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23) 안덕면 서광리 그림책카페노란우산 1호점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구름의 그림자와 달리기를 한다. 초등학교 시절 100m를 24초에 달리던 나는 운전도 느리다. 하늘을 보면 구름은 뒷짐 지고 딴청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바삐 움직인다. 땅 위를 스치는 그림자는 더 빠르다. 난 차를 몰면서도 구름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메밀꽃이 즐비한 마을, 어디선가 막 부화한 꿩병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들판이다. 내가 만난 사람 그림책카페노란우산(이하 노란우산으로 칭함) 1호점의 책방지기 김종원 씨, 제주에 내려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자분자분 풀어놓는 그는 작은 거인이었다. 

사진=고봉선.
노란우산 1호점을 찾아가는 길,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그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달리기한다. 사진=고봉선.

“아들을 위하여”

나만의 방이 있다는 것, 어려서부터 자기 방이 있었던 사람은 그 설렘을 모를 것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놓기도 하고, 그 안에서 뭔가 비밀스러운 일기를 쓰기도 하는 등 나만의 아지트인 방이 있다는 건 행복 그 자체다. 노란우산 1호점에는 책들도 자기만의 방이 있다. 자기만의 방, 그림책들도 그 사실이 행복한 듯 표지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천장을 꾸며놓은 장식물이나 진열대에 놓인 소품들은 그림책 속의 이야기들을 재현시키는 듯했다. 

라엘(중1)과 르우(초4), 두 아들을 둔 노란우산 책방지기 김종원‧이진 씨가 제주에 온 지도 벌써 7년, 이제 곧 책방도 취학할 나이가 되었다. 대전에서 3년 동안 카페를 운영하다가 큰아들 라엘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서 거주지를 옮겨야 하나? 생각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김종원 씨 가족이 살던 곳은 연구단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는 공부도 너무 학습적으로만 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운동장에 나가서 놀지도 못하게 하고, 오로지 학교와 집만 오갔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닭장에 갇혀 있는 것 같더라는 얘기도 들렸다. 부부는 대전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아이만은 마음껏 자연을 누리며 자라도록 하고 싶은데……. 시골이면서도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하지만 대전 근교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운영하는 카페도 자리 잡고 있던 터라 거주지를 옮긴다는 건 쉽지 않았다. 때마침 매체에서는 제주도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특히 학교 살리기 운동으로 집도 무료 혹은 저렴하게 임대한다고 했다. 

사진=고봉선.
노란우산 1호점의 책방지기이자 카페올림의 로스터인 김종원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고봉선.

“어긋난 계약”

제주라면 시골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지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복리에 집을 구하게 되었다. 운 좋게도 곧 오픈하게 될 근처 카페에서 로스팅 담당을 찾는 중이었다. 로스팅 전문가인 김종원 씨는 그곳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대표는 마인드가 잘 통한다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뭔가 불안할 정도로 타이밍이 잘 맞았다. 2015년 2월 말, 입학식에 맞춰 무작정 제주로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부는 제주에서 책방을 하게 되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대전의 카페는 정리할 여유도 없었다. 마침 단골이었던 젊은 커플이 일 년만 위탁 경영하다가 인수하겠다고 했다. 급하기도 했고, 이미 자리 잡은 곳이라 염려는 없었다. 구두계약 후 카페는 그들에게 맡겨놓았다. 제주에서는 로스터 담당으로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그렇게 제주로 왔지만 당장 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차라리 제주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로스터 담당으로 오라던 카페 사장은 여건상 도저히 사람을 채용할 수 없다고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탁을 맡겼던 대전의 젊은 커플도 인수를 못 하겠다고 했다. 대전의 카페를 정상화해서 양도하는 게 급했다. 라엘을 이곳 북촌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김종원 씨는 대전으로 올라갔다.

대전에서 동분서주하면서도 제주에 정착할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 했다. 정보를 찾던 중 우연히 임대 광고를 보았다. 살 집도 있고 마당도 있는 카페였다. 김종원 씨는 이진 씨에게 가 보도록 했다. 가노라니 밤이 되었다. 이진 씨가 밤에 본 이곳은 자신들이 찾던 구조였다. 그런데 금액이 너무 비쌌다. 권리금 때문이었다. 다행히 연세는 조금 저렴했다. 부부는 ‘연세 몇 년 치를 한꺼번에 준다.’라고 생각하며 계약했다. 가진 돈을 다 털고 부부는 이곳으로 왔다.

