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22) 대정읍 모슬포 동네책방 ‘어나더페이지’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작은 책방으로 스며드는 한줄기 햇볕, 이는 어쩌면 소외된 자들의 삶을 향한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지구시민책방 “어나더페이지”는 약소국의 인권을 위한 책과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고, 후세대를 위해 제로 플라스틱을 지향한다. 나 역시 이번을 계기로 공정무역 커피를 맛보았다. 기분 탓이었을까, 커피라면 그저 ‘커피인가 보다.’ 하고 마시는 나로서도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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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활짝 핀 아마릴리스가 웃으며 반긴다. 마치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하는 것 같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말도 안 되는 일들”

미모의 책방지기 신의주 씨는 내 아들과 똑같은 나이로 30대 초반을 넘어서고 있다. 자식 세대인지라 어리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생각과 행동, 실천은 나보다 훨씬 더 큰 어른이었다. 신의주 씨는 국제개발협력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몽골, 스리랑카 등에서 인권을 위하여 일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책방엔 환경&로컬, 다양성, 문학&인문학 등 우리가 자각해 봐야 할 책들이 서가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으로 온 지는 3~4년 정도, 이제 환경 분야에서도 움직여야 할 때다. 그래서 돌고래 보호 단체인 “핫핑크돌핀스”와 함께 해양활동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4월부터 7월까지 이어지는 심야책방도 시작했다. 심야책방의 4월 주제는 환경, 5월 주제는 동물권과 환경, 건강한 몸을 연결한 채식이다. 6월은 이주민과 난민, 7월은 여성에 대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의도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이처럼 여러 방면으로 신의주 씨는 노력하고 있다. 

이곳과 개도국에서의 삶, 그곳에서 만났던 이들의 삶은 전혀 다르다. 개도국에서 활동했던 신의주 씨에겐 이런 게 현실로 와 닿지만, 여전히 남의 이야기일 뿐인 사람이 많다. 이런 사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신의주 씨는 누구나 쉽게 접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책방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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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초등학교 옆에 자리한 동네책방 “어나더페이지”는 책방지기 신의주 씨가 할머니의 집에 세 들어 운영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을 하게 된 이유는”

공정무역이란 생산자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소비자에게는 좀 더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윤리적인 무역을 말한다. 보통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거래는 부의 편중, 환경파괴, 노동력 착취, 인권침해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두된 무역 형태이자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사회운동이 곧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 커피는 르완다나 콜롬비아 등 대부분 저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다. 커피를 소비하는 대상은 대부분 선진국이지만, 생산하는 이들의 삶 역시 소비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 커피를 생산하기까지 여성들에게는 성폭행이나 성 착취 등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가 아니라 일터로 가는 게 당연한 삶이 그들에게는 현재다. 하지만 커피를 소비하는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아니, 안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거니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방지기는 이처럼 불합리한 사실과 넓은 세계를 조금 더 친밀하게 연관시켜주고자 한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더 쉬운 이야기이며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책방을 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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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서가다. 이 서가에 꽂힌 책들은 서가의 이름에 걸맞게 여성, 난민, 이주민, 장애, 차별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동노동은 근절되어야 한다”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고자 방정환 선생님은 1922년 천도교 서울지부 소년회에서 ‘어린이날’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 일제강점기 말에 중단되기도 했지만, 해방 후 1946년 다시 기념일이 거행되면서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변경되었다. 어린이날이 있기에 어린이가 존중의 대상임을 우리는 한 번 더 인지한다. 하지만 개도국의 경우는 다르다. 아동노동이 심각하다. 

세계화와 자유 무역 현상으로 가난한 나라에선 자원과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 싼 인건비로 이윤을 남기려는 이들의 비윤리적인 태도는 아이들을 노동의 현장으로 내몬다. 가혹한 형태의 노동은 아이들의 정신적‧신체적 성장을 방해하고, 생명까지도 위협한다. 아이들은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까지 박탈당하며 성인이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에 제약받기도 한다. 

