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번역원 해외한인문학 자료집 발간...“제주는 자아형성의 핵”

재일 한인문학 세계에서 ‘제주’의 존재감은 “가장 재일 한인문학다운 문학일 수 있게 만든 원풍경”이라고 부를 만큼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이 같은 평가는 한국문학번역원이 최근 발간한 ‘해외한인문학 창작현황 자료집’에서 상세하게 소개됐다.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의 문학과 문화를 해외에 전파해 세계문화의 형성에 기여하기 위한 문화체육관광부 관련 기관이다. 지난 1996년 한국문학번역금고로 설립돼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았다.

‘해외한인문학 창작현황 자료집’은 “1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 해외 한인공동체가 산출한 해외 한인문학”을 주로 다룬다. 총 네 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미주 한인문학(1권) ▲재일 한인문학(2권) ▲중국 조선족문학(3권) ▲고려인 문학(4권)이다.

출처=한국문학번역원.

이 가운데 재일 한인문학은 172쪽에 걸쳐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신문이나 잡지 등의 매체, 커뮤니티, 민족학교와 함께 형성된 재일 한인문학”과 “제주4.3, 여성·젠더, 혐한 언설, 재일 담론 등 사건과 주제를 중심”으로도 살펴본다.

김환기 동국대 일본학과 교수, 유숙자 번역가, 윤대석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이승진 건국대 KU연구전임교수 등 재일 한인문학 편 집필진은 재일 한인문학의 문학 지형을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가장 첫 번째 요소로 ‘제주도’를 꼽았다. 이들은 “제주도는 재일 한인작가들의 자아 형성의 핵”이라고 상당히 비중 있게 접근했다.

재일 한인문학 편.

# 제주 출신 재일 한인작가들

한국문학번역원은 재일 한인문학이 태동할 수 있던 배경으로 “일본의 천황제 제국주의가 야기한 동아시아의 근대적 왜곡과 침략의 역사”를 꼽는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생존을 위해 위로는 연해주·만주, 아래로는 일본 교토·오사카·고베 등으로 터전을 옮겼다.

특히 제주는 “일제 강점기에 취향한 제주-오사카의 정기 연락선 기미가요마루는 이들 두 지역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를 담당했는데 1924년경 오사카에 정착한 조선인의 60%가 제주 출신이라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제주도가 원 고향인 재일 한인작가의 규모와 면면을 봐도 제주가 재일 한인문학에 끼친 영향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소설가 김석범(1925~) ▲김태생(1924~1986) ▲양석일(1936~) ▲원수일(1950~) ▲김계자(1950~) ▲김창생(1951~) ▲김길호(1949~) ▲이양지(1955~1992) ▲김중명(1956~) ▲김마스미(1961~) ▲현월(1965~) ▲시인 김시종(1929~) ▲정인(1931~) ▲종추월(1944~2011) ▲허옥녀(1949~) ▲아동문학가 고정자(1947~) ▲논픽션 작가 고찬유(1947~) 등을 17명에 달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들 재일 한인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제주도의 역사를 비롯해 사회문화적 요소와 가치, 이미지를 직간접적으로 얽어냈다”고 평가했다.

출처=한국문학번역원.
출처=한국문학번역원.

# 가장 재일 한인문학 다운 풍경, 제주

한국문학번역원은 해외한인문학 창작현황 자료집에서 김석범을 “제주도를 문학적 원고향으로 삼은 대표적인 인물”로 꼽았다. 국내외 포함 4.3을 다룬 가장 초기 소설로 평가받는 ‘까마귀의 죽음(1967)’과 대하소설 ‘화산도(1997)’는 김석범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 속 “제주도와 제주문화는 재일 한인문학에서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그려지면서 일본에서 제주도가 외형적으로는 물론이고 내면적으로도 깊숙이 조명되는 계기로 작용”했는데 “실제로 해방을 전후해 관음사에서 한글 공부, 징병검사, 4.3 등 김석범의 직·간접적인 고향 체험은 작가로 하여금 강한 민족의식의 지팡이를 찾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김태생은 다섯 살 때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오사카 숙모 집에서 자랐다. 그는 “제주에서 보낸 유소년 시절을 자전적인 작품을 통해 잔잔하게 그려낸다.” 대표작은 ▲뼛조각 ▲나의 일본지도 ▲동화 ▲고향의 풍경 등이 있다. 

