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생각해 보고 뿌셔야지!"

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더듬어 생각해보니 살아오는 동안 후회할 일을 참 많이도 저질렀습니다. 어떤 일들은 두고두고 후회되는 지라 아주 오래 전의 일임에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굴이 후끈거리기 일쑤입니다. 심할 땐 자책감으로 얼굴을 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누구나 잘못,실수를 저지르겠지만 그러나 그 잘못과 실수가 한순간의 울화를 가누지 못한데서 싹을 틔웠다면 그 후회의 무게도 훨씬 크고 무거운 듯싶습니다. 최근에 그런 잘못과 실수 하나를,아니 실수가 아닌 명백한 잘못 하나를 보탰습니다.

거금 50만 원 가까이 들여 구입한 디카를 부셔버린 카메라 ‘뽀각’사건이 그것입니다.

 

 

▲부셔버린 카메라

 

한동안 꾸역꾸역 밀려오는 후회의 늪에서 ‘허우적’대게 한 이 사건은 장모님과 처제에게 제 다혈질적인 성격을 ‘유감없이’그리고 ‘적나라하게’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초등 1학년 딸아이에게도 ‘다섯 가지 잘못한 이유’를 들어야 했습니다.

구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최신 디카를 제 손으로 ‘뽀각’낸 카메라 ‘뽀각’사건의 전말엔 제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치의 보탬도 없이 말해서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곤 제 품과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디카가 마침내 ‘사망 선고’를 받은 건 두어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AS를 받으러 갔다가 ‘수리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새 것을 사는 게 낫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단종이 된 ‘구닥다리’지만 저를 사진의 세계로 안내했던, 그리고 곤충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던 ‘보물 1호’ 디카와 마침내 이별을 했습니다.

 

 

▲'보물 1호‘였던 구닥다리 카메라

 

그렇다고 곤충의 세계를 포기할 순 없는 노릇, 집사람에게 ‘염치도 없이’ 다시 다카를 사 달라고 졸랐습니다. 염치도 없다는 표현을 쓴 건 이미 오래 전에 카메라 구입비용으로 충분한 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진보다는 만화만 그렸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거듭된 충고(?)도 불구하고 기왕에 사진의 세계로 눈길을 준 바에야 눈길 거둘 때 거두더라도 ‘풍덩’빠져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을 조르고 졸라 카메라 구입비용으로 3백만원이라는 거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 돈 태반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그 즈음에 딱 맞춰 급전이 필요한 친구의 전화를 받고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은 ‘송금’을 해버린 것입니다.

‘왜 카메라를 안 사느냐’며 의아해 하는 집사람에겐 ‘고급 카메라를 사는데 아무거나 살 수 있나’면서 ‘기종을 고르는 중’이라고 얼버무리며 몇 달을 넘겼지만 끝내 돈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 집사람에게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오래도록 고이 ‘모셔뒀던’주식을 처분하기까지 하며 돈을 마련해 줬던 집사람은 ‘그런 줄 알았다’며 예상을 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한숨만 푹 쉬더군요.

그런 제가 다시 디카타령을 하니 염치가 없을 수 밖에요.

 

 

예의 그 한숨을 다시 쉬었던 집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원하는(무조건 최신제품을 골랐지만) 디카를 구입해줬습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이 디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는데 다름아닌 ‘접사 기능’때문이었습니다. 이전 디카보다 접사 기능이 세분화된 고급기종임에도 불구하고 접사는 되레 시원치 못했습니다. 곤충들의 세계를 포착하고 설레임 속에 셔터를 누르곤 했지만 찍힌 피사체는 매번 선명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마다 속앓이를 했습니다. 최신제품임에도 접사기능이 되레 떨어지는 이유를 지금도 알 길이 없지만 아무튼 곤충사진을 찍을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디카에 잔뜩 불만인 채로 지내다가 마침내 디카를 돌멩이에 내려쳐 ‘뽀각’을 낸 날은 모처럼 작정을 하고 장모님,처제,아이들이랑 나들이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늘 바쁘다는 이유로 주말에도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지라 제 딴엔 ‘만사를 제쳐놓은’날이기도 했습니다.

