않았던 터다.

다만, 불출마 발표는 조금은 결이 달랐다. 섣부를 수는 있지만, 만약 원 지사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하면 다시 제주로 내려와 3선에 도전하지 않겠나 하는 전망도 있었다. 이날 발언은 원 지사가 스스로 그 가능성을 차단한 것으로, 사실상 대권 도전을 위한 배수의 진을 쳤다고 분석된다.

원 지사의 불출마 발표에 대한 반응은 벌써부터 엇갈린다. 조금이라도 이른 시기에 자신의 정치 행보를 명확하게 밝히면서 불필요한 억측을 최소화하기도 했고, 또 누가 됐건간에 차기 도정을 위한 준비를 보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가 있다. 대한민국 1%의 한계를 극복해 제주 출신 첫 대선 후보를 기대하는 바람도 적지만은 않다.

반면, 아직 해결해야 할 지역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불출마 발표가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에 걱정되는 것은 '레임덕'이다. 다음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6월까지 원희룡 도정의 정책 추진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원 지사 스스로도 "국가권력이든 지방행정 권력이든 임기가 있는 이상 영원히 기세등등할 수 없다"고 이 같은 우려를 인정하기도 했다.

실제 도정질문 과정에서는 △제주 제2공항 갈등 △상하수도 정책 난맥 △행정체제 개편 표류 △기후변화 위기 진단 △주택공급 정책 △환경보전기여금 도입 △원도심 활성화 대책 등 여러 현안들이 다뤄졌지만 특별히 성과라 할만한 답변은 이끌어내지 못했다.

원 지사의 답변은 대부분 기존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덩치가 큰 사안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겠다", 단발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당장 확답할 수는 없고 참고하겠다"는 레파토리가 반복될 뿐이었다.

이번 도정질문이 민선 7기 원희룡 제주도정의 마지막 기회였다는 점에서도 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올 하반기 대선 일정에 뛰어드는 원 지사의 사퇴 시기를 고려하면 이번 도정질문은 마지막일 공산이 크다.

원 지사는 의원들의 거듭된 질문에도 사퇴 시기에 대해서는 끝내 말을 아꼈다. 공직선거법 상 대선에 입후보하기 위해서는 선거일 90일 전에만 사퇴하면 된다. 내년 대통령선거가 3월 9일에 치러지니까, 사퇴 시한은 올해 12월 9일까지다. 지역정가에서는 적어도 연말 국민의힘 대선 경선 일정에 맞춰 원 지사의 사퇴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직 도지사 신분으로는 현행 선거법 상 운신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 공무원으로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고,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도 원천 금지된다. 선거법 상 적용되는 자치단체장의 행위 제한도 적용 받게된다. 대선에 '올인' 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기에 사퇴할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질문이 한창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의원들로부터 "지금 지사님에게 질문해봐야 소용 없겠다", "질문할 의미를 모르겠다", "맥이 빠진다"는 등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정질의를 지켜본 도민들은 송곳 같은 도정질의를 볼 수 없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도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현안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과 논리적 설득이 아닌 고성으로 윽박지르려는 구태도 여전했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도의원들이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대해 도백의 입장을 직접 듣고, 함께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도정질문의 취지를 충족하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A 도의원은 "우리가 열을 내면서 질문할 이유가 뭐냐. 중앙 정치권 이슈에만 기웃거리던 도지사가 기어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도정질문조차 초장부터 완전히 김을 빼버렸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A 의원은 또 "어차피 시한부 도지사와는 미래 도정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지사 입장에서도 답변이 의례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민원 챙기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게 된 것 아니겠나"라고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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