김태생은 4.3을 다룬 작품(후예, 보금자리를 떠난다)에서 “4.3사건에 얽힌 참담한 분위기를 직·간접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다른 한편 해방 정국이라는 격심한 정치 이념의 공간에서 배제될 법한 소년들의 순수한 대화를 통해 새삼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이미지를 되새기게 한다.”

일본의 유명 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출연하며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영화 ‘피와 뼈’의 원작자 양석일, ‘작은 제주’로 불린 오사카 이카이노의 풍경과 그 안에서의 제주도 여인들을 담은 종추월, 1951년 이카이노에서 태어나 “현실주의를 내세우며 재일 한인 사회에 팽배한 가족구성원들의 불협화음·결혼·이혼·조상의 산소 문제 등을 솔직 담백하게” 풀어낸 김창생, 1949년 제주에서 태어나 1973년 일본으로 향한 뒤 ”일본에 정착한 제주인들이 떠안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김길호, 대표작 ▲환상의 대국수 ▲바다의 백성뿐만 아니라 4.3을 1인극 형식으로 풀어낸 ‘순옥 할머니의 신세타령’을 발표한 김중명, 돗통시 같은 제주의 옛 생활풍습을 표현한 현월, ”한국 문화와 일본, 일본인, 일본 문화 사이에 가로놓인 경계의식과 자기 정체성 앞에서 치열하게 고뇌“하는 이양지 등도 제주 출신으로 일본 문학계에서 활동한 인물들이다.

출처=한국문학번역원.

한국문학번역원은 “제주도와 일본을 연결하는 기미가요마루로 표상되는 인적·물적 연결고리를 그들은 시와 소설로 그려냈다"면서 “일본 문단에서 좀처럼 흉내낼 수 없는 재일 한인만의 민족문화적 요소는 그것이 해방공간이든 제주4.3과 제주도의 역사·전통·민속의 공간이든 가장 재일 한인문학 다운 문학일 수 있게 만든 원풍경”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별도 항목에서 “재일 한인문학을 대표하는 두 거장(시인)”으로 제주 출신 김시종과 양석일을 꼽고 두 사람의 작품 세계를 상세히 소개한다. 이것 역시 재일 한인문학에 있어 제주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히, 김시종에 대해서는 ‘재일 한인잡지의 성장과 변화’에 큰 영향력을 끼친 ‘진달래’를 만든 인물로서 다시 별도로 비중 있게 다뤘다. 집필진은 잡지 ‘진달래’와 그 뒤를 이은 ‘가리온’에 대해서 “1950년대 재일 한인 사회의 오사카 문화 운동을 주도한 시 문예지”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김시종에 대해 “시의 본질에 대한 시인 김시종의 신념은 무엇보다 확고하다”며 “시인이 말하는 서정이란 곧 비평이다. 이는 추상적인 관념에 치우쳐 난해할 뿐인 일본 현대시의 경향에 대한 비판과도 상통한다”고 본인 만의 확고한 예술세계를 설명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자료집 출간과 연계해 ‘이산문학 온라인 심포지움’을 개최한 바 있다. 심포지움 전체 영상은 한국문학번역원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이번 자료집이 꾸준히 계속돼야 할 노력의 첫걸음일 뿐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아쉬움 또한 작지 않다. 더 많은 자료와 이야기를 담은 후속 작업을 통해 보완해 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외한인문학 자료집 관련 문의 : 한국문학번역원 02-6919-7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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