장모님이랑 처제 그리고 두 아이랑 나들이 도중에 잔디밭에 앉아 잠시 쉬던 차였습니다. 사단은 이때 일어났습니다.

사진을 찍다가 디카에 ‘격분한’제가 울화를 참지 못하고 디카를 돌멩이에 내리친 것입니다.

“에라이, 이 망할!”

 

 

 

돌에 부딪쳐 생체기가 난 디카. 그런 디카를 보니 속이 상하기도 하고,그런 와중에 ‘와락’ 화가 나기도 해서 두 손으로 아예 ‘뽀각’을 내버렸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지를 약간은 아는 큰딸 유나(초등 1년)를 비롯하여 제 주위에 있던 가족들의 놀란 표정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일부러 태연을 가장하고 인근 식당을 찾아 식사도 하면서 나들이를 마저 했지만 이미 가슴 한켠엔 돌이키지 못할 후회의 감정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깔리는 제 방에서 창 밖을 보며 담배를 푸석이는데 회사 출근 때문에 나들이에 동참하지 못했던 집사람이 방 문을 열었습니다. ‘딸아이에게 들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지라 ‘후회하고 있어’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집사람이 다시 물었습니다. ‘뭐가 후회되는데요? 카메라 부순 거요? 아니면 애 앞에서 그렇게 한 거요?’

비수처럼 와 닿는 말, 사실 카메라를 부순 것도 후회가 됐지만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 앞에서 그런 과격한 모습을 연출한 것이 더 후회가 됐습니다. 하루가 지나서도 마치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느낌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내 행동이 분명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변명이든 뭐든 뭔가 해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쭈뼛대다가 이윽고 딸아이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아,음...어제 아빠가 카메라 부순 거는 잘못한 거 같아. 후회가 되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되받아치더군요.

“아빠는 다섯 가지를 잘못했어!”

헐,다섯 가지씩이나? 딸아이에게 교훈(?)을 주려다가 예상하지 못한 역공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첫째가 뭔데?”

“카메라를 돌멩이에 ‘팍’ 한 거!”

“음, 그건 사진이 잘 안나와서 그랬지.”

그러자 딸아이의 반격(?)이 즉각 이어집니다.

“그러면 고치는 데 가서 고쳐야지,뿌시냐?”

“짜증이 나서 그랬지.”

제 딴에도 참 유치한 변명을 늘어놓는다는 생각을 금치 못하고 있었는데 딸아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집니다.

“아,그러니까 고치는데 가서 먼저 고쳐야지! (고장난 걸)자꾸 만지니까 짜증이 나지!!”

수긍할 수 밖에 없겠더군요.

“마,맞아,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 이어진 딸아이의 지적은 옴짝 못하게 하는 비판이었습니다.

“먼저 생각을 해 보고 난 다음 뿌셔야지,그렇게 막 뿌시면 되냐?”

 

 

 

먼저 생각을 해보고? 명료하면서도 핵심을 짚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일단 저질러놓고 후회를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마...맞아. 그럼 세,세 번째는?”

세 번째 지적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와닿았습니다.

“뿌실라면 이모나 주지,왜 뿌시냐? 아니면 나 주든가.나는(그 카메라가) ‘샥’하면 나오고 좋기만 하더라”

딸아이와의 대화는 ‘아빠가 뿌신 거’와 꼭 같은 카메라를 훗날(딸아이가 초등 3학년이 되면)사주기로 약속을 하며 마무리를 지었습니다만, ‘뿌셔진’카메라를 볼 때마다 ‘먼저 생각해 보고’라던 딸아이의 말이 생각납니다.

때로는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큰 것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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