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21) 서귀포시 안덕면 '어떤바람'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 바람이 되고 
꽃에 불면
꽃바람이 된다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됐을까 

- 호시노 도미히로, 어떤 바람 전문

5월 초입의 소리가 어떤 바람을 타고 맴돈다. 맴돌다가 어느 집 문 앞에서 멈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는 치렁치렁 늘어진 담쟁이를 흔든다. 그리고 슬며시 문을 민다. 안에서는 돋을볕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한 송이 꽃인 양 반기는 사람이 있다. 책방지기 김세희, 이용관 부부다.

어떤 바람은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품에 안긴 동네 작은 책방입니다.
어떤바람은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품에 안긴 동네 작은 책방입니다.

“제주의 소리”

바람, 이 어휘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이나 ‘공기의 흐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바람이다.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품에 안긴 책방 “어떤바람”은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책방지기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훈풍에 휩싸이는 듯한 아늑함이 나를 감쌌다.

“어떤 바람”은 일본 작가 ‘호시노 도미히로’의 시 제목으로 아티스트 홍순관이 번안하고 곡을 붙인 노랫말이기도 하다. 노래에선 Wind라는 의미로 쓰였지만, 부부는 이곳을 다녀간 이들에게 책방 “어떤바람”은 과연 ‘어떤 바람이 되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나아가 책방 “어떤바람”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어떤 바람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어디선가 말갛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집에서 키우는 새소리가 아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새장을 찾았다. 아, 스피커에서 흐르는 소리였다. 제주의 소리를 모은 스피커다.

책방 “어떤바람”은 제주의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사진과 영상 작업을 주로 하는 김도태 작가와 함께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워크숍을 열어 스피커를 제작했다. 제주의 소리는 귀로 듣는 소리 외에도 눈으로 보는 소리, 피부로 느끼는 소리 등 공간에 있는 물질도 채집한다. 곶자왈의 나무와 돌, 이끼, 바닷가 모래밭의 조개 등 각자 주워온 것들을 스피커에 붙여 제작하는 것이다. 언뜻 ‘자연을 훼손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돌이나 이끼라고 해도 새끼손톱만큼 작은 것들이며 조개껍데기가 대부분이다. 곶자왈에서 채집한 제주의 소리는 맑았다. 마치 내가 숲에 든 것 같다. 손님들도 새 소리를 들으면 숲속에 있는 것 같다며 좋아한다. 이처럼 소리를 채집하면 누구나 자연의 소리를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책으로 낭독한 소리도 있다. 지난번엔 김순이 시인의 팬들이 책방에서 시낭독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팬들은 시인을 모셨다. 그리고 시인의 시집 “제주야행”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시 낭독과 함께 이유를 설명했다. 부부는 한 시간 반 분량의 낭독을 녹음하고 시집에 붙였다. 시집에서 흘러나오는 제주의 소리, 생각만 해도 신선하다. 듣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김순이 선생님께 기념으로 드려서 없다고 했다. 이처럼 제주의 소리 스피커엔 제주의 풍경만을 담는 게 아니다. 제주에 머무는 혹은 머물렀던 사람들이 그 공간에 있는 소리를 가지고 또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 

책방지기 이세희•이용관 부부와 반려견 산방이. 오른쪽 구석 상단에 제주의 소리를 들려주는 스피커가 보인다.
책방지기 이세희, 이용관 부부와 반려견 산방이. 오른쪽 구석 상단에 제주의 소리를 들려주는 스피커가 보인다.

“일일 책방지기와 북토크”

코로나19로 책방은 군집 행사를 멈춰야 했다. 그렇다고 행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부부는 방향을 달리하고 작가들의 일일 책방지기, 북토크 등의 행사를 열었다. 

일일 책방지기엔 다양한 형태로 제주에서 삶을 표현해내는 작가 중 김홍모 작가가 다녀갔다. 글보다는 제주의 신화나 제주의 4.3, 제주에 있는 세월호 생존자들을 위해서 만화를 그리고 널리 알리는 작가다. 본업이 작가이면서 해녀들처럼 아무 기구도 없이 물속에 들어가는, 즉 프리다이버로 활동하는 정우열 작가도 다녀갔다. 그는 ‘올드독’이라는 작가명으로 늙은 개와 함께 제주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네이버에 연재하고 있다. 웹툰 연재를 《노견일기》라는 책으로 내기도 했다. 