아동노동은 주로 방글라데시, 코트디부아르, 인도네시아와 같은 약소국이나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독재 국가에서 이루어진다. 아동노동의 책임은 싼 인건비로 이윤을 얻으려는 기업과 이를 묵인하는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 다양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사려는 소비자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국적이 있든 없든,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아동이라면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아동노동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기업, 국가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는 구매하는 제품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확인하고, 비윤리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는 주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공정무역 상품을 구매하는 것 또한 아동노동을 막는 길이다. 기업은 이윤을 남기겠다는 목적만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비윤리적으로 생산된 제품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하며 임금도 정당하게 지급해야 한다. 국가 또한 아동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 수입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규제해야 한다. 약소국의 아이들이 아동노동의 현장에 내몰리지 않도록 국제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아동노동이 일어나는 국가의 경우 대부분 권력이 부패 되어 있다. 이런 사실들은 세계에 알려져야 한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나는 어떤가? 과연 전혀 몰랐던 이야기인가? 아니다, 이론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이 문제다. 책방지기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얼굴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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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시민책방’은 어나더페이지의 애칭이다. 책방지기 신의주 씨는 애칭인 지구시민책방을 좋아한다. 지구시민책방 서가에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서 공존하기 위한 환경과 로컬, 인권, 다양성 등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누구나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컬렉션이 준비되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환경엔 국경이 없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그야말로 희생자였다. 할머니 세대는 더 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갈수록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한 세대는 누구일까?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다를 것이다. 물질이 행복의 대명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풍요로움의 반대편에선 더 궁핍해지는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승자의 득점과 패자의 실점 합계가 영(零)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경제적‧문화적‧사회적으로 성장했다지만 우리는 그 이면의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과연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어머니 세대에선 잘못된 것에 대해 저항하기보다는 복종하고 따랐다. 우리 세대로 접어들면서 잘못된 것에 대하여 저항하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 저항이 옳지 않다고 여겼다. 그저 기존하는 것들이 답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비판적인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자기 의사를 가감 없이 표현한다. 인터넷까지 합세하며 조성되는 여론의 여파는 크다. 

환경엔 국경이 없다. 2018년 8월 20일,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 위기가 심각한데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학교 대신 국회 앞으로 갔다. 금요일마다 등교 거부 운동을 하면서 트위터를 통해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란 해시태그를 붙이고 자신의 행동을 알리기도 했다. 이는 진보 성향 청소년층에게 큰 파장이었다. 특히,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라는 발언은 환경 보호 단체의 호응을 얻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 기후 행동에 나선 전 세계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를 향해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외친다. 잘못된 것에 대한 외침엔 두려움이 없다.

어찌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세대는 기성세대인지도 모른다. 희생만 강요당하며 살아온 어머니 세대와 달리 기성세대에선 여성에 대한 인권도 적잖이 개선되었다. 물질도 어느 정도 누렸다. 그런데 문제는 환경이다. 온실가스로 기후 변화가 초래한 위기 앞에서 과연 후세대는, 기성세대가 저질러 놓은 재앙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이다. 지금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지구가 열 개라도 멸망한다는 말이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화두는 오래전부터 던져지고 있지만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레타 툰베리가 더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책방지기 신의주 씨가 제로 플라스틱을 지향하며 환경 책방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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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 신의주 씨가 책을 정리하고 있다. 창가 너머 맞은편 집에서는 비파가 노랗게 익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절로 힐링이 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맹랑한 녀석 상상”

상상이란 참으로 맹랑한 녀석이다. “해저 2만 리(저자 쥘 베른, 그림 폴린 뒤아멜, 역자 이선미, 출판 크레용하우스)”를 보면 과학적 상상력은 창조를 이루는 힘이다. “해저 2만 리”에서 전기를 이용한 잠수함이 등장하고, 86년이 지난 후 1954년 미국에서는 세계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을 만들었다. 기존의 잠수함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동력을 갖춘 이 잠수함의 이름은 ‘노틸러스호’다. 

나도 가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한다. 90년대 초반엔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상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실현단계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나의 상상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요즘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기계 상상에 빠졌다. 나의 상상에선 쓰레기를 분리할 필요도 없다. 세탁기처럼 생긴 기계에 모든 쓰레기를 집어넣고 버튼만 누르면 단계별로 분해되어 나온다. 예를 들어서 나뭇가지 등 식물 조직들은 흙으로 분해되어서 나오고, 플라스틱은 원재료인 원유로 분해돼서 나온다. 철 종류는 쇳가루로 분해되고, 콘크리트는 시멘트 가루로 분해돼서 나온다. 이렇게만 된다면 자원을 파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기계를 만들 수 없을까. 너무 허무맹랑한가? 개연성은 전혀 없는 것일까? 어쨌든 상상은 자유다. 그래도 누군가는 제발 이런 기계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환경 걱정을 확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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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 제주 모슬포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는 자신의 모토인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지향한다. 그 모토에 맞게 서가엔 특색있는 지역의 책들이 책장을 메우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인권에 눈 뜨다”

