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활동가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BiT)을 맞아

오늘, 5월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IDAHOBiT)의 날이다. 31년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올해는 성소수자 동료시민들의 부고 소식이 자주 들려온 가슴 아픈 해였다. 나 역시 올해 트랜스젠더 친구를 떠나보냈다. 스스로의 모습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친구를, 영정사진으 마주했다.

친구를 보낸 이후에 나는 한동안 무엇이 그 친구가 그런 선택을 하게 했을까라는 질문에 빠져 지냈다. 친구는 스스로의 모습과 정체성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출처=오마이뉴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이 친구도 원하는 직업에 도전하고, 외출해서 화장실을 갈 수 있고, 성별 때문에 입원이 제한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출처=오마이뉴스.

그러나 생각해보면 친구에게 이 세상은 거대한 벽 투성이였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는 일이 ‘남성답지 못하다’ 는 이야기를 오랜 기간 직장에서 들어야만 했고, 면접관들은 친구에게 ‘머리를 기르지 않을 수 있냐’, ‘화장을 하지 않을 수 있냐’라고 묻곤 했다. 친구는 결국 오랜 꿈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택했다. 외출하면 남자화장실도 여자화장실도 갈 수 없기에,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화장실 가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협박을 당하거나, 길거리에서 혐오발언을 듣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그저 나로서 존재하기만 했는데 일어났다. 그런 일상은 누구에게도 ‘살 만한 것’은 아니었을 거다.

작년 6월 21대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을 보며,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이 친구에게 세상은 적어도 벽 투성이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이 친구도 원하는 직업에 도전하고, 외출해서 화장실을 갈 수 있고, 성별 때문에 입원이 제한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는 공기처럼 떠다니는 당연한 권리들을 평범히 누리면서 말이다. 

2017년 한국 트랜스젠더의 건강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중 40% 넘는 이들이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 고 답했다. 차별 피해를 당하더라도 적절히 구제받지 못하고, 나의 존엄을 지켜줄 안전망이 없을 때 삶은 살 만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은 생존의 문제다. 모두가 나로서 행복하게 존재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는 차별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평등을 실현하는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5월25일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된다. 지면을 빌어,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길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활동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만인선언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하다.

우리는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외모,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學歷),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우리는 요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