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장기 레임덕’ 불보듯…마무리는 아름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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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도전을 위해 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지사. 그가 언제 사퇴할지는 모르겠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무리는 잘했으면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내년 도지사 선거에는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도지사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는다. 분명하게 말씀드린다”

임기를 1년 이상 남긴 원희룡 제주지사의 불출마 선언을 어떻게 봐야할까. 쿨한가 아니면 즉흥적인가. 일각의 지적대로 도백으로서 무책임한 면은 없는가?

아무리 정치인의 말이라지만,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굳이 따질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선언 이후 레임덕 우려 속에 차기 후보군, 지사직 사퇴 시점 등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현안은 쌓여있는데 자칫 지역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도 있다. 때 이른(?) 불출마 선언이 몰고 올 경우의 수 중 최악에 해당한다. 

불출마 선언은 전격적이었던 것 같다. 선언 직후 측근들의 말에서 그 점을 엿볼 수 있다. A씨는 “내부적으로 3선은 출마하지 않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오늘과 같은 형식으로 불출마를 공식화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B씨는 “지사께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고민하시는 것 같은데 (하필이면)도정질문 과정에서 불출마를 선언했어야 했는지…”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3선을 노릴 수 있는 현직 지사의 불출마 선언은 빅뉴스인데 정치적인 이벤트도 아니고 의외였다는 반응인 셈이다. 그럴만 했다. 평소 누구보다 대중 앞에 드러내길 좋아하는 원 지사가 아니었던가. 

뭔가 달라보이지만, 그간 원 지사의 정치적 거취와 관련한 결정 과정에는 꽤나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생략된 지점이 늘 존재했다. ‘도민’이 대표적이다. 

입만 열면 도민만 바라보겠다고 했으나 곁눈질을 일삼았다. 무소속 신분을 변경할 경우 도민의 의견을 구하겠다고 했으나 이 때도 도민은 없었다. 뒤늦게 “그 과정이 생략됐다”고 사과는 했지만, “정당 입당은 절대 없을 것”이라던 굳은 맹세에 비하면 한없이 가벼운 사과였다. 

이번에도 도민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기 지사가 누구냐는 정치적 셈법이야 ‘그들만의 리그’라고 치자. 불보듯 뻔한 ‘장기 레임덕’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 제2공항 등은 지사가 건재해도 헤쳐나가기 쉽지않은 현안이다. 좌남수 도의회 의장도 도정 공백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4월30일 임시회 폐회사에서 “지사는 마지막 날까지 도지사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도정에 전념할 수 있을지 도민은 벌써 불안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 지사 스스로도 실토한 바 있다. 민선 6기 시절로 기억한다. “단체장은 불출마를 선언하는 순간 레임덕이 온다”고 했다. 그랬던 원 지사가 최근에는 “레임덕은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니 시시각각 변하는 화술이 놀라울 따름이다.  

과거에도 현직 지사의 불출마 선언은 몇차례 있었다. 2010년 김태환 지사, 2014년에는 우근민 지사가 지방선거를 각각 3개월여, 1개월여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두 지사의 불출마는 철저히 유·불리를 감안한 결정이었다. 쉽게 말해 그들의 앞날에는 공통적으로 정치적 암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선언의 시점도 시점이지만, 원 지사의 경우와는 결이 확연히 다르다. 원 지사의 불출마는 대권 도전과 관련이 있다. 그 것에 올인하기 위해 배수의 진을 쳤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최근에는 사퇴 시점을 놓고도 소동이 벌어졌다.  

한 주간지가 원 지사와 인터뷰 후 7월 사퇴 가능성을 제기하자 제주도는 “(원 지사가 인터뷰에서)특정 시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아직도 전말은 알 수 없다. 공직사회는 뒤숭숭해졌다. 이러한 분위기 자체가 기강의 이완을 낳고, 현안 해결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게 문제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 

원 지사는 재선에 성공한 직후 [제주의소리]와 가진 특별대담에서 “제주도민들에게 정말 맛있는 밥상을 차려서, 완수하기 까지는 다른데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고 했다. 그로부터 3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원 지사의 시선은 툭하면 서울로 향했다. 정말 맛있는 밥상이 도민에게 얼마나 차려졌는지는 의문이다. 도민들이라고 해서 지역출신 정치인의 대권 도전 행보에 마냥 박수만 보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 지사가 언제 사퇴할지는 모르겠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무리는 잘했으면 한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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