우리나라엔 공정무역이 잘 알려지지 않던, 구글링에서도 고작해야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진 몇 컷이 전부일 때였다. 사회학과에 다니던 신의주 씨는 2학년 때 사회운동론이라는 수업에서 공정무역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과 커피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은 충격이었다. 상식선에서 이해 불가였다. 이를 계기로 신의주 씨는 본격적으로 공정무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국에서는 공정무역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저자 박창순‧육정희, 출판 시대의창)”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중 KB국민은행과 YMCA가 함께하는 대학생 해외봉사단 “라온아띠”를 알게 되었고, 대학생 중장기 봉사단으로 필리핀에 가면서 개도국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불쌍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마땅히 가져야 하는 인권을 갖지 못하고 있을 뿐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졸업 후 신의주 씨는 아예 몽골에 가서 국제개발협력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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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상품의 공정무역 제품들이 한반도의 남쪽 제주에서도 서쪽 끝인 모슬포까지 내려왔다. 윤리적인 소비와 생태적인 습관을 담은 책과 소품들이 마을 곳곳에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을을 거쳐 머잖아 제주 전역, 그리고 다시 전국으로, 전 세계로 퍼질 것이다. 코끼리 똥으로 만든 상품들도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울란바토르를 뒤덮는 오타”

세상은 다수를 우선한다. 다수에 밀리면 소수는 옳아도 잘못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므로 소수의 인권을 위한다는 건 때에 따라서 사회에, 권력에 반하는 행동이 되기도 한다. 

몽골에서 신의주 씨는 울란바토르의 게르촌에서 지냈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하면서 유목민들은 대거 수도로 몰려들었다. 가늠이 안 될 정도다. 문제는 이들이 살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땅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들에겐 게르가 있다. 이들은 울란바토르의 외곽에 슬럼가라고도 하고 빈민촌이라고도 하는 게르촌을 형성했다. 당연히 학교는 없다. 수도와 전기의 혜택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빈민촌가를 형성했던 때나 다름없다. 

고위도 지역인 몽골은 무척 춥다. 그런데 게르촌에 사는 이들은 난방시설도 없이 겨울을 나야 한다. 추위를 잊기 위해 남자들은 몸속에 독한 술을 넣고 다니기도 한다. 이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사회에서는 알코올 환자를 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계 3대 별 관측지인 몽골은 흔히 구름이 시작되는 곳이라 할 만큼 청정 지역이다. 그러나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다르다. 

울란바토르의 겨울은 가시거리가 무척이나 짧다. 매캐한 연기인 오타 때문이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을 난방 없이 지내기는 어렵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게르촌에 사는 이들은 갈탄을 땐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분지다. 그러므로 갈탄을 땔 때 발생하는 연기는 고스란히 분지에 갇히게 된다. 갈탄만이 아니다. 이들은 가격이 싼 폐타이어를 연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때 발생하는 오타는 가시거리 확보를 더 힘들게 한다. 대책이 없다. 가시거리는 짧고 거리엔 알코올 환자들,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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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악법은 깨져야 한다”

몽골은 정치인과 공직자의 부정부패도 심각하다. 어딘들 부정부패가 있는 곳은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부패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울란바토르의 게르촌에서 신의주 씨는 떠듬떠듬 몽골어를 배워가며 통역 선생님과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수요조사했다. 학교는 바라지도 않았고, 유치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일터에 갈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요조사대로 신의주 씨는 그 일을 추진하게 되었다. 예산이 부족했지만, 십시일반 어머니들은 돈을 모아서 커다란 카펫을 사 줬다. 몽골에서는 카펫이 필수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부상조하면서 아이들이 편하게 잠도 자고 놀 수 있게 되었다. 교육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선생님도 고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행사는 없었다. 그런데 노인의 날이라는 이유로 동장이 신의주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외국인이라서 말만 하면 뭐든 다 해줄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신의주 씨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행사한다면 일손이라도 보탤 수 있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동장은 신의주 씨가 일하는 센터로 공무원 한 명을 보냈다. 지금 운영하는 시스템이 불법이라면서 벌금을 내라는 것이다. 계속 운영하려거든 유치원으로 등록하라고도 했다. 등록도 벌금도 엄청난 금액이었다. 누가 봐도 횡포였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신의주 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튿날, 한 어머니가 아이를 맡기러 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라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노발대발하며 나가더니 여럿의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왔다. 그들은 사실을 추궁했다. 신의주 씨는 ‘며칠 전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는데 혹시 그것 때문일까요?’라며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그들은 동장에게 갔다. 그리고는 나라에서도 해주지 못하는 것을 외국인이 해주고 있는데 왜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며칠 후, 벌금은 없던 것으로 할 테니 그냥 하라고 동장이 전화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악법은 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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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벽에 걸린 세 개의 액자는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천으로 삼촌인 신제균 씨와 함께 만든 것이다. 삼촌인 신제균 씨는 시인이자 시낭송가이며 춤꾼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버지”

