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

인간의 일생과 밀접한 사물을 꼽는다면 ‘이불’은 빠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새 생명이 몸을 누이는 순간부터, 날마다 이불 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도 육신 아래에는 이불이 깔려 있다. 그렇게 이불은 우리의 시작과 끝, 삶과 늘 함께하는 존재다. 

하얀 이불 위에 길고 하얀 천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천의 너비는 성인 새끼손가락에서 집게손가락까지 정도. 그 중 십수여 장은 전시실 천장 구조물에 헐겁게 묶여 바닥까지 늘어뜨렸다. 겹겹이 쌓인 천들로 인해 마치 거대한 알처럼 느껴지는 두께감.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사람의 손이 뻗어 나온다.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보다 넓어진 하얀 이불 위에 누워있는 신체, 그 위를 얇은 천이 감싸고 있다. 투명하면서 동시에 흰 색감이 살아있는 천은 흡사 막(膜)처럼 표면을 덮고 있어, 껍질로 둘러싸인 번데기를 보는 듯하다. 장엄한 음악과 함께 번데기 속에서 움직임이 나타난다.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은 명확히 대비되는 두 개의 장면-주제 속 이불이란 소재를 활용한다. 동시에 원로 무용인 홍신자의 몸짓과 음악을 더해 삶과 죽음, 인생의 환희를 이야기한다.

작품은 두 개의 막으로 나뉜다. 첫 번째 막, 무수히 쌓인 천속에서 상체를 드는 무용수 홍신자는 복잡하게 엉킨 천속을 헤집으며 끌어당긴다. 뜻을 알 수 없는 노인의 목소리, 비명과 조소 사이에 위치한 차가운 웃음소리, 낮은 울림이 강조되는 음악, 짧게 등장하는 날카로운 악기 소리, 박수와 환호성, 비바람과 천둥, 들숨과 날숨이 불편하게 반복되는 소리 등이 공연장을 감싸며 무용수의 몸짓은 조금씩 힘이 더해진다. 어렵게 이불 위에서 일어선 무용수에게 흰 가면을 든 검은 존재가 다가서고, 무용수는 가면을 들고 이불과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이불 위 존재는 고통과 혼란스러움으로 점철됐다. 이불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 검은 존재가 등장해서야 나가는 과정은, 이승에서의 고통을 비로소 저승에서 털어내는 것 같은 구조로 다가온다. 특히, 박수와 환호성에도 전혀 기뻐하지 못하며 대비되는 장면은, 선구자의 길을 갔지만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와 오히려 모국에서 외면 받아온 홍신자 개인의 족적과도 맞물리면서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고통을 부각시켰다. 들숨과 날숨이 고르지 못하게 등장하는 의도적인 불편함 역시 고통과 이어지는 흐름이다.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하지만 작품은 인생이 고통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달라진 무대, 얇은 막을 헤치고 나온 무용수는 이불 위에서 아주 원초적인 움직임부터 시작한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오므렸다 펴고, 누워있는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자기 위치, 존재를 확인한다.

눕고, 엎드리고, 뒹굴다가 네 발로 걷는다. 손으로 발목을 잡고 바들바들 버티다가 비로소 두 발로 선다. 자연스럽게 선 무용수는 두 팔을 쭉 펴고, 손을 모아 입에 가져가기도 하고, 무언가를 받고 만지는 등 점점 동작을 구체화 시킨다. 그리고 소중한 무언가를 감싸 안은뒤 환희에 찬 모습으로 공연은 막을 내린다. 

이는 생명이 주체성을 가지는 과정인 동시에, 또 다른 생명과 만나면서 잉태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온 몸으로 ‘삶은 고통’이라고 말했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생명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과정이 모두 '이불'에서 구현된다. 그건 ‘삶은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고귀하고 아름답다’는 중요한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 연출을 맡은 민경언 커뮤니티아트랩 KOJI 대표는 작품 설명에서 "2020년 11월 홍신자와 장례 퍼포먼스를 함께 준비하던 중, 홍신자에게 다시 태어나 새로운 존재로 살아보는 것을 제안했다. 이를 수용한 홍신자가 스스로에게 '아가(AGA)'라는 이름을 지으면서 비로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고 밝힌다.

