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6차산업人] (22) ‘지친 마음 다독이는 숲의 가치’ 전하는 이형철 환상숲곶자왈공원 대표

제주 농업농촌을 중심으로 한 1차산업 현장과 2·3차산업의 융합을 통한 제주6차산업은 지역경제의 새로운 대안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창의와 혁신으로 무장해 변화를 이뤄내고 있는 제주의 농촌융복합 기업가들은 척박한 환경의 지역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인 제주(Made in Jeju)’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주역들입니다. 아직은 영세한 제주6차산업 생태계가 튼튼히 뿌리 내릴수 있도록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기획연재로 전합니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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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형철(62) 대표와 아내 문은자(62) 씨가 환상숲곶자왈공원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제주의소리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았던 수목이 얽히고설킨 원시림은 아버지에게는 삶의 풍파를 이겨내는 법을 알려주고, 딸에게는 부부의 연을 안겨주었다. 가족농으로 10년째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전하고 있는 환상숲곶자왈공원의 이야기다.

숲을 통해 치유하고, 숲을 통해 쉼과 행복을 전하는 6차산업인증업체 환상숲곶자왈공원(이하 환상숲)의 이형철(62) 대표를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28년 전 이형철 대표는 1만여평(3만3058㎡)의 현재 환상숲 부지를 매입했다. 이곳은 한림읍 도너리오름에서 발원한 용암에 의해 형성된 곶자왈 지대의 일부로, 특이한 지형과 특색있는 자생식물이 매력적이다. 그때의 숲은 남들이 보기엔 그저 무성한 가시나무숲이었지만, 이 대표에게는 ‘예쁜 정원’처럼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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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환상숲 개원 당시 모습(위.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과 현재 모습(아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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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의 아침 풍경.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한해 약 15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며 올해로 개원 10주년을 맞은 환상숲은 사실 이형철 대표가 세상의 시선을 피해 숨을 쉴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제주서부신협 전무로 일했던 이 대표는 47살, 젊은 나이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왼쪽 뇌에 문제가 생겨 오른손에는 감각이 사라졌고, 말도 어눌해졌다. 사직서를 내 직장을 나온 후에는 동네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꺼리게 됐다. 그때 위로를 줬던 안식처가 바로 이 환상숲이다. 숲은 그저 조용히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고 한다.

이 대표는 “매일 낮에는 숲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내가 다니는 길이라도 산책로로 조성을 해보자 해서 650m 정도의 산책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돌을 매일 드니 신경을 자극해 오른손에도 감각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이걸 작업치료라고 하더라. 지금은 제주도 배드민턴 대회 50대 부문에서 입상할 정도로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차츰 건강을 되찾은 이 대표는 숲의 가치를 동네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농촌교육농장을 시작했다. 농촌진흥청의 지원과 기술원의 지도를 통해 환상숲은 점차 교육현장의 모습을 갖춰갔다.

예상치 못한 문제는 귀한 식물들을 몰래 캐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었다. 이 대표는 숲을 지키기 위해 유료화를 결정하고, 가족들과 함께 2011년 환상숲곶자왈공원을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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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철 환상숲곶자왈공원 대표가 개업 초기 가정집의 안방을 개조해 표를 받았던 매표소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왼쪽). / 당시 매표소 모습(오른쪽.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처음에는 여든셋 나이로 어머니가 여기서 매표를 보셨는데, 하루에 1명도 안 올 때가 태반인 거예요. 그해 겨울 첫 달 수입이 20만원이었어요. 그때 당시엔 여기가 관광지로도 안 보이고, 30년 넘은 가정집 안방 창문에 구멍 하나 내고 매표를 받았으니까요. 이 주차장도 밭이었어요.”

개업 당시 주위 사람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누가 돈 주고 곶자왈 들어간다고 합니까’ 하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숲은 가족들의 정성으로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농촌컨설팅 연구원일을 하던 딸 지영(35) 씨가 아버지의 제안으로 환상숲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서울서 다니던 직장보다 10배 넘게 봉급이 줄었지만 아버지와 숲을 함께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방문객은 한해 2000명, 5000명, 1만명까지 늘더니 15만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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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에서 프로그램 제작, 숲 해설 등 다양한 일을 맡고 있는 이지영 씨는 환상숲을 통해 인연이 닿은 남편 노수방(35) 씨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지영 씨는 숲으로부터 인연의 선물도 받았다. 남편인 노수방(35) 씨를 만나는데 환상숲이 오작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영 씨가 환상숲에서 숲 해설을 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본 수방 씨의 어머니가 ‘숲속 이슬’처럼 말간 지영 씨에게 반해 메일로 아들과 만나봐 줄 수 있는지 연락을 했다고 한다.

장거리 연애 끝에 둘은 곧 환상숲 야외 결혼식장에서 축복 속에 결혼했다. 경주서 원자력발전소에 다니던 수방 씨도 제주로 내려와 환상숲 운영을 돕고 있다.

딸과 사위, 제주서부농업기술센터에 다니다 그만두고 운영을 돕고 있는 아내 문은자(62) 씨까지 환상숲이 소중한 가족을 모으고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환상숲은 예술가들에게도 사랑받는 공간이 됐다. 방탄소년단, f(x), 악동뮤지션 등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는 물론 영화, 예능,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배경이 되며 곶자왈의 아름다움을 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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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에는 숲을 즐긴 후, 족욕과 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자리잡고 있다.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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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 석부작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운영 모습.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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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출현하기 전, 환상숲곶자왈공원에서 진행됐던 팜파티 현장.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관람객들에게 환상숲이 매력적인 이유는 숲해설을 들은 후 카페에서 족욕을 하며 쉰다거나,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카페에서는 제주산 석창포, 돼지감자, 비트, 한방재료 등을 통해 족욕과 차를 즐길 수 있고, 체험공간에서는 석부작이나 나무목걸이, 작은 곶자왈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6차 산업에 뛰어들며 한 달에 한 번 팜파티를 모집해 운영한 적도 있다. 농장주들을 초대해 제품도 홍보하고, 공연과 더불어 지역 먹거리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제공했다. 숲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 생각과 가치를 나눴다. 최대 120명이 모일 정도로 인기였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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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 카페 앞 정원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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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철 환상숲곶자왈공원 대표가 관람객에게 숲 해설을 하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농업은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맞춰서 (계획)해야 합니다. 육지와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 제주의 장점을 잘 살렸으면 좋겠어요. 소비자들이 직접 농장과 6차산업 현장을 느끼고 감동을 받으면 진짜 고객이 됩니다.”

‘가장 제주다운게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하는 이 대표는 “제주도를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게 아니라 옛날 모습들을 보전해야 한다. 어떻게든 개발하려고 하는데 그게 장차 미래에는 제주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원 10주년을 맞이한 소감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도 꿈만 같다. 자연에 위배되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렸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며 “교육센터를 만들어 곶자왈에 대해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 대표는 사라지는 곶자왈을 지키기 위해 사단법인 곶자왈사람들의 임원직을 맡으며, 매달 식생조사에 참여하고 곶자왈보고서 발간, 표본 전시 등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의 허파 곶자왈을 보존하고 알리며, 공감과 소통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는 환상숲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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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 숲속 풍경.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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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 숲속 풍경. 나무 줄기가 초록잎으로 뒤덮였다.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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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숲곶자왈공원 숲속 모습. 나무들의 뿌리가 엉켜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사진=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의소리

환상숲곶자왈공원
제주특별자치도 한경면 녹차분재로 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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