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25일 4.3예술축전 첫 순서, 조천읍 산란이오름 현장 예술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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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예총은 25일 조천읍 산란이오름 일대에서 4.3예술축전 첫 번째 순서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산란이 들판
강덕환

개월이 넙거리 너머 궤펜이오름
한라산을 배경 삼아 왠지
산란이라 부르고 싶은 들판에 서면
원래 싸움터였단다, 여기는

크엉크엉 우룩맞추던 노루도 숨을 죽이고
생솔가지 뚝뚝 분질러지는 소리에 
화들짝 산새들도 몸을 움츠리던 
그해 겨울

동상 걸려 짓무른 발가락 고름 짜내며
산죽을 헤쳐 소식을 전하던 척후병의
다급한 목소리, 등허리에서 뿜어져 나와
눈밭에 물들이던 시야혈천(屍野血川)

볼레열매 한 줌 움켜 먹어 피똥을 싸고
멩게낭 가지 꺾어 밤새 언 손 녹이던
옷귀에서 도리송당에서 눌미에서 논흘에서
여기까지 밀려온 피난민들의 한뎃잠도
별똥별로 무너지던 숱한 밤

겨울 지나 다시 그 싸움터의 들판에서면
거기, 아직도 분단의 땅이냐고
빈숲 바람소리에 묻어 암호가 온다
아물지 못하는 계절이 흐르는 사이
산철쭉 숱하게 피고 지며 검버섯으로 엉켰다

73년 전, 군경과 유격대의 치열한 전투, 그리고 죽음의 공포와 추위에 떨던 제주도민들을 기억하는 현장 순례 예술제가 열렸다.

제주민예총은 2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제주시 조천읍 산란이(궤펜이)오름 일대에서 4.3예술제 ‘진달래꽃 타올라’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매해 4.3을 맞아 개최하는 4.3예술축전의 일환이다. 코로나19로 이전과 같은 집단 행사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올해는 역사의 현장을 함께 걸어보고 예술 공연으로 의미를 되새기는 ‘현장 예술제’로 진행했다.

산란이오름은 4.3 당시 군경과 유격대가 맞붙은 전투 현장 가운데 하나다. 대하실록 ‘제주백년’은 “북제주군 조천면과 남제주군 경내에 위치한 속칭 ‘산란이’는 31임반의 중심을 이루며 남쪽에는 궤펜이오름이 있고 그 뒤쪽이 능선으로 둘러싸여 있어 천연적인 요새를 이룬 곳”이라며 “잔비 두목 김의봉은 이곳을 아지트로 잡아 잔비를 지휘했는데 조천국민학교를 습격했던 공비들은 토벌대를 그곳으로 유인하면서 지형지물을 이용한 역습을 노렸다”고 설명한다. 제주백년은 군경 입장에서 지난 과정을 정리·서술했다.

초가을 이른 눈이 쌓였던 1949년 11월경에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산란이오름 전투는 해병대, 경찰 1개조와 김의봉을 필두로 한 유격대가 맞붙었다. 양쪽 모두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제주백년은 “하룻밤의 격전이 끝난 후 공비 6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아군도 많은 전사자를 내는 희생이 따랐다”고 설명한다. 

1935년생 대정읍 출신으로 유격대 활동에 참여했던 김봉길 씨는 “내가 그때는 부상 중이어서 전투에는 참가 안하고 선전부에 있으면서 전투에 참가한 사람에게 들었는데, 산란이 태역밭 허영헌 눈밭이 피로 벌겋게 됐다고 한다”며 “산란이 전투에서 군경이 죽은 것은 수십 명이라고 한다. 양쪽 타격이 컸지만 아래는 사람이고 무기고 다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산사람은 보충이 안된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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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이오름 숲길을 걷는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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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이 기관총을 거치했던 능선 구덩이.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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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대가 숨어있던 구덩이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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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숲길을 걷고 있다. ⓒ제주의소리

산란이오름 일대는 4.3 시기 양 진영의 전장이자 조천읍 주민을 비롯한 도민들이 피신한 장소이기도 하다. 2018년 12월 4일자 한겨레신문에는 당시 산란이오름에 숨었던 남원읍 의귀리 주민 고기정 씨 사연이 실렸다.