예멘 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 《암란의 버스 야스민의 나라》 작가들도 다녀갔다. 이들은 작업을 소개하는 북토크와 함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을 그리고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드로잉워크솝’을 열기도 했다. 환경운동단체인 ‘핫핑크돌핀스’도 《바다,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하여 북토크를 했다. 돌고래 보호 단체인 ‘핫핑크돌핀스’는 북토크를 통해 2011년 수족관에서 바다로 돌아간 돌고래 제돌이부터 현재까지 만난 해양동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 활동은 바다와 인접해서 사는 우리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일 년간의 바당구조대 작업 《풍덩, 바당구조대》도 전시했다. 《풍덩, 바당구조대》는 해양정화 활동 자원봉사자 “핫핑크돌핀스 바당구조대”의 전시회다.

작가는 대부분 책을 생산할 뿐 유통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책방에서 이들의 활동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책방엔 작가의 팬들도 오지만 작가를 몰랐던 고객들도 온다. 이들은 작가의 책이나 추천하는 작품 등을 소개받기도 한다. 작가는 단지 책방지기 역할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면서 책의 흐름인 한 과정을 담당하게 된다.

행사에 참여한 일일 책방지기는 대부분 그림과 만화를 직접 그리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일일 책방지기로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원화도 전시했다. 손님도 일일 책방지기도 원화를 감상하면서 새로운 발견의 계기가 된다. 강연이 아니어도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 소통하는 기회다. 코로나19 이후 책방에서 일일 책방지기 행사를 하는 이유다.  

“1박 2일 올렛길 여행으로 얻은 감투, 책방지기”

9년 전 여름방학 때, 김세희 씨는 한 달 살기로 제주에 왔었다. 노형동에서 원룸을 얻어 지내는 동안 김세희 씨는 자녀들과 함께 제주를 돌아다녔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매일 바닷가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자녀들 역시 책을 좋아했기에 종종 도서관에 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도서관보다 서점이 더 익숙했다.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사는 게 즐거운 행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땅한 서점이 없었다. 서점이라고 해서 가보면 어른들 베스트셀러 혹은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책을 살필 수 있는 서점이 아니었다. 제주로 이주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서점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아쉬웠다. 서점이 있는 마을에서 살고 싶었던 부부는 고민 끝에 직접 서점을 하기로 했다. 

자기만의 색깔이란 어떤 것일까. 서점을 하겠다고 하자 주위에선 ‘색깔을 분명히 해라. 특징 있는 걸 해라.’ 등 조언이 많았다. 조언은 조언일 뿐이다. 책방이 잘 되든 안 되는 조언하는 사람에게 책임이 부과되지는 않는다. 결정은 본인의 몫, 책임도 본인의 몫이다. 부부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저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책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가끔 어떤 식으로 책을 선정하냐고 묻기도 한다. 부인 김세희 씨는 자신이 읽고 싶거나 읽었던 책 중에서 선정한다. 그러다 보니 상황에 따라서 책방지기의 편견이 담긴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서점을 하면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이 있다. “책 컬렉션이 좋다. 자신들과 너무 잘 맞는다.”, 혹은 “여기 책이 잘 선정되어 있다고 해서 왔다.”라는 말을 들을 때다. 자신의 책 선정이 편견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저녁 시간, 모임에 참가하는 멤버를 책방지기 부부가 맞이하고 있다.
저녁 시간, 모임에 참가하는 멤버를 책방지기 부부가 맞이하고 있다.

“머무르고 싶은 풍경”

책방 “어떤바람”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 깔려 있다. 여름을 앞두고 지붕과 외벽은 담쟁이로 싱그러웠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황량할 것이다. 그러면 또 어떤가, 황량해서 겨울이다.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은 또 얼마나 고울까. 바깥은 바깥대로 계산대까지 돌담으로 디자인한 책방 안은 더 제주답고, 더 머무르고 싶고,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공간이다. 굳이 말이 필요 없다.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절로 책을 읽고 싶고, 차를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책방 풍경과 분위기가 그렇게 말한다. 

연고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제주, 이곳으로 이주하겠다는 생각은 이용관 씨가 더 강했다. 두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해야 했던 김세희 씨는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 딸이 안타까웠던 어머니는 아이들을 봐 줄 테니 1박 2일 동안 어디 다녀오라고 했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1박 2일,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작은 일이 아니다. 부부는 올렛길을 걷기로 했다. 어디를 걸을까, 10코스를 선택했다. 화순에서 모슬포까지다. 

