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국제자유도시? 미래 청사진 다시 짜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제자유도시가 제주의 비전으로 여전히 유효한가를 놓고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이 참에 개발 중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3월18일 제주도의회 임시회. 제주도와 국토연구원 관계자들이 도의원들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제3차(2022~2031년)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 수립에 따른 현안 보고 자리였다. 

국토연구원은 이 용역을 이끄는 국책연구기관. 질책의 요지는 용역 만료일이 코앞인데 갈팡질팡한다는 것. 뜬구름 잡기식이라는 지적도 쏟아졌다. 그럴만 했다. 용역에는 자그마치 12억8300만원이 책정됐다. 제1, 2차 종합계획 역시 계획 대비 이행실적이 매우 저조해 허명의 문서, 결국 캐비닛 용역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낯선 풍경이 아니다. 새로운 종합계획을 세우거나 보완 또는 수정을 가할 때마다 이런 모습이 연출됐다. ‘互通無界 好樂無限 濟州’(호통무계 호락무한 제주). ‘교류와 비즈니스의 경계가 없고, 무한한 만족과 즐거움을 얻는 곳, 제주’라는 뜻이란다. 문장의 앞 부분은 국제자유도시를 수식하는 내용. 조악한 한자로 제주의 비전을 명시한 제2차(2012~2021년) 종합계획은 요즘말로 치면 정체불명 비전의 끝판왕이었다. 

제1차(2002~2011년) 종합계획도 현실성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구호만 요란했다. 2차 계획을 짤 당시 1차 계획에 의해 추진된 사업들에 대해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다”는 내부 고백이 나올 정도였다. 

이래도 되나 싶다. 국제자유도시 관련 최상위 법정계획인 종합계획은 제주 미래 종합설계도이자 청사진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비전 자체를 잘못 정한 것일까, 도민소통·공감이 부족했나. 아님 둘 다인가. 애초부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끼워입은 건 아닐까. 3차 종합계획의 비전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스마트 사회, 제주’로 설정됐다. 민선 6기 원희룡 도정의 제주미래비전에서 제주 핵심 가치로 내세운 청정·공존과 맥이 닿아있다. 꽤 그럴듯하게 들리나, 연구진이 나열한 핵심사업들을 들여다 보면 비전과의 부조화가 느껴진다. 

굳이 갖다붙이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이 글로벌화된 마당에 국제자유도시가 제주의 비전으로 여전히 유효한가? 이런 물음표는 이제 생소하지 않다. 어쩌면, 특별자치도 출범 후 도민 삶의 질이 되레 떨어졌다는 평가가 반복적으로 나올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전면적인 궤도 수정의 필요성을. 올초에도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한지 18년이 지나는 동안 도민 삶의 질은 뒷걸음질했다는 진단이 도의회 TF 차원에서 내려졌다. 

최근에는 문제 제기가 부쩍 잦아졌다. 빈도도 그렇거니와, 스펙트럼도 한층 넓어졌다. 

시민사회는 아예 국제자유도시 폐기를 들고 나왔다. 더 이상 국제자유도시가 우리의 비전이 아니라는 얘기다. 법명(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 뿐 아니라 법조항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25개 시민사회단체·정당 등이 모여 ‘국제자유도시 폐기와 제주사회 대전환을 위한 연대회의’를 구성키로 했다. 이들은 3차 종합계획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를 타이틀로 내걸었지만, 사실상 개발 위주의 프로젝트로 채워졌다고 꼬집었다.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서귀포시)이 지난 4월 제주국제자유도시에서 ‘자유’를 빼는 내용의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도 개발 중심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일련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국제자유도시 조성 전담기구인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올해 창립 19주년을 맞아 ‘제주국제도시공사’로 명칭 변경을 시도하는 것도 궤를 같이한다. 

그런가하면 [제주의소리]가 한라일보, 제주와미래연구원과 공동으로 마련한 특별기획 ‘제주인이 바라는 제주특별법 시즌2를 준비하다’ 역시 국제자유도시, 특별자치도에 대한 궤도 수정 요구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제주특별법 전면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지난 4일의 첫 토론회부터 참석자들이 민감한 지점을 건드렸다. 

제주참여환경연대 홍영철 공동대표는 국제자유도시 비전의 폐기 또는 대폭적인 궤도수정을 주창했다. 그는 특히 친환경적인 국제자유도시는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환경친화적인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한다는 제주특별법 제1조(목적)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김영배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세종균형발전특별자치추진단장)은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 개념에서 ‘자유’라는 말을 배제하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넣어서 새롭게 설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송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갑)은 “국제자유도시는 정체가 없는 유령”이라면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주문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제주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도민사회에 본격적인 화두를 던진 것 같아 반갑다. 제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더욱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기대해본다. 내친 김에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각 후보들이 선의의 정책 대결을 펼치는 소재로 삼았으면 한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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