사진=고봉선.
진열대 위에는 이진 씨가 직접 바느질하여 만든 공기(우)와 소창손수건(좌)이 놓여 있다. 모두 환경을 생각하며 만든 것이다. 오른쪽 뒤편에는 손님이 써주고 간 캘리 글씨가 붙어 있다. 사진=고봉선.

“그림책 이야기를 재현하는 책방”

노란우산 2호점을 드나들면서 난 김종원‧이진 씨 부부와 두 아들을 종종 본다.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건 흔히 말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전에서 위탁 경영을 맡긴 젊은 커플이나 로스터로 오라던 카페 사장을 믿었을 것이다. 그런데 젊은 커플이나 카페 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약속을 파기했다. 법이 없으면 무대포인 사람을 위한 세상이고, 법이 있어도 경우에 따라선 힘 있는 사람을 위한 세상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이들이 겪었을 심적 고충을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렸다.

그림책 속 등장인물들이 또 하나의 그림책 이야기를 재현하는 책방, 부부는 함께 인테리어를 구상했다. 그리고 나무로 장을 짜는 건 남편이, 천장에 걸린 소품 중 뜨개질은 처제가, 바느질은 이진 씨가 했다. 책방을 인테리어하는 모습조차도 한 권의 그림책이었다. 

진열대엔 이진 씨가 바느질로 만든 공기도 놓여 있다. 이 공기는 만들기가 바쁘게 팔려나간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내가 어릴 땐 돌멩이로 공기를 만들었다. 돌멩이 공기는 무게가 적당하여 놀이하기도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돌멩이로 만든 공기를 보기 힘들다. 맘먹기 나름이겠지만, 누군가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아이들 스스로 만드는 것도 무리다. 나에게도 아이들을 위하여 문방구에서 사다 놓은 공기가 있다. 그런데 이 플라스틱 공기는 영 아니다. 일단은 너무 가볍다. 놀이를 하노라면 풀어져서 안에 든 납 알맹이가 흩어지기도 한다. 이진 씨가 만든 공기는 헝겊 속에 렌틸콩을 넣어 만든 것이다. 놀이를 해 보면 무게가 마치 돌멩이로 만든 공기처럼 적당하다. 또 환경을 위해 만들어졌다. 만들기 바쁘게 팔려나가는 이유이다. 

임차인이라면 누구나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 불안할 것이다.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서 은근히 걱정되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광령2리에 책방을 준비했다. 다행히 건물주는 계약을 연장해 주었고, 본의 아니게 노란우산 2호점을 내게 되었다. 2호점은 이진 씨가 운영하게 되었다.

사진=고봉선.
노란우산 1호점에는 각각의 방을 차지한 그림책들이 전면으로 배치되어 있다.사진=고봉선.

“책 읽어주는 아빠와 두 아들”

김종원‧이진 부부는 원칙상 9시가 되면 아이들을 재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원칙은 현재까지도 지키고 있다. 라엘은 아침잠이 없지만, 막내인 르우는 반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습관화된 라엘은 9시가 되면 스스로 잔다. 그리고 6시에서 7시가 되면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책을 읽는다.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기는 해도 원칙은 습관이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김종원 씨는 잠자기 전 두 아들에게 항상 책을 읽어주었다. 라엘에겐 아기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책을 읽어줬다. 그러나 르우는 카페를 막 시작할 때 태어나면서 일하는 시기랑 겹쳤다. 책을 제대로 읽어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비로소 이곳 제주에 와서야 제대로 읽어줄 수 있었다. 작년까지 르우는 아빠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 라엘은 자기 책을 읽거나 잔다. 그런데 작년 같은 경우는 달랐다. 르우가“초원의 집” 시리즈를 읽고 싶다고 했다. “초원의 집”은 라엘이 전혀 관심도 없던 책이다. 그런데 르우는 그림도 없고 그 두꺼운 책을 읽고 싶다는 것이다. 르우 스스로 읽기도 했지만, 아빠는 한 챕터씩 읽어주기 시작했다. “초원의 집”을 읽을 땐 라엘도 옆에서 듣곤 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책 읽어주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끔은 르우가 의외의 책을 골라서 아빠는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어느 날은 헤르만 헤세의 명언을 모아놓은 책을 보면서 너무 좋다고 했다. 뭐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이 책은 삶을 얘기한 글이잖아요. 그래서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르우와 라엘은 성향이 전혀 다르다. 르우는 인생을 다룬 책을 좋아하고, 라엘은 논리적인 성향이다. 그래서 그런지 라엘은 책에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라엘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책을 읽었고 또 좋아했다. 한마디로 책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르우는 달랐다. 글을 깨우치는 게 늦었기 때문에 읽어줘야 했다. 그래도 르우 역시 책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르우는 책을 골라놓고 항상 아빠가 책 읽어줄 시간을 기다렸다. 때로는 그림책을 열 권씩 골라놓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빠는 두 권만 읽어준다. 한계선이 무너지면 피곤할 뿐만 아니라 잠자는 시간도 늦어진다. 무엇보다도 많이 읽어준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쉬울 때 멈춰야 다음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김종원 씨는 아이들이 자기 전 읽어주는 책도 항상 두 권이라는 원칙을 정해 놓았다.

