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제주교구, 28일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 개최

1901년 5월 무장한 제주도민들(민군)이 제주성을 포위하고 천주교 신자인 같은 도민 300여명을 살해했다. 이후 민군 주모자들은 정부에 의해 사형 당한 사건. 바로 지금으로부터 120년전 제주 섬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인식은 그동안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한 쪽에서는 “순교”라고 평가한데 반해, 한 쪽에서는 “봉건왕조의 압제와 외세의 침탈에 맞선 항쟁”으로 받아들였다. 신축교안, 제주민란, 제주교난, 이재수의 난 등 부르는 용어부터 여러 가지다.

천주교 제주교구가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종교·역사·문화 연구자들은 신축교안 102주년이던 2003년 천주교계와 제주사회가 함께 결의한 ‘미래와 화해를 위한 미래선언’을 바탕으로 양쪽이 더욱 상호 존중의 자세를 가지자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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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제주교구가 개최한 신축교안 120주년 심포지엄이 28일 열렸다. ⓒ제주의소리

28일 제주교구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심포지엄 ‘신축교안, 기억과 화합’은 신축교안에 대한 인식 흐름과 대중문화 양상, 미래 선언 이후 제주교구가 보여준 모습과 향후 과제까지 아우르는 자리였다.

문창우 주교는 개회사에서 “선교는 타인의 인정과 대화가 근본이지만, 신축교안 당시 교회는 그러지 못했다”면서 “많은 이들이 교회를 위해 죽었다. 진정 교회도 제주도 문화를 위해 죽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 주교는 지난 1997년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당시 발제자로 나서서 ‘신축교안 당시 교회가 보인 배타성 반성’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신축교안 원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교회 밖과 안으로 크게 나뉜다고 분석했다.

교회 밖에서는 대한제국 조정의 배려를 등에 업은 프랑스 선교자들의 치외법권적 특수 권력과 이에 편승한 천주교인들의 횡포를 학살의 직접 원인으로 꼽았다. 더불어 봉세관(세금징수 관리) 강봉헌의 극심한 작폐와 여러 가지 세금의 과다징수도 간접 원인이다.

교회 안에서는 제주도민들이 일본의 어업 활동에 대한 분노를 외국인 신부에게 전가해 표출했다는 대외적인 원인과, 마찬가지로 봉세관과 상무사(신축교안 당시 제주 안에서 결사한 조직)의 세금 징수로 민중의 부담과 반감이 커졌다는 내재적 원인을 함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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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우 주교. ⓒ제주의소리

문 주교는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관점에서 반성함으로써 진정한 화해를 통해 제주 사회의 새로운 복음화의 싹을 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카톨릭 회의로 다양한 개혁적인 의제를 도출해냈다.

토론자로 나선 박찬식 전 제주학연구센터장은 역사학자로 2018년 ‘1901년 제주민란 연구’(도서출판 각)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베트남 전쟁과 4.3의 사례를 참고하자고 제안했다. “혁명군 편인 ‘벤따’와 미국 편인 ‘벤끼아’로 갈라져서 전사한 자식을 똑같이 추모하는 베트남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과 4.3을 전후해 죽어간 마을 사람들을 ‘영모원’ 한 자리에 모신 제주도 하귀리의 관용과 모습을 거울 삼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2003년 미래 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공동으로 추진할 기념사업의 방향성은 위와 같은 상호 존중의 원칙 위에서 정립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전 센터장은 “4.3처럼 신축교안 역시 교회 내 과격분자를 제어하지 못하면서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후 내부 공동체 분열을 가져왔다는 점 역시 4.3과 닮았다”면서 해석을 덧붙였다.

다른 토론자인 조성윤 제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역시 ‘상호 존중’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천주교 제주교구는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앞장서 왔다. 개신교와 불교 등 다른 종교가 사회문제를 외면할 때, 천주교 제주교구는 제주 지역사회의 현안을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고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시민들과 함께 지내”왔다며 “지금은 천주교인들도, 이재수를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가 행했던 학살을 반성하고 그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들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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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양인성, 강옥희, 현요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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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찬식, 고명철, 조성윤. ⓒ제주의소리

발제자인 양인성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신축교안에 대한 천주교 내부의 인식 변화를 사건 당시부터 최근까지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양 연구원은 “천주교회는 오랫동안 교안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선교사들의 편향된 인식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했다”면서 “천주교회의 기억에는 순교만 있을 뿐”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제주사회 역시 비슷한 입장이었다. 그는 “피살당한 천주교 신자도 같은 제주도민이었다는 점을 잊힌 채 의거, 항쟁으로 기념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양 연구원은 교회 안팎이 모인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창립 준비위원회’가 올해 출범한 사실을 반기며 “양측의 지속적인 만남과 대화를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다른 발제자인 강옥희 상명대 교수는 신축교안을 다룬 ▲현기영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박광수 연출 영화 ‘이재수의 난’ ▲놀이패한라산 마당극 ‘이실 재 직힐 수’ 등을 통해 시사점을 도출했다. 영화와 마당극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는 “역사에서나 문학 작품안에서 신축교안의 기억은 현재 우리의 삶을 통찰하고 반성하며 이해하고 화합하는 기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참여한 문학평론가 고명철 광운대 교수는 “세 작품이 각 발표된 시기와 연관된 객관 세계 속에서 이들 작품이 놓인 동시대의 현재성을 어떻게 예각화하고 있는지, 그래서 그 현재성이 120주년을 맞는 현재와 어떤 공명을 이루고 있는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작품을 보다 들여다보는 자세를 중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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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은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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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고 교수는 “가령, ‘변방의 우짖는 새’의 경우 엄혹했던 1980년대 초반에 발표됐다는 점, 그렇다면 작가가 그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압살한 전두환 신군부의 폭정 속에서 근대 전환기 제주에서 일어난 민란에 대한 역사적 재현을 통한 소설적 저항을 보여줬는데, 저항이 지닌 현재성을 21세기 시선에서 다시 읽어야 할 점은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 소설이 제주 장두를 다룬 첫 번째이자 본격적인 작품으로서 “민중을 대신해 희생 제의를 자처했다는 것은 숱한 영웅서사 속 주인공 영웅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공부거리가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발제자로 나선 현요안 신부는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와 연대를 통해 예술을 통한 역사의 재현(음악, 미술, 공연 등)과 관덕정, 황사평, 삼의사비, 대정항교 등 역사적 현장에 대한 보전, 순례를 통한 역사기행이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체험에 녹아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올해 기념 사업의 흐름을 소개했다.

토론 좌장을 맡은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100주년에서 잊어버리지 않고 20년이 지나 다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역사의 발전이 아닌가 싶다. 역사학자로서 감동스럽다. 이 자리를 통해 100주년을 열어준 강우일 주교에게 감사하다. 4.3을 비롯한 국내 수많은 피해 역사가 있는데, 신축교안은 그것들을 끌어안는 모범 사례로서 기대가 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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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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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더불어 “신축교안이란 용어는 천주교인이 아니면 익숙하지 않다. 신세대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용어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신축교안의 원인으로 세폐(세금 폐단), 교폐(교회 폐단)가 꼽히는데 당시 대한제국에서 세폐와 교폐가 없던 지역이 없었다. 그런데 제주에서만 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관리를 파견해 세금을 황실로 직접 걷어가겠다는 세폐, 프랑스 천주교 신부를 중심으로 한 교폐 모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왜 책임자를 손대지 못하고 민중끼리 죽여야만 했을까. 이런 성찰이 있어야 사건의 표면적인 이유를 넘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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