기사에는 “피신처에는 60~70여 가구가 모여들었다. 저마다 얕은 돌담을 쌓고 어욱(억새)을 덮어 하루하루를 견뎠다”면서 “일주일이면 끝날 것 같았던 피신 생활은 기약 없이 길어졌다. (1948년) 12월20일께 피신처가 토벌대에 발각됐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볼레)씨까지 모두 먹어 똥을 싸면 벌겋게 나왔다. 볼레(보리수 열매)가 아니었으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볼레가 큰 양식이 됐다”면서 “고 씨와 사촌형(당시 17세)은 군인들이 닥치자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간 뒤 산에서 만난 주민들과 피신 생활을 이어갔다. 신발은 얼기설기 엮은 짚신이 고작이었다. 동상에 걸린 주민들 발에서 고름이 흘렀다”고 고 씨의 증언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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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당시 피난민들이 숨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궤 입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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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 내부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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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피난민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화덕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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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좁은 능선을 지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번 4.3예술제는 사전 신청이 금방 마감될 만큼 뜨거운 관심 속에 이뤄졌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이동거리 2km가 조금 넘는 산행은 ‘4.3과 통일을 생각하는 모임 마중물’ 소속 김국상 씨와 김경훈 시인이 도맡았다. 4.3과 통일을 생각하는 모임은 2018년 10월부터 제주 전역에 퍼져있는 전장을 포함한 4.3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군경이 기관총을 설치했던 능선, 유격대들이 숨어있던 참호, 피난민들이 사용했던 화덕의 흔적, 도민들이 숨었던 깊은 궤 등…, 참가자들은 수풀 속을 2시간 넘게 누비면서 73년 전 치열했던 공방과 피난민들의 아픔을 보다 살갑게 느꼈다.

김국상 씨는 “산란이 전투는 1949년 가을, 치열하게 벌어졌다. 총격전으로 양쪽 모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1948년과 49년을 지나는 겨울 동안 도민들은 생존을 위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봄을 기다리며 고난을 감내 했는데, 지금 우리가 대신 봄을 만끽하고 있다”면서 당시 피난민들을 기억하자고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60세 용담동 주민 현모씨는 “지금은 화창한 봄이다. 4.3 당시 군경과 유격대를 피해서 숨있던 선량한 주민들은 겨우내 추위를 견뎌야 했다.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다. 지금은 바람만 불어도 옷을 껴입지만 당시 주민들은 어떻게 추위를 견디고 배고픔을 해결하며 견뎠을까. 오늘 순례 답사는 과거 도민들의 아픔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때 그 사람들과 그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제주도민들이 해야만 하는 책임이자 의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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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안내를 맡은 김국상 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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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를 담당한 김경훈 시인.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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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가마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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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가마터. ⓒ제주의소리

4.3예술제는 순례길 답사 이후 예술 공연 ‘해방의 몸짓, 치유의 소리’로 마무리했다. 공연에 앞서 김진숙, 강덕환 시인이 각각 자신의 4.3시 ‘붉은 신발’, ‘산란이 들판’을 낭독했다. 

공연은 사단법인 마로가 ▲여는 판굿 ▲추모 퍼포먼스 ▲대동놀이 순으로 진행했다. 화창한 하늘 아래 신록으로 둘러싼 잔디밭 자연 무대는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마로는 스트리트 댄스와 현대 춤, 국악과 소리를 조합한 흥미로운 추모 공연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어 흥겨운 죽방울놀이와 접시돌리기(버나), 참가자 모두가 함께 하는 대동놀이로 밝게 희망을 기약했다. 

행사를 주관한 제주민예총은 찾아가는 현장 4.3예술축전을 총 3회 개최할 예정이다. 4월 25일 궤펜이오름을 시작으로 ▲5월 15일 대정고을예술제 ‘이실 재 지킬 수’ ▲6월 5일 산전 예술제 ‘덕구덕구 이덕구’를 연다. 세 차례 순례 기록을 정리하는 아카이브전도 10월에 잡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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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환(가운데), 김진숙(맨 오른쪽)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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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의 공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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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추모 퍼포먼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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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의 공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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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 공연에 참가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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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과 마로 공연자들이 한데 모인 대동놀이로 4.3예술제는 마무리됐다. ⓒ제주의소리

이종형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특별법 개정 이후 4.3운동은 다시 전환점을 맞이했다. 제주민예총은 4.3 73주년을 맞아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4.3의 이야기와 기억, 그리고 외면 받는 분들을 환기시키자고 방향을 정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오늘 산란이오름 답사를 비롯한 남아있는 두 차례 현장 예술제는 우리 모두가 모르는 4.3의 기억과 발자취를 찾아가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올해 4.3예술축전은 향후 영상으로 제작해 제주민예총 유튜브 채널에 등록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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