더불어 “희고 깨끗한 이불 위 무대에서 삶의 시작과 끝, 끝과 시작의 숭고하고 순수한 자연인으로의 순간으로 함께 간다. 이 작품은 한 인간으로써 겪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개인을 억압하는 모든 굴레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에너지를 공연과 전시를 통해 구현”한다고 밝혔다.

홍신자는 올해로 82세가 됐다. 사회 통념상으로도 충분히 많은 나이. 무대에서도 화려하거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간결하게 표현해 내는 동작들은 그녀가 왜 ‘한국 전위무용의 선구자’로 평가받는지 저력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두 팔을 뒤로 돌려 닿는 동작을 두 번에 걸쳐 성공시키는 모습은 무용수로서 존재감을 관객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증명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더불어 마지막 새 생명을 품는 동작은, 무수한 경험과 고뇌의 시간을 지나오며 황혼에 접어든 관록의 무용수가 보여준 것이었기에, 관객 가슴 깊이 스며들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On the blanket’은 공연과 전시를 묶은 작품이다. 공연 시작에 앞서 관객들은 여러 전시 작품을 함께 관람하고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지난해 11월 홍신자가 선보인 ‘장례 퍼포먼스’ 영상이 상영되고, 화면 앞은 구멍이 파인 신문지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후 흰 옷 고름들을 걸어놓은 공간을 지나 입장했다. 신문지를 활용한 설치 작품은 민경언 대표, 흰 옷 고름은 신소연 작가의 작품이다. 민 대표의 작품은 죽음에 대한 시선을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동시에 지난 작업과 새 작업을 대비시키는 효과를 각인시켰다. 신 작가의 고름은 굿에서 사용하는 소품, 기메를 연상케 하며 신비감을 불어 일으켰다.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에 앞서 공개된 전시.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에 앞서 공개된 전시.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에 앞서 공개된 전시.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민경언, 신소연 두 사람은 이번 작품에서 각각 작·연출·음악·설치 전시와 설치 전시·의상을 담당했다. 두 사람은 2018년 전시·공연이 복합된 ‘사라진 것들의 미래-사남굿 설문대’를 비롯해 뮤지컬 ‘바리스타즈’ 등 여러 작품에서 손발을 맞춰왔다. 배우에서 지금은 다원 예술 창작자로 영역을 구축한 민경언, 전통 침선 공예에서 설치미술로 나아가는 신소연. 제주 정착과 함께 영역을 넓혀가는 두 예술가가 원로 무용인과 함께 한 ‘On the blanket’ 이후 보일 행보도 주목할 일이다. 

작품에서 모든 음악은 민경언 연출이 작곡했다. 2막 시작과 함께 천에 감싼 무용수가 모습을 보이고 처음 움직일 때 등장한 음악은 타악기와 관악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스 짐머, 슈트라우스를 연상케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사족이지만 이 장면들에서 음악이 가지는 서사가 무용수를 넘어섰다는 인상을 받아 어울리는 구성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On the blanket’은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원로예술인공연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당시 175개 심의 대상 중 28개 작품이 최종 선정됐는데, 다원 예술 분야는 9개 중 유일하게 이 작품만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역시 원로 예술인 지원 사업을 수년 째 이어오고 있다. 여전히 예술의 길 위에 서 있는 지역 원로 예술인들의 노력들이 제주도민들에게 최대한 많이 소개되길 이번 기회를 통해 가져본다.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공연 모습.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왼쪽부터 신소연, 홍신자, 민경언. 제공=커뮤니티아트랩 KOJI.
지난 15일~16일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는 ‘커뮤니티아트랩 KOJI’의 다원 예술 공연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가 열렸다. ⓒ제주의소리
‘On the blanket(이불 위에서)’ 입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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