사실 이용관 씨는 1년에 두 번씩 해마다 제주도에 왔었다. 그러나 걷는 여행은 처음이다. 동네를 지나고, 밭 사이를 지나고, 바다도 지났다. 차로 다닐 때와는 사뭇 달랐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아름다웠고, 모든 시름을 잊게 했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직장생활이 힘들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마주하는 제주 바다, 공기가 좋았다. 특히 밭에서 자라는 감자, 브로콜리 등을 볼 땐 이루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스치는 돌담이 마치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았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동네라고 부를 수 있는, 그냥 동네라고 부르는 그런 데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9년 전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정도면 이미 제주에 관심이 있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고민한 끝에 부부는 결국 제주로 왔다. 

힘든 것도 있지만, 부부는 언제나 자연을 벗하며 살고자 했다. 서울에서는 자녀들도 대안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이제 기존의 공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연 이 선택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바다가 가깝고 산도 가까운, 도시 생활이 아닌 시골 생활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다.

담쟁이로 뒤덮인 책방 정면
담쟁이로 뒤덮인 책방 정면

“마을 책방은 더 있어야 해요”

책방 3년 차, 처음 1년 동안은 이곳에 책방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2년 차로 접어들 때 느닷없이 감염병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책방이 막 뿌리를 내리려 할 때 코로나19는 사정없이 부부를 흔들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부부는 1년 동안 해 오던 군집 행사를 다른 행사로 바꿔야 했다. 

4년 전, 이미 제주도엔 책방 바람이 불고 있을 때다. 부부는 제주에 내려오면서 바로 서점을 등록했다. 하지만 집을 고치는 등 공사가 늦어졌다. 본의 아니게 오픈이 1년 늦어졌다. 그 사이 제주에는 많은 책방이 생겨났다. 책방을 하면서 가장 좋은 건 자녀들에게 책이 있는 집, 책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간혹 제주는 왜 이렇게 작은 책방이 많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책방지기가 보는 제주는 아직 책방이 부족하다. 책방 없는 동네가 더 많다. 부부는 마을마다 책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서 책방은 살아남기 어려운 업종이다. 

예전엔 동네서점에도 사람이 득시글거렸다. 특히 시집은 누구나 즐겨 찾는 장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 많던 동네서점은 사라지고, 시를 쓰는 사람은 늘었으나 시를 읽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여행객들은 다르다. 부부는 여행객들이 시집을 많이 찾는 편이라고 말한다. 어째서일까? 여행지에서는 가장 읽기 무난한 게 시집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아마도 여행객의 감성과 서정시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책방 내부.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차도 마실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
책방 내부.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차도 마실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

“노을과 바다는 책방지기를 위로한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힘든 일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힘든 일을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것이다. 부부에게 가장 큰 위안은 노을이다. 너무 힘들 때 노을을 마주하고 앉으면 노을은 말없이 부부를 안아준다.

노을이 무척이나 예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부부는 서둘러 책방 문을 닫고 노을을 보러 간다. 이때 자녀들은 노을에 관한 음악을 찾아서 틀어주기도 한다. ‘쿵’과 ‘짝’이 잘 맞는 가족이다. 한낮이 무더운 날은 노을이 더 곱다. 인생에 비유하면 젊을 때 열심히 일한 사람이 노년도 아름답다는 이치다. 노을은 말없이 다가와 부부의 힘든 삶을 쓰다듬는다.

노을이 유난히도 고운 날, 빠알간 해를 보면서 가끔은 군침을 흘릴 때가 있다. 잘 익은 과일처럼 달콤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참 잘 익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았기에 저렇게 잘 익었을까. 어떻게 살면 저리도 잘 익을 수 있을까?’ 김세희 씨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김세희 씨는 노을을 보면서 소리 없이 울 때도 많다고 한다. 노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토닥여주는 느낌을 받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부부는 노을에서 힘든 삶을 위로받는다. 

부부가 제주에서 가장 좋은 건 노을을 맘껏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바다도 가깝다는 사실이다. 바다와 노을, 환상의 궁합이다. 하지만 도시의 경우 좋은 풍경은 가진 자들의 독점 소유나 다름없다. 그런데 노을은 주인이 없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물론 이곳도 조금씩 개발되면서 있는 자들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눈과 가슴만 있으면 아직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곳이다. 하늘이 넓은 제주에서 펼쳐지는 노을, 매일매일 다른 바다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제주다. 

