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제주시 태도 돌변에 도의회는 면죄부 ‘참담’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이 환경단체 등의 거센 반발(오른쪽)에도 불구하고 찬성 31, 반대 9의 압도적인 표차로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이 환경단체 등의 거센 반발(오른쪽)에도 불구하고 찬성 31, 반대 9의 압도적인 표차로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왼쪽). 결과적으로 도의회가 난개발 논란에 면죄부를 준 셈이 됐다. <그래픽=한형진 기자>

도시공원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본다. 본질적인 존재 이유. 녹지공간의 확보냐, 시민 이용 증진인가. 굳이 따진다면-적절한 조화가 이상적이긴 하지만-어느 것이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솔직히 헷갈린다. 도시공원을 규정한 법률(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이하 법률)을 들춰봐도 아리송하긴 마찬가지다.  

법률에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도시지역에서 도시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휴양 및 정서생활을 향상시키는 데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치 또는 지정된 공원’

맞다. 지금 제주에서 뜨거운 감자인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을 얘기하려다 근원적인 문제로까지 고민이 깊어졌다. 민간특례사업은 개발행위가 엄격히 제한된 공원 부지에서 말그대로 민간 사업자에게 파격적인 특례를 주는 사업이다. 다만, 몇가지 조건이 붙어있다. 법률에 따르면 4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법률 제21조의 2 제1항) 그 중 하나가 ‘해당 공원의 본질적 기능과 전체적 경관이 훼손되지 아니할 것’이다.  

여기서 당혹스러운 지점이 또 생겼다. 시민들로선 해당 공원의 본질적 기능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장 핫한 사업 대상지인 오등봉 공원의 경우만 해도 2001년 8월 지정됐다. 

혹시나 해서 20년 전의 기록을 찾아봤다. 공원 결정(도시계획 변경) 조서와 함께 사유서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오름의 자연경관 보호 및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공원 신설’이라고 쓰여 있다. 여전히 우선 순위를 가리기는 힘들다. 

이럴 땐 지정 당시 상황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20년 전이면 도시의 평면적 확산에 따른 우려가 비교적 덜한 시기였다. 오등봉 공원은 예나 지금이나 도심과는 꽤 거리가 있는 편이다. 또 빼어난 경관자원이자 제주특별법상 보전자원인 오름과 하천(한천·漢川)을 끼고 있다. 함부로 개발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 점들을 감안하면, 오등봉 공원은 녹지공간을 끝까지 남겨두려는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기능이 이용 보다는 보전에 방점이 찍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재의 민간특례사업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다. 난개발을 막기위해 공원을 조성한다며 무려 1000세대가 넘는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은 오등봉 공원의 본질적 기능을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이다. 본말전도다. 

그 난센스를 행정당국이 앞장서 조장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온갖 의혹을 받아가며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으니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이미 5년 전에 제주시 스스로 오등봉 공원의 본질적 기능을 운운했었다. 2016년 7월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 사전 검토 요청을 받고서 그해 9월 ‘수용 불가’로 결론을 내릴 때였다. 법률의 해당 조문을 바이블이라도 되는 양 그대로 인용했다. 

당시 제주시의 ‘검토 의견’은 지금 봐도 전향적이었다. 언급한 대로 ‘해당 공원의 본질적 기능과 전체적인 경관이 훼손되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전제해놓고 그러나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은 △경관훼손 △하천오염 및 재해가 우려되고 △(오등봉 공원 부지와 같은)자연녹지지역은 저층(4층) 이하 저밀도 개발을 계획하고 있으므로 12층으로 계획된 제안 사업은 곤란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담았다. 

아울러 공원 부지 내 사유지 일부를 이미 매입했고, 앞으로도 계속 매입할 예정이라며, 장차 민간특례사업이 추진되더라도 특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당시 제안 사업의 아파트 건립 규모는 12층 688세대로, 현재 추진중인 사업(14층 1429세대)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그랬던 제주시가 민간특례사업의 공동 사업자로 나섰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제주도가 민간특례사업 재추진 방침을 발표한 것은 2019년이다. 그새 오등봉 공원 일대에 천지개벽할 일이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최소한 5년 전의 수용 불가 사유가 말끔히 해소되었다고 판단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지 이건 심각한 문제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대충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2018년, 지방채를 발행해서라도 도시공원 내 사유지 전부를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던 제주도였다. 이러한 대책으로 제주도는 이듬해 국토교통부에 의해 도시공원 일몰 대응을 잘한 자치단체로 뽑히기도 했다. 제주도가 민간특례사업 재추진 입장을 밝힌 시점은 우수 자치단체 선정 소식이 알려진지 불과 며칠 후였다. 결과적으로 정부 부처를 기만한 꼴이 됐다. 

오등봉 공원 사업 추진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과 문제점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수용 불가 결정 이후 ‘사정 변경’ 여부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는 한 도민 이해를 구하기는 틀렸다. 오죽하면 오등봉 공원은 그냥 놔두는게 상책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이 와중에 제주도의회는 9일 본회의에서 오등봉 공원 민간특례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 내용 동의안을 원안 가결했다. 찬성 31, 반대 9의 압도적인 표차였다.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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