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대수 늘리기 급급…‘산업’ 육성 난망

너무 앞서가나 싶어도 토를 다는 게 어색할 때가 있다. 충만한 의지의 표현 쯤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인 경우다.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선도적인 뭔가를 선포할 때 주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다. 계획 또는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의의 구호 앞에서 목표는 말 그대로 목표일 뿐이다.  

제주도가 2030년까지 도내 자동차 37만대 전체를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선언할 때도 그랬다. ‘제1기 원희룡 도정’ 출범 이듬해인 2015년이었다. 2030년은 카본 프리 아일랜드(탄소 없는 섬) 달성 연도로 설정한 해다. 

‘37만 전기차 교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는 국·도비와 민자를 합쳐 총 투자규모가 3조원에 육박하는 ‘제주 전기차 중장기 종합계획’(2015~2030년)에 담겼다. 계획이 발표되자 아니나다를까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이 정부쪽 인사에게서 먼저 나왔다. “정부 정책과 연계해야 할 게 많은데…전기차 특구 조성 역시 제도 개선도 없이 덜컥 발표했다”(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도 거들었다. “정부와 자치단체의 종합계획이 다르면 현실성 없는 뜬구름 잡는 게 된다”(한국교통연구원 본부장)

우려도 잠시. 잘해보자는 것인 만큼, 당시 언론들도 계획의 실현성 여부를 놓고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계획 발표 몇 달 전부터 원 지사는 잔뜩 바람을 불어넣었다. “올해(2015년)를 (제주가)전기차의 메카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으로 생각하고 있다” 카본 프리 아일랜드 2030과 관련한 일각의 비판적 시각에는 “과거 20여년 전에 오늘 현재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나”라고 응수했다. “2030년이라는 숫자나 전기차 교체 대상인 현재 화석 차량 37만대는 상징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단순히 상징적인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의욕이 대단했으나, 전기차 보급 계획은 얼마못가 틀어지고 말았다. 중장기 종합계획상 연도별 누적 보급 목표는 2020년 3만대, 2025년엔 16만대를 넘기는 것으로 잡혔다. 하지만 2021년 현재 실제 보급 대수는 2만4000대 수준. 더구나 전기차 증가세는 지난해부터 크게 둔화됐다. 남은 8년여동안 30여만대를 추가로 보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예기치 않게 닥친 코로나19 사태, 지원 예산 부족 등 여러 요인이 발목을 잡았을 수 있다. 비록 목표가 과도했다고 해도, 비난하고픈 마음은 없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를 줄여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중요하지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타박할 일은 아니다. 

정작 하고자 하는 말은 따로 있다. 단 한 대의 전기차를 보급하더라도 제대로 관리를 하라는 얘기다. 막대한 혈세를 들여 민간에 보급한 고가의 전기차들이 대거 낮잠을 자고 있어서 하는 소리다. 

방치된 전기차는 대부분 렌터카로, 대당 6000만원을 호가하는 외제차가 주종이다. 렌터카 업체가 망하거나, 차량 가격과 거의 맞먹는 수천만원대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해 무더기로 세워둔 현장이 제주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제주시 애월읍의 한 목초지에 줄지어 늘어선 100여대의 외제 전기차. 그 사이로 말들이 비집고 들어가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은 부조화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외제 전기차 렌터카들이 방치된 곳은 도심 공터, 자동차 정비소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방치 대수는 어림잡아 수백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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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전기차를 타고 포즈를 취한 원희룡 지사(왼쪽). 제주 곳곳에 방치된 고급 외제 전기 렌터카들. <그래픽=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사실 이같은 상황은 어느정도 예견됐다. 정부든 제주도든 밀어내기식 보급 확대에 치중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 당국으로선 물량을 채울 수 있어서 좋았고, 업체들은 보조금으로 값비싼 렌터카를 다량 구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도내 렌터카 업체에 대한 전기차 보조금 지원은 2016년 시작됐다. 그 수가 2020년까지 4143대(86개 업체)에 이른다. 대당 보조금을 1500만원으로만 잡아도 총 600억원이 넘는다. 따지고 보면, 피같은 보조금을 허투루 쓰지만 않았어도 전기차는 지금보다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문제는 제주도가 전기 렌터카 운행 실태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조금만 지원하고는 관리 감독에는 손을 놓았다는 의미다. 전기차 방치 사태가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전수조사에 나섰다. 

매번 이런 식이다. 주도면밀하게 끌고 가는 게 없다. 전기차 몇십대 혹은 몇백대 더 보급하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다. 이래서는 ‘산업’에는 다가갈 수 없다. 당장 전기차 특구라는 말조차 무색해질 판이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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