“바다가 아파요”

사계 바다뿐만 아니라 제주 바다는 항상 아름답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다. 태풍이 불고 난 뒤, 혹은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국적 불명의 쓰레기들이 밀려올 때다. 이때 쓰레기는 나서서 주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사람을 압도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평상시 사계 바다는 쓰레기가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때는 기다란 사계 해변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쓰레기다. 우리나라 쓰레기보다는 외국에서 온 쓰레기가 더 많다. 그 쓰레기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삼다수 병은 또 어느 나라 해변에서 뒹굴고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부부에게 공포가 밀려온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쓰레기가 아니다. 저 바다 밑 심연에는 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있을까?

돌고래 보호 단체인 “핫핑크돌핀스”와 자원봉사로 해양정화 활동을 하는 프리다이버들이 본 바닷속은 그야말로 쓰레기 천국이다. 죽은 채로 발견된 고래의 배를 갈라보면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비닐봉지를 해파리인 줄 알고 먹는 거북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로 비롯된 해양생물의 수난, 충격이다. 이들은 1년 동안 활동하면서 느낀 점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이곳에서 전시도 했다. 사진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모은 쓰레기로 무엇인가를 만들기도 했다. 거북의 배에 든 쓰레기를 묘사하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해양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바로 해양 환경에 정화의 씨앗을 뿌리는 셈이다.

거리에서 바라보는 책방. 지붕도 외벽도 온통 담쟁이로 둘러싸였다.
거리에서 바라보는 책방. 지붕도 외벽도 온통 담쟁이로 둘러싸였다.

“아이들의 휴식처”

아이들은 어른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그림책이 있는 곳에 있고 싶다. 어른 책이 대부분이었던 책방,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와 아빠들에게 신경이 쓰였다. 

사람들은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찾아 이곳에 온다. 그런데 아이들의 부대낌으로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이 사실이 안타까웠던 부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생각 끝에 부부는 창가 옆에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서가를 마련했다. 아이들이 유독 이곳 창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을 서가에 채워놓았다. 내가 아이라도 쿠션을 등에 대고 책을 펼치고 싶은 창가다. 아이들은 창가에 올라가서 책을 읽고, 엄마와 아빠는 본인의 책을 고르면서 홀가분한 시간을 누린다. 부부도 손님도 모두 흐뭇하다. 이 또한 책방지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모가 아니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일이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마련해 놓은 서가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고르고 창가에 올라가 책 읽을 수 있는 이 공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마련해 놓은 서가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고르고 창가에 올라가 책 읽을 수 있는 이 공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20대를 키운 8할은 책모임”

김세희 씨 20대를 키운 8할은 책모임이다. 학업에 열중해야 했던 20대, 무척이나 바빴다. 게다가 두세 개의 책모임은 김세희 씨를 더 바쁘게 했다. 모임마다 적어도 한 권씩은 꼭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세희 씨는 밤을 새워서라도 모임에서 정해진 책은 꼭 읽었다. 덕분에 한 달에 세 권 이상은 정독하게 되었다. 그때는 힘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이 자신을 성장시켰다. 

지금 읽으면 또 다른 감상을 불러오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문익환 평전(저자 김형수, 실천문학사)”이다. 김세희 씨 본인이 알던 문익환 목사, 혹은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문익환 목사에 대한 편견이 담긴 시선일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편애하는 평가일 수도 있다. 이런 시선을 다 물리치고, 김세희 씨가 본 문익환 목사의 삶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이었다. 문익환 목사 삶의 궤적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다 들어있다. 때로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나라를 위했다. 의식이 깨어 있었고, 신앙인으로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정의와 공평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다. 공동체를 이루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족을 교육하는 등 정신을 나누었고, 통일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문익환 목사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 등에서 김세희 씨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길목에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 힘이 곧 정석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굴복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런 시대에서 자기중심을 세운 문익환 목사는 낮은 자리로 가면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힘과 능력, 열정을 사용했다. 당시 미국에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이면서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불의한 세상을 향해 분노했다. 문익환 목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하나하나 의미가 있었다. 김세희 씨는 가끔 이곳에 오는 20대들에게도 문익환 평전을 읽어 보라고 추천한다. 종교는 다를지라도 자기중심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보내주기도 한다.

돌담을 쌓아 제주의 소리를 더 진하게 하는 계산대 주변엔 다양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돌담을 쌓아 제주의 소리를 더 진하게 하는 계산대 주변엔 다양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거대하지만 익숙해지면 심드렁해지기도 하는 산방산”

지금 책방 “어떤바람”에서는 산방산 그림 전시 중이다. 책방에 전시된 그림들은 2019~2020년 사계리 마을 분들의 모임에서 탄생한 것이다. 산방산 그림과 함께 산방산 관련 책도 전시하고 있다.

