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02) 고장원, ‘특이점 시대의 인간과 인공지능’, 부크크, 2016.

고장원, ‘특이점 시대의 인간과 인공지능’, 부크크, 2016. 출처=알라딘.
고장원, ‘특이점 시대의 인간과 인공지능’, 부크크, 2016. 출처=알라딘.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이 인공지능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언론 매체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잘 알려진 것처럼, IMF 경제 위기 직후,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등 IT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로 한국은 정보화 강국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런 과거사를 지닌 한국 정부가 인공지능 기술에 뒤처진다는 평가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빨리 빨리’란 말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니, 인공지능이건 무엇이건 새로운 기술문화의 도입에 적극적인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과학소설(SF)과 현실 간의 구분은 착시라고 했다. 그 유명한 말은 1980년대 중반에 나왔기에,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예언적일 만큼 시대를 앞섰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는 이제 그 말이 더 이상 이상하게 들리거나 낯설지 않다. 내일의 날씨를 알아보기 위해 일기예보를 살펴보듯, 우리의 미래를 위해 SF를 참조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일론 머스크 같은 혁신적인 기업가들이나 미래학자, 오피니언 리더들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비법이 SF라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

‘특이점 시대의 인간과 인공지능’의 저자 고장원은 SF 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다. 그는 아마 출간한 책의 압도적인 숫자를 볼 때, 한국에서 가장 많은 SF 평론서와 해설서를 낸 작가일 것이다. 이 책은 이미 11권이 나온 고장원의 ‘SF 가이드 총서’ 7번으로 나왔다. 글쓰기의 자유를 위해 작가는 이 총서를 POD(Publish On Demand) 방식, 즉 주문형 소량 생산 방식으로 출간했다고 한다. 그래서 구입 기간이 다른 책들에 비해 다소 길고, 전문 출판사에서 펴낸 책에 비해 교정 상태나 책 내부 및 외부 디자인 등에서 아쉬운 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SF 분야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전문 지식에 접속할 수 있어 반갑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특이점 과학소설(Singularity Science Fiction)’이다. 특이점 SF는 SF의 하위장르 가운데 하나다. 비교적 새로운 용어라 우리에게 낯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SF는 ‘변화의 문학’이라는 특성에 걸맞게 신기할 정도로 새로운 하위장르가 많이 생겨난다. 하위장르에 대한 새로운 명명이 팬덤의 유희처럼 느껴질 정도다. 여기서 ‘팬덤’이란 말은 ‘팬’과 ‘킹덤’의 합성어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일컫는 SF 팬들의 용어다. 

특이점 SF도 SF 작가의 명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이자 SF 소설가인 버너 빈지(Vernor Vinge)는 1993년 3월 미항공우주국 산하 루이스 조사센터와 오하이오항공우주 연구소가 후원한 심포지움에서 '도래할 기술적 특이점: 포스트휴먼 시대의 생존법'이란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는 여기서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란 용어를 제안했다. 

향후 30년 내에 우리는 인간을 뛰어넘는 지성을 창조해낼 기술적 수단을 갖추게 되리라. 그 직후 인간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진보를 과연 우리가 회피할 길이 있을까? 회피할 길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게 제반사건을 제어할 수 있을까? (34쪽)

버너 빈지가 제안한 기술적 특이점은 인간을 초월하는 지성의 창조로 인해 인간이 아닌 새로운 존재, 즉 포스트휴먼(post-human)의 세계가 도래한다는 가상의 시점이다. 이러한 특이점이 도래하면, 인간의 시대는 종언을 맞이하고, 현재의 우리의 지성으로 예측 불허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가상의 시나리오는 사실 버너 빈지가 용어를 제안하기 이전의 많은 문학 작품, 즉 많은 SF에서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 용어 덕분에 많은 SF들은 이러한 상상력을 본격적으로 만개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소설들이 바로 특이점 SF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점이란 용어를 우리는 더 이상 SF 소설과 영화를 두고서 사용하지 않는다. 저명한 기술자나 과학자, 미래학자들은 그 용어를 자주 입에 올리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기술자이자 발명가, 기업가인 레이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의 ‘특이점이 온다’이다. 그는 2045년 경이면 특이점이 도래해 1000달러 컴퓨터가 오늘날 인류의 모든 지혜를 모은 것보다 10억 배 더 강력한 성능을 갖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커즈와일을 유명하게 만든 것처럼, 그 때가 오면 영생불사의 의료기술을 획득하게 되니 특이점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적 특이점은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점점 큰 논란이 되어 가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 철학 교수이자 인류미래연구소의 소장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도 그 논쟁의 중심에 있다. 보스트롬 교수는 슈퍼인텔리전스가 출현하여 인간을 멸종에 이르게 할 파국의 시나리오를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는 SF의 상상력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SF 서사의 힘과 인공지능 담론의 영향으로 우리는 AI의 미래 시대를 낙관만 할 수는 없게 되었다. 

저자 고장원에 의하면, 많은 SF는 특이점의 도래 과정을 세세하게 기술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 대한 과학기술적 추론이 너무도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이점 SF에 우리가 익숙하게 기억하는 묵시록과 파국의 서사들이 많아진 것일까. 그 서사들은 먼 미래를 다루고 있어 아직 현실감이 없을지 몰라도, 우리에게 기술에 적합한 새로운 윤리를 비롯해서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도록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한 사례는 소설이 아니라 뉴스에서 온 것이다.

2012년 8월1일 미국의 증권거래업체 나이트캐피탈이 불과 45분 만에 무려 4억4천만 달러(4,500억원)의 손실을 입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에게 맡겨둔 채 관행대로 초단타매매를 하던 이 금융회사는 분당 100억원 이상 투자금이 증발해버리는 통에 한때 파산 직전의 위기로까지 몰렸다. 2010년 잡지 [와이어드가 “(수퍼컴퓨터의) 알고리듬이 월 스트리트를 지배한다!”고 선언한 이래, 동 사건이 터졌을 무렵 뉴욕증권거래소의 주식 가운데 무려 75% 이상이 인공지능에 의지한 시스템 트레이딩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70쪽) 

현재, 미국의 주식거래에서 알고리즘 매매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60~80% 정도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났었는데, 2013년 한맥투자증권은 알고리즘 매매 오류로 인해 단 번에 460억 원의 손실을 입고 회사를 닫았다고 한다. 이미 우리 현실에 인공지능이 깊숙이 스며들어와 있다. 우리는 특이점을 걱정하기에 앞서, 벌써 인공지능의 편리함과 우려를 동시에 떠안고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당면한 현실의 시급한 문제에 비하면 어쩌면 특이점은 아직은 소설의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들과 사고 실험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데 유익한 참조점이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 노대원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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