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학의집, 24일 극작가 장일홍 토크콘서트...“저서 10권 목표 채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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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장일홍 극작가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제주의소리

제주4.3 희곡 예술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자랑하는 원로 극작가 장일홍이 제주 연극인들에게 “큰 꿈을 가지고 넓은 시야로 실천하라”고 격려했다. 척박한 제주 연극계에도 “제주 1만8000 신들의 본풀이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제주는 연극의 섬이 될 수 있다”고 힘을 불어넣었다.

제주문학의 집은 24일 오후 5시 제주문학의 집에서 올해 도민문학학교 일환으로 ‘장일홍 희곡작가 초청 토크콘서트-꽃 속에 숨겨진 시간’을 개최했다. 희곡 작가를 초청한 도민문학학교는 이번이 첫 번째다.

장일홍 작가는 198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지금까지 희곡집, 장편소설, 4.3작품집 등 8편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강신무’를 비롯해 ▲붉은섬 ▲당신의 눈물을 보여주세요 ▲이어도로 간 비바리 ▲꽃 속에 숨겨진 시간 ▲우리를 잠들게 하는 별들의 합창 ▲하모니카 ▲불멸의 영혼 등 4.3 희곡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소설 ‘순이삼촌’의 현기영은 장일홍에 대해 “4.3 희곡에 있어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현기영 작가는 1941년, 장일홍은 1950년생이다.

토크콘서트는 후배 연극인 정민자 세이레아트센터 상임 연출이 질문을 던지고 장일홍이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특별히 극단 세이레는 장일홍의 희곡 ‘태풍’을 낭독했고, 최근 서울에서 공연한 '강신무' 공연 영상도 상영했다.

장일홍은 문학소년 시절부터 시작하면 글과 인연을 맺은 지는 "50년"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한국연출가협회에 의해 공연된 ‘강신무’와 관련해서는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훈 작가가 신춘문예 담당이었는데, 내 작품(강신문)에 대해 평을 썼고, 보도 전에 만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신춘문예에 대한 기자의 평을 거의 보질 못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4.3 작품을 꾸준히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사를 꺼냈다. 그는 “돌아가신 선친이 경찰이었는데 4.3 당시 토벌대 대장이었다. 본인 말로는 무자비한 학살에 관여하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4.3 학살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그것이 아들 책임은 아닐지언정 나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거창하진 않으나 (희생자들에게) 속죄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4.3은 제주도민 전체의 상처이니 제주 작가라면 지나칠 수 없다고 여겨서 계속 매달렸다”고 설명했다.

그가 1991년에 발표한 ‘붉은 섬’은 국내 희곡 가운데 4.3을 다룬 첫 번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존재감이 있었기에 여러 사연도 존재한다. 장일홍은 지난해 4.3희곡 선집 ‘불멸의 영혼’을 발표하면서 “붉은 섬 발표 후 대학가에 배포했는데 알고 보니 수취인에게 전해지지 않고 증발해 버렸다”고 밝힌 바 있다. 1992년 열린 제10회 전국연극제에서도 ‘붉은 섬’에 대한 비슷한 탄압이 있었다. 당시 대회는 제주에서 열렸는데 제주 연극인들이 연합해 ‘붉은 섬’을 발표했고 장려상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장일홍은 “연출가였던 김중효가 내게 말했던 내용이 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에서 연출가에게 ‘붉은 섬을 개작해서 공연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군사정권의 연장이었던 노태우 정부였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난 단호히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붉은 섬’은 본래 길이보다 줄여서 공연했는데, 전국연극제는 보통 연극제가 열리는 그 지역 출품 작품은 우대해서 평가해주곤 했다. 그런데 이런 과정으로 장려상을 받게 되니 그때는 안기부의 요구를 따르지 않아서 장려상을 받았나 생각하며 부당하게 느꼈다”고 기억했다.

정민자는 “기억하기에 ‘붉은 섬’은 규모가 큰 작품이었다. 그때까지 전국연극제에서 제주지역 작품이 받은 첫 상이기도 했다. ‘순이삼촌’을 읽고 수근 대면서 4.3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붉은 섬’ 공연을 보고 4.3이 무엇인지 피부로 확 와 닿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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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콘서트는 연극인 정민자(왼쪽)가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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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현재 제주를 대표하는 극작가는 장일홍, 강용준 등이 손꼽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작품을 제주 안에서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민자가 “선생님 작품은 제주보다 서울에서 더 많이 공연됐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극인으로서) 죄송한 마음이기도 한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진 배경이기도 하다. 

장일홍은 “불행한 일”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희곡은 읽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연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난 극장도, 극단도 마땅히 연결된 경우가 없다. 지금껏 어떤 제주 극단도 (내 작품으로) 공연을 요청한 적이 없다. 서울이나 전국 각지에서 종종 연락와서 요청한 경우는 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항상 공연되다 안 되면 마음이 아프지만, 나는 공연 안되는 경우가 많으니 마음이 아프고 자시고도 없다”고 자조적인 농담을 던졌다.

그는 “40년 공직 생활을 했는데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배 이상은 발표했을 것”이라며 “현재까지 8권을 발표했는데 10권은 채우려고 한다. 그 정도면 이 세상에 내가 왔다간 흔적은 남기지 않겠냐”라고 여전히 꺼지지 않은 창작열을 뽐냈다.

더불어 “지금은 우리나라 대표 매국노로 손꼽히는 이완용에 대해 희곡을 쓰고 있다. 인물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인데, 논쟁이 될 만한 작품이다. 기꺼이 작가로서 감수할 영역이다. 가능하면 일본 공연도 고려해봄 직하다”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장일홍은 연극에 대해 “당대 현실의 구체성을 가장 발랄하고 통렬하게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희곡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현실을 살아가는 이야기”라며 “희곡은 연극이란 집을 짓기 위한 설계도”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좋은 희곡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인생이 압축돼 있다. 대표적으로 셰익스피어 ‘맥베스’를 꼽겠다. 그런 작품들이 많이 나올 때 독자들이 희곡의 맛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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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세이레는 희곡 '태풍'을 낭독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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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발표한 장일홍 4.3희곡 선집 불멸의 영혼과 4.3 작품집 레드 아일랜드. ⓒ제주의소리

제주 연극에 대한 조언은 ‘자부심과 희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장일홍은 “난 제주도를 연극의 섬이라고 지향하고 싶다. 연극 영단어(drama)의 어원을 따져보면 ‘제사 행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화(myth)의 어원은 제사 기도문이다. 기도문의 변형된 형태가 오늘 날 희곡인데, 제주말로 옮겨보면 굿의 본풀이가 바로 기도문이다. 연극 대본이 희곡이라면, 굿의 희곡은 본풀이다. 제주에 1만8000 신이 있다고 말하는데, 가정한다면 그만큼의 본풀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라고 풀어냈다.

또 “이런 가치를 재발견한다면 제주도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 버금간다고 말하겠다. 1만 8000개의 연극이 존재하는 것 아니냐. 그래서 제주는 연극의 섬이 될 수 있다”면서 “프랑스 아비뇽 연극 축제, 영국 에든버러 축제 같은 세계적인 축제를 제주에서 여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못한다면 언젠가는 후배 연극인들이 해낼 것이다. 제주는 연극의 섬, 본풀이의 땅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장일홍은 “제주 연극인들은 큰 꿈을 가지고 시야를 넓혀 실천하자”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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