이따금 부부에게 왜 제주에 내려왔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김세희 씨는 서슴없이 예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또 뭐가 예쁘냐고 다시 묻는다. 그렇다. 우리는 익숙함에 젖어 있다. 익숙함에 젖어 있다 보니 소중해도 소중한 줄 모르고, 예뻐도 예쁘다고 느끼지 못한다. 특별한 것도 익숙해지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때때로 부부는 이런 게 두렵다. 그럴 때마다 제주로 오던 첫 마음을 되새기면서 제주를 제대로 알고자 노력한다. 제주에 관련된 책을 책방에 많이 갖다 놓는 이유다. 제주에 처음 왔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 

산방전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계리 사람들은 언제나 산방산을 보고 산다. 산방산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존재이며 랜드마크이다. 익숙해지다 보니 때로는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있는 거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다르다. 그들에게 산방산은 아라비안나이트에나 나올 법한, 갑자기 솟아 있는 거대한 풍경이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임팩트 있는 풍경이다. 부부가 처음 여행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본 산방산은 주저앉을 정도로 놀라웠다. 그런데 때로는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들에게도 산방산이 익숙해지고 있음이다. 부부는 이제 제주에 속해 있고, 책방도 산방산 품에 안겨 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산방전을 하는 이유다. 이런 행사들은 이전에도 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이런 일을 하면서 김세희 씨는 지금 제주 신화에 푹 빠져 있다. 이용관 씨가 보기엔 마치 학위를 따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사계리 주변 사람들의 모임에서 산방산을 소재로 하는 그림을 모은 산방전.
사계리 주변 사람들의 모임에서 산방산을 소재로 하는 그림을 모은 산방전.

“마을 할아버지의 응원”

책방 문을 열고 며칠 안 됐을 때다. 책방 맞은편에서 무언가를 유심히 살피듯 목을 빼며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70대 정도의 그 할아버지는 휘적휘적 길을 건너더니 책방 앞에 다다랐다. 그리고 드르륵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여기가 뭐 하는 데냐고, 책을 파는 데냐고 물었다. 마을에 책방이 생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세희 씨가 서점이라고 대답하자 “서점? 책을 파는 곳?”이라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이야, 우리 사계리에 서점이 생기다니! 이런 역사적인 일이 있을 수 있나.” 하시면서 할아버지는 껄껄껄 웃으셨다. 교사 생활하다가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오셨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마을에 책방이 생겼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뻐했다. 부부에게 오래오래 있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기념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님 관련 책을 한 권 사 가셨다. 가까이 추사관이 있다는 이유다. 부부는 책방을 시작할 때 힘이 되어 준 그 할아버지를 영영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서점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간판도 없을 때였다. 마을에서는 서점을 좋아하는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간혹 ‘저들은 뭐 먹고 살려고 저기서 서점을 하냐.’는 얘기도 들릴 때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달랐다. 사계리 역사라면서 서점이 생긴 걸 기뻐했다. 게다가 응원의 말씀까지 해 주셨다. 고향으로 돌아오신 할아버지, 건강하기를 빌 뿐이다. 더불어 책방 “어떤바람”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이 코로나19도 물러나게 하고, 우리 모두의 삶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

산방전을 더욱 의미 있게 다루기 위해 산방산과 관련된 책들을 펼쳐 놓고 있다.
산방전을 더욱 의미 있게 다루기 위해 산방산과 관련된 책들을 펼쳐 놓고 있다.

“책방카페 어떤 바람은”

풍경을 찾아가지 않아도 때로는 풍경이 우릴 부를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품에 안긴 책방카페 “어떤바람”의 풍경이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겁니다. 그 소리가 들리거든 그곳으로 찾아가 보세요. 담쟁이가 지붕과 외벽을 덮은 풍경, 그 안에 제주의 소리가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돋을볕처럼 환하게 웃는 책방지기도 있습니다. 아, 송아지만큼 크지만 세상에 둘도 없이 순둥이인 반려견 산방이도 있습니다. 한 잔의 차에 든 제주의 소리, 한 권의 책에 든 제주의 소리, 스피커에서 흐르는 제주의 소리까지 모두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로 374
영업시간 : 화요일~토요일(월, 일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jeju.windybooks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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