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일 처리 순서 틀렸다…반대목소리도 녹여내야” 심사보류

지난 5월31일 강정 크루즈터미널 앞에서 열린 ‘강정마을 갈등치유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5월31일 강정 크루즈터미널 앞에서 열린 ‘강정마을 갈등치유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강정마을 갈등치유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상생협력 협약 체결 동의안 처리가 불발됐다.

앞서 좌남수 제주도의회 의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강희봉 강정마을회 회장이 ‘상생화합’ 선언을 하며 만세까지 부른 상황이어서 다소 어색한 모습이 연출된 셈이다.

제주도가 의회에서의 동의안 처리에 앞서 강정마을에서 선언식부터 개최하는 등 의욕이 앞선 업무처리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이상봉)는 3일 제395회 임시회를 속개해 제주도지사가 제출한 ‘강정마을 갈등치유 및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상생협력 협약 체결 동의안’을 상정했지만, 마라톤 심의 끝에 심사를 보류했다.

협약 체결은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강정마을의 갈등을 치유하고 강정마을의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지역발전계획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목적이다. 강정마을 지역발전계획사업이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행정의 약속인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2021~2025년 중기지방재정계획에 따라 2025년까지 매년 50억원씩 ‘강정지역주민 공동체회복 지원기금’을 조성하고, 기금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크루즈선박 입항료 및 접안료의 일정금 등을 기금에 포함하도록 했다.

또 제주도는 해군과 협의해 민군복합형관광미항 서남방파제, ‘강정해오름 노을길’ 운영을 관리하고, 마을주민들을 위해 적법한 범위 내의 지원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 밖에도 지역발전계획사업에 따른 직원을 고용할 때 지역주민 우선채용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고,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강정마을 지원조직을 유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이날 안건 심사에서는 ‘상생협력 협약’ 내용보다는 절차적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강성민 의원(이도2동을)은 “일에는 순서가 있다. 도지사, 의장, 마을회장이 만세부터 하고 나서 동의안을 처리하는 게 순서가 맞느냐”면서 “상임위에서 동의안을 처리하고 나서 선언식을 했다면 행사가 더 빛났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철남 의원(연동을)도 “지난 31일 상생협약 선언식을 했는데, 그럼 협약이 체결된 것이냐”고 따져 물은 뒤 “가부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선언식을 해버리면 (의안을 심사하는) 의회의 입장은 뭐가 되느냐”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특히 “왜 돈 얘기만 하나. 일자리와 시설물 만들어주면 마을공동체가 회복되는 것이냐”라며 “사법 처리된 분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방안 등이 협약서에 들어가야 한다. 선언식이 있던 날 반대집회가 왜 열렸는지 곱씹어봐야 한다”고 질타했다.

문종태 의원(일도1·이도1·건입동)은 “마을발전 지원과 관련해서는 특별법에 지원근거가 있고, 관련 조례까지 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구체적인 금액까지 협약서에 명시하는 게 맞는 것이냐”며 “환경시설 설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곳이 많은데, 이게 선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강민숙 의원(비례대표)은 “강정마을 갈등치유와 공동체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왜 반대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다. 협약서에는 찬성-반대 모두의 목소리가 녹아나야 한다”며 “순서가 틀렸다. 반대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의안을 처리해달라고 하는 것은 도의회를 그저 거수기로 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오성률 강정공동체사업추진단장은 “반대 주민들까지 100% 만장일치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반대 목소리를 (협약내용에) 담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이상봉 위원장(노형을)은 “죄송하다는 말은 여기서 ‘립 서비스’ 할 게 아니라 강정에 가서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경용 의원(서홍·대륜동)은 “저의 어머니도 강정 출신이다. 지금도 제사 지내기 위해 강정을 방문하기도 한다”며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상생협약을 체결하려는 것 아니냐. 다만,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있는 만큼 마을회와 행정자치위원회 간 간담회라도 마련해서 의견을 듣는 자리가 필요한 것 같다”고 중재안을 내기도 했다.

고현수 의원(비례대표)은 “이경용 의원은 제안에 동의한다”면서도 “강정에서 도지사, 의장, 마을회장 3명이 만세까지 불렀는데, 선언식과 협약은 다르다는 추진단장의 답변은 궤변으로밖에 안 들린다”고 비판을 이어갔다.

결국 행정자치위원회는 오후 들어 회의를 속개한 뒤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동의안을 심사 보류했다.

앞서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는 지난 5월31일 오전 10시 강정 크루즈터미널 앞에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다시 부는 상생 화합의 바람’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해군기지 입지가 강정마을로 결정된 지난 2007년부터 14년에 걸쳐 이어진 반목과 갈등을 끝내자는 취지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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