한글을 모르던 르우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재밌고 웃긴 거였다. 예를 들면 ’까까 똥꼬‘라든지 약간은 개구진 내용이다. 라엘은 푸른색 계열을 좋아하지만, 르우는 그림도 색깔이 화려하고 붉거나 노란색 계열을 좋아한다. 르우는 읽었던 책을 또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그런 책들은 대부분 의성어나 의태어 등 흉내 내는 표현이 많은 책이다. 

르우는 순간순간 재미있거나 인상 깊은 게 있으면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심리적 안정을 주는 잔잔한 느낌의 책, 시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표현을 좋아한다. 스스로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일상을 적어 놓은 글을 좋아한다. 

사진=고봉선.
노란우산 1호점에서 로스터 김종원 씨의 솜씨가 돋보이는 질 좋은 커피를 마시면서 책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고봉선.

“노란우산 1호점과 손님”

2호점을 오픈하면서 작가와의 만남이나 북콘서트 공연 등 행사의 90%는 2호점으로 몰았다. 2018년 12월에 사업자를 내고, 19년 1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2호점은 한 해 동안 한 달에 두세 개씩 행사를 치렀다. 운영 시간도 더 길었다. 손님은 2호점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책방에 들어서는 첫 느낌은 쾌적함이었다. 울적했던 사람도 단박에 기분이 풀릴 것같이 환한 분위기는 사람을 쾌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밝고 화사한 분위기 속에서 깔깔거리고 조잘대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책 밖으로 나온 등장인물들이 그림 동화를 쓰는 것 같기도 했다.

손님은 대부분 관광객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주변 학교에서 오는 선생님도 계시고, 영어마을 혹은 서귀포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꽤 있다. 은근히 단골도 있는 편이다. 

2호점을 내기 전, 한 청년이 왔었다. 청년은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캘리 글씨를 써 써 주고 갔다. 다음에 와서는 또 하나 써주고 갔다. 세 번째에는 연인과 함께 왔다. 그리고 다시 캘리 글씨를 써주고 갔다. 

자전거 하이킹 중 커피를 마시러 들어왔던 여자 손님도 있었다. 그분은 인도출판사인 타라북스에서 수제작하고 보림출판사에서 번역본으로 출판한 “물속 생물들”과 “트리”라는 책에 관심을 보였다. 고가이기도 하지만, 딱 봤을 때 펼쳐 보일 수 있도록 한 이 책은 다른 데서 찾아보기 힘든 책이다. 게다가 제주에선 노란우산이 아니면 없었다. 그 책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손님은 책을 손에 쥐고 한참 고민하다가 떠났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에 다시 왔다. 그 책을 사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림책을 전면 배치해 놓은 책방은 당시 전국적으로도 별로 없었다. 제주에선 노란우산이 처음이었고, 그림책으로만 전시하다시피 한 책방도 노란우산이 처음이었다. 100% 수작업인 이 책은 펼치면 잉크 향이 나며 질감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사진=고봉선.
노란우산 1호점엔 모든 그림책이 전면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진=고봉선.

“왜요 아저씨”

노란우산 1호점의 시작은 카페였다. 김종원 씨가 대전을 오갈 때 이진 씨는 이곳에서 혼자 카페를 운영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골처럼 오시던 분이 ‘동네책방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 한 마디는 부부를 설레게 했다. 

사실 카페만 하기엔 그 당시 이곳은 너무 외진 곳이었다. 동네 아저씨들은 장사가 되겠냐면서 ‘라면 팔아라, 김밥 팔아라.’ 심지어 ‘맥주나 막걸리도 팔아야 장사 되지 않겠냐.’는 둥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지역주민으로 온 이들에게 보이는 관심이었다.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대부분 습관을 앞세우고 기존하던 것을 따른다. 그러므로 최초를 시도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런데 부부는 어떻게 최초를 시도할 수 있었을까? 그림책 전면배치는 노란우산이 제주에서 최초였다.

