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서른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지(漬, 담글 지) 더 드릴까요?’ 

전주 식당에서 늘 듣는 말이다. 아주 오래 전 전주에 왔을 때, 전주 한옥마을 인근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주인아줌마가 상냥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물음을 받고 '지'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잠시 머뭇거렸더니 상냥한 아줌마가 전주에서는 김치(菹, 김치 저)를 지(漬)라고 한다하여 김치가 '지'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치'는 한자어이고 '지'가 우리 고유어다.

제주에는 마농지(大蒜漬)가 있다. 제주 안덕 대정지역을 중심으로 마늘이 많이 재배된다. 특히 요즘 같은 봄이 되면 알뜨르 지역을 다니다 보면 마늘밭이 가장 흔하게 눈에 띤다. 이렇게 재배된 마늘은 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마늘의 알은 대체로 양념용으로 사용하고 마늘 줄기는 나물로 먹는다. 그리고 어쩌면 제주사람들이 마늘에서 가장 주인공이라고 여길 수 있는 ‘풋마늘대’로는 일 년 내내 두고 먹을 마농지를 담근다.

제주사람들이 마늘에서 가장 주인공이라고 여길 수 있는 ‘풋마늘대’로는 일 년 내내 두고 먹을 마농지를 담근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사람들이 마늘에서 가장 주인공이라고 여길 수 있는 ‘풋마늘대’로는 일 년 내내 두고 먹을 마농지를 담근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부 지역에서는 마늘대를 콥대산이라고도 부른다. 마늘잎과 마늘대, 마늘알을 통틀어서 콥대산(大蒜). 이 마늘은 지금 제주의 봄철에 만날 수 있는 식재료이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우리말샘’에 의하면 콥대산이(大蒜)는 마늘의 제주말이다. 한자 ‘蒜’은 ‘마늘 산’이다. 요즘 본격적인 마늘 수확기를 앞두고 5월 초부터 6월 초까지 한 달간 농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은 연인원 기준 5만명에 이른다. 제주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된 월동 채소 작업을 마무리하고 향후 3주에 걸쳐 마을 수확이 이뤄진다. 짧은 기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수확이 이뤄져 한꺼번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600여명이 육지에서 비행기타고 온다.

지로 끝나는 말은 참말로 많다.

강아지, 노다지, 달구지, 아버지, 할아버지 등이 지로 끝나는 말이다. 특히 ‘漬’로 끝나는 말 중에는 사람 몸과 관련된 것이 많은데, 한때 유행했던 가벼운 에피소드 한 가지를 꼽아본다. 

​어느 결혼 정보 회사에서 100명의 남녀가 참가한 단체 미팅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파트너가 정해지고 흥겹게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때 사회자가 분위기를 띠우기 위해 상품권을 내걸며 야릇한 퀴즈 놀이를 시작했다. 

“사람 몸에서 지 자로 끝나는 신체부위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자 사방에서 장딴지, 허벅지, 엄지, 검지, 중지 등의 답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얼마안가 은밀한 부위를 빼고는 지 자로 끝나는 말이 없어 조용해 졌다. 사회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자~ 여러분! 아직까지 신체에는 지 자로 끝나는 부위가 남아 있지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답이 남여 모두에게 하나씩 남아 있어요. 이번에 답을 맞춘 분에게는 1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드리겠습니다”라면서 답을 유도했다. 그러면서 사회자는 힌트를 준다며 “다들 아시죠? 있잖아요. 거기...”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누가 그 부위를 말할 수 있겠나? 설레는 마음으로 좋은 이성을 만나기 위해 온갖 내숭을 다 떨어야하는 그 상황인데. 그런데 뜻밖에 일이 일어났다. 중간 쯤에 앉아 있던 곱상한 아가씨가 “저요!”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온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가씨는 배시시 웃으며 “목아지!”라고 말했다. 할 수 없이 사회자는 이 아가씨에게 상품권을 줄 수밖에 없었다. 1등상이다.

김치 이야기가 나왔으니 짧은 쌀 이야기도 더해본다.

전주에서 많이 쓰는 말이 쌀을 사러간다 하지 않고 ‘쌀을 팔러간다’로 쓴다. 1960년대 한 달 하숙비가 쌀 여섯 말이었다. 돈보다 쌀이 통용가치가 높았던 때다. 1969년 기준 전북 정읍 고부면 기준으로, 당시 논 200평(661.1㎡)이 한 개 당 90kg 무게의 벼 20가마 정도로 매매됐다. 당시 제주에서는 명절 때나 제사 때 산디 ‘곤밥’을 먹을 때였다.

“콥대산(大蒜)이 하고 된장 줍서.” 요즘도 식당에서 추가로 찾는 나의 메뉴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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