신의주 씨가 초등학교 다닐 땐 드래곤볼 만화가 한창 유행이었다. 그 탓인지 아이들은 신의주 씨에게 여의주라고 많이 놀렸다. 하지만 별명도 별명 나름, 나쁘지는 않았다. 썩 듣기 좋은 별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이 예쁘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신의주 씨의 할아버지는 고향이 이북이다. 이북에도 가족이 있었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언제나 고향 땅을 밟을까, 애타게 그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있었다. 딸의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서 딸의 이름을 신의주라고 지어주셨다. 

책방지기 신의주 씨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신용균 씨다. 시인을 아버지로 둔 딸은 아버지가 더 특별한 사람이었고, 자랑스러웠다. 초등학생 땐 아버지의 직업란에도 꼭 시인이라고 써 놓았다. 선생님께서 놀란 표정으로 아버님이 시인이냐고 물으면 어린 마음은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신의주 씨는 무엇보다도 시인이신 아버지를 따라다녔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린 기억이라서 왜곡되었는지 모르지만, 부모님과 함께 시인들의 모임에서 밥도 먹고, 캠핑에서 혹은 송악도서관에서 시낭송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신의주 씨가 책과 사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신의주 씨는 할머니의 집에 세 들어 책방을 차렸다. 신의주 씨가 책방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선 극구 반대하셨다. 책 장사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은 하나다. 자식이 여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신의주 씨는 포기하지 않고 리모델링 공사 업체를 알아보러 다녔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그런 딸이 안타까웠던 아버지 신용균 씨는 직접 리모델링에 나섰다. 그렇게 신의주 씨는 아버지와 함께 공사에 돌입했다. 4개월 동안 겨우 1mm를 가지고 싸우는 등 티격태격도 많았다. 하지만 이는 부녀만의 특별한 사랑 방식이었다. 자장면을 시켜놓고 후루룩후루룩 소리 내 먹으면 그게 곧 화해였다. 딸은 아버지 마음을 읽음이고, 아버지 역시 딸의 마음을 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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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우리가 사는 곳」은 책방이 위치한 모슬포 지역에서 활동하는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지은 책이다. 어나더페이지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문화 활동의 산물을 널리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시야라고 해야 할까,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해야 할까. 모슬포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대정중, 대정여고, 제주대학교로 가는 게 정해진 코스다. 지역에서만 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신의주 씨는 아이들에게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마침 책방이 대정초등학교 옆이다. 굳이 책을 팔지 않아도 된다. 책방지기 신의주 씨는 오며 가며 아이들이 이곳에 들러주기를 바라고 있다. 들려줄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신의주 씨는 송악도서관 주최로 학교에서 지역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선생님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엔 무릉중학교에 가서 마을 이야기를 했고, 무릉초등학교 아이들한테는 공정무역과 환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근엔 대학생들에게 직업 이야기를 강의했다. 거기서는 개발협력 이야기와 책방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디 신의주 씨의 노력이 모두에게 전달되어 환경도 인권도 조금이라도 더 개선되는 날이 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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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어나더페이지는 한반도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캠페인에 동참하여 평화의가게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고향인 모슬포에 다양한 문화가 꽃피는 곳이 될 수 있도록 2020년 ‘일상이 문화마을’ 프로젝트 시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네책방 어나더 페이지는”

소수의 인권을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해외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지구촌 사회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해결방법을 모색하고자 책방을 연 사람, 미모의 책방지기는 문턱을 한껏 낮추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책방 어나더페이지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사이에 두고 책방지기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책을 구매해야 한다는 부담은 접으셔도 됩니다. 책방을 둘러보면서 ‘이런 책도 있고 저런 책도 있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사실만 알아도 수확입니다. 

찾아가는 길: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하모로220번길 19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anotherpage_books/
영업시간: 일~수 오전 10:00~오후 5:00, 금~토 오전 10:00~오후 7:00, 목요일 휴무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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