부부는 카페를 시작하면서 커피 맛만 좋으면 소문이 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뭔가 특색있는 카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이때 ‘동네책방을 같이 해도 좋을 거 같다’라는 단골손님의 한마디는 부부가 책방을 하자고 의견을 모으는데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책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생각나는 사람은 계룡문고 대표였다. 

대전의 북 스타트 프로그램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계룡문고 대표를 만난 이진 씨는 카톡을 주고받는 정도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다. 책 읽어주기 운동도 하고, 특히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는 계룡문고 대표는 책 읽어주는 학교로도 유명했다. 책방지기 부부에게 처음 “왜요”라는 책을 읽어주면서 부부는 ‘왜요 아저씨’라고 불렀다. 

사진=고봉선.
전면으로 배치한 그림책들이 마치 재롱을 떠는 듯 조잘대는 소리 들리는 것 같다. 사진=고봉선.

“허순영 관장을 만나다”

부부가 기대한 건 책을 공급받는 데 대한 정보였다. 그런데 계룡문고 대표는 부부더러 일단 대전으로 오라고 했다. 계룡문고는 바닥이 넓고 벽 전체가 낮은 책장으로 되어 있어 아이들이 뒹굴뒹굴하면서 책을 마음껏 꺼내 볼 수 있는 구조다. 이는 부부의 롤모델인 공간이다. 하지만 계룡문고 대표는 이게 다 빚이라고 했다. 지금도 몇억 빚을 갖고 산다고도 하셨다. 얼마 전엔 대출받으러 오갔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부부에게 책방은 꼭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작은 마을은 책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허순영 관장님을 소개해 주셨다. 허순영 관장과 상의하면 다 될 거라고 했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구상하고 만든 허순영 관장은 현재 착한 여행사 대표이다. 허순영 관장을 만난 부부는 ‘제주 도서관 친구들’에서 활동하며 ‘어떤 책방을 할까.’를 구상했다.

허순영 관장은 이진 씨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이진 씨는 그림만 들어가면 무조건 좋다고 했다. 허순영 관장 역시 그림책 운동을 할 정도로 그림책을 좋아하고 또 그림책도 읽어주는 분이셨다. 관장은 부부에게 일본에 그림책 박물관과 도서관, 그림책 마을을 주제로 하는 여행 코스가 있으니 가자고 했다. 당시 일본어 그림책 번역 작가인 황진희 선생님이 그림책 일본 투어를 하던 때였다. 부부는 일본 그림책 여행에서 도쿄를 중심으로 그림책 서점 크레용 하우스, 치히로 미술관, 도쿄 외곽의 마을 등을 둘러보았다.

이 한 번의 여행에서 부부는 시골의 그림책방과 카페를 어떻게 접목하면 될지 밑그림을 그리고 왔다. 기다랗고 좁은 책을 넣을 수 있는 공간, 길게 누울 수 있는 책들의 공간 등 규격과 거기에 넣을 책을 구상하면서 나무 형태의 책장도 짰다. 

허순영 관장은 부부에게 그림책 작가 과정을 진행하는 박연철 작가도 소개해 주셨다. 작가는 2주에 한 번씩 토요일이면 제주로 왔다. 16개월 과정의 그림책 작가 과정 2기로 들어간 이진 씨, 그는 마침내 그림책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사진=고봉선.
그림책 속 등장인물이 나와서 그림 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소품들. 사진=고봉선.

“보림출판사와 노란우산 서광점의 시작”

이제 그림책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 성량도 어느 정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림책방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지는 여전히 캄캄했다. 책방 이름도 지어야 했다. 때맞춰 허순영 관장은 부부에게 보림출판사 대표를 소개해 주셨다.

기꺼이 보림출판사 대표께서 보자고 했다. 부부는 파주 출판 단지로 가서 책방카페 노란우산과 주변 책방들을 둘러보았다. 모던하고도 갤러리 같은 카페였다. 내부는 하얀 바탕에 갤러리 전시관처럼 꾸민 책방이자 카페였다. 마음에 쏙 들었다.

2016년 5월쯤, 서울 홍대 앞에 직영으로 그림책방카페 노란우산을 연 보림출판사 대표는 전국에 그림책방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림책방이 전국 곳곳에 생기면 그림책 문화가 보급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다가 그림책카페노란우산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책을 공급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안내해 주셨다. 그렇게 그림책카페노란우산이 시작되었다. 

사진=고봉선.
전면으로 그림책이 배치된 책방 천장엔 별 하나가 매달려 있다. 책들이 진열된 나무 진열장은 김종원 씨가 직접 짰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통로로 들어서면 ‘카페올림’을 지나 책방으로 연결된다. 이어서 그림책 전문 동네책방답게 화사한 그림책과 만날 수 있다. 사진=고봉선.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다”

김종원‧이진 부부는 노란우산 2호점 탄생과 함께 삶의 근거지를 광령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제 1호점에서는 문화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애초엔 북스테이로 꾸미려고 했지만, 자가소유가 아니면 농어촌 민박으로 신규 허가를 낼 수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문화협동조합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전인적 힐링스테이다. 숙소도 제공하면서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나아가 내면 전체 즉 전인적으로 회복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다. 문화협동조합을 생각하게 된 건 2호점을 오픈하고 서광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면서다. 

문화협동조합에서 진행하게 될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우선 쑥찜 체험실 겸 교육실이 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족욕 하듯 쑥찜 체험도 하고, 관심 있는 사람은 배워서 교육도 할 수 있는 팀을 둘 예정이다. 다크투어리즘의 상품과 연결해서 농장체험도 접목할 계획이다. 이는 제주도의 환경, 역사, 유기농법 등을 접목해서 소개하는 여행사 친구가 있어 가능하다. 사진 전문 작가도 같이할 예정이다. 전문 작가와 함께 사진 수업이나 사진 전시는 물론 마을이나 주변을 아카이빙해서 동네 사진 찍기, 어르신들 영정사진 찍어 주기 등 봉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다.

천연염색 공방을 하는 분도 모실 예정이다. 천연염색 체험 겸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안 입는 옷들을 염색해서 다시 입게 하는 등 리사이클 하는 것이다. 음악 관련 부분에선 피아노 전공자도 함께할 예정이다. 잠만 자는 숙소의 개념이 아니라 머무는 장소, 또는 신체를 힐링하거나 주변의 유기농 농산물과 건강한 커피를 추구하는 이곳에서 건강한 음료도 마실 수 있다. 

책을 통한 작가와의 만남이나 그림책 모임 등을 하면서 마음을 회복할 수도 있다. 기존의 흔한 여행이 아니라 정말 제주스런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은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의 여행 코스를 따라 별 밤 보기 캠핑 혹은 감귤 따기 체험을 하면서 힐링할 수 있다. 이렇듯 정서적‧신체적은 물론 영적인 부분까지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 중이다. 힐링스테이 문화협동조합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같이 살기 위한 운동이다. 문화협동조합에서 각자의 삶이 어우러지며 끼를 펼치고 나눌 수 있도록 노란우산은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다. 

IT가 발전할수록 낭만과 서정은 죽어가고 있다. 문득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떠오른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해부학에 통달하면서 시체 조각을 조합하여 생명을 불어놓은 괴물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이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 창조물로 인하여 가족, 친구, 아내는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잃었다. 하지만 낭만과 서정을 살리는 건 다르다. 지금 우리에겐 낭만과 서정이 필요한 때다. 김종원 씨가 추구하는 문화협동조합은 죽어가는 낭만과 서정 혹은 이미 땅에 묻힌 낭만과 서정을 파내어 우리에게 힐링을 안겨줄 수 있는 일종의 낭만과 서정 부흥운동이다.

사진=고봉선.
기역 자로 되어 있는 그림책카페노란우산. 오른쪽은 커피전문점 “카페올림”, 정면으로 보이는 건 책방이다. 사진=고봉선.

“그림책카페노란우산은”

어린 자녀, 혹은 손주의 재롱이 그립지 않으신가요? 그림책카페노란우산 1호점을 찾아가 보세요. 벽마다 전면배치한 그림책이 조잘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천장에 걸린 소품들이 그림동화를 읽어주는 듯한 착각에도 빠집니다. 무엇보다도 밝고 화사한 분위기에서 쾌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스터이자 책방지기인 김종원 씨의 솜씨로 빚어낸 건강한 음료와 함께 그림책 속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서귀포시 안덕면 녹차분재로 32
인스타: www.instagram.com/bookshopnoranusan
블로그: blog.naver.com/jcswon
영업시간: 10:00~17:00(일요일 휴무)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