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서른네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40년 전 제주시 서사라에 살았던 추억의 남문·서문통. '통(通)'은 일제강점기 일본말 '토리' 산물. 제주시는 관덕정을 중심으로 남문통, 서문통, 동문통으로 구역화 했다. 옛 제주 시내에서 오래된 큰길 가운데 하나가 ‘남문로’다. 관덕정 앞에서 남문 로터리까지 450m가량 뻗어 있는 길인데 남문로는 원래 남문통 또는 한짓골로 불렸다. 과거에는 제주성 북쪽에서 한라산 방향인 남쪽을 잇는 길 가운데 가장 큰길이 제주읍성 남문이다. 남문에는 예부터 한짓골(한질골), 남문 한질골, 남문골 등으로 불려왔다. 한짓골(남문로)은 현재의 관덕로 8길로 1969년 중앙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제주시내 남과 북을 잇는 가장 대표적인 길. 

또한 한짓골을 중심으로 남문샛길, 몰항골, 이앗골, 두목골, 동불막골, 새병골 등 과거의 흔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그마한 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몰항골은 옛 만수당약방 앞 ‘통물(이 우물을 길어다 먹음)’ 옆에서 동쪽으로 이앗골까지 이어진 길이며, 이아 동쪽 벽을 따라 웃한짓골에 닿은 말방아가 있었던 동네에 난 항아리 모양으로 굽은 길이라 이름이 그렇게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앗골은 서쪽 이아(貳衙, 판관 집무처)로 통하는 길이었다. 지금 예술공간 이아는 조선 시대 판관이 근무하던 이아가 있던 터에 자리 잡았다. 이아 동헌(東軒)인 찰미헌(察眉軒)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이곳에 자혜병원(慈惠病院)이 들어섰으며 광복 뒤인 1946년 제주도립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8년 교통 혼잡을 이룬 남문로 중앙로 쪽으로 나오다 왼편을 보면 천주교 제주교구 중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1899년 6월 프랑스인 페네 가를로 신부와 김원형 신부가 포교를 시작해 1930년 최덕홍 신부가 현 제주 중앙본당 자리에 고딕식 붉은 벽돌 성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현재 고운속눈썹, 벼룩시장이 있는 자리엔 옛 남양문화방송국(현 제주MBC)이 있었다. 남양방송(NBS)은 1968년 9월 14일 라디오방송을 시작해 1970년 8월 1일 남양방송TV(당시 채널11)를 개국했다. 소라다방은 문인들이 모임터. 남문통엔 고향 누이네가 하는 남일당 빵집이 있었다. 필자는 1970년대 남양방송에 봉직하다가 대학으로 유학(遊學)길에 올랐다.

남양방송(현 제주MBC) 전경. 출처=제주MBC 창사 40년 사진전 누리집.
남양방송(현 제주MBC) 전경. 출처=제주MBC 창사 40년 사진전 누리집.

문(門)은 어떤가? 서울 궁궐의 門을 보면…

서울의 4대門은 조선시대에 도성을 출입하던 성문(城門). 속칭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 이것은 창건 당시에 지어진 이름이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붙여진 것.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1394년, 도읍을 지금의 서울(남경)로 천도할 때 동서남북에 4대 성門을 배치하면서 동쪽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은 돈의문(敦義門), 남쪽은 숭례문(崇禮門), 북쪽은 홍지문(弘智門)이라고 하고, 종로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웠다. 조선이 유교의 기본 이상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5상의 덕목을 4대門과 보신각에 한 자씩 포함시켜 국민 교화에 힘썼다. 또 궁궐의 대소 궐門 명칭도 광화문(光化門), 돈화문(敦化門), 선화문(宣化門), 홍화문(弘化門)이다. 북門은 관습상 북망산(北邙山,저승)을 뜻해 제주에도 사용 안 했다. 모슬포에서는 한라산이 북문, 제주시에서 북문은 바다 쪽이 아닌가? 한라산 오름발이 북문-북망산천(北邙山川)인 것을.

문(門)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세상에는 많은 문(門)이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창문은‘딱딱한(Hard) 門’, 몸의 항문, 여성문 등의 ‘부드러운(Soft)  門’, 그리고 마음의 ‘門 없는  門’, 크게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아파트 문을 열고 출근하여 사무실 문을 열고 컴퓨터 윈도우 문을 열고 일하고 퇴근하면 집안 문으로 들어선다. 우리의 삶이 어머니 자궁 문을 나와 세상살이 문 속에서 자기골문(Goal Gate)에 공을 집어넣기도 하고 못 넣기도 하고 그렇게 살다가 저세상 문으로 간다. 문의윤회(輪回)다. 세계 4대 성인은 ‘마음의 문’을 연(Open) 사람이고,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는 안 보이는 ‘미지 세계의 문’을 연 사람이다. 

석가는 반야심경에서‘상즉(相卽) 불이문(不二門)’을, 예수는“ 나는 문(門)이다(요한복음10장7절-9절)”, 그리고 페니실린 발견으로 1945년 노벨상을 받은 영국 플레밍은 1928년 9월 3일 휴가를 가면서 창문을 열어놓고 간 후 방치한 배양접시서 푸른곰팡이가 균을 먹은 사실을 발견했다. 2층에서 배양하던 푸른곰팡이 하나가 바람을 타고 3층 플레밍연구실창문을 통해 포도상균 배양접시에 안착한 것이다. 페니실린이 발견된 동기다. 문(門) 덕택이다.

컴퓨터의 윈도우를 발명한사람은 William(Bill) Gates, 사람들은 Gates의 이름에 문(門, Gate)이 수 조(數兆, Billion)개(個)가있어 윈도우를 발명했다고 농담을 한다. Gates는 User friendly 컨셉이 Window 발명 동기. 필자의 이름도 문호인데 한문(漢文)으로 뜻풀이하면 문 문(門)자에다 넓을 호(浩)이니 ‘문이 넓다(Gate Bandwidth Expansion)’라는 뜻. 저 혼자 생각은 이름 가운데 글자를 문 문(門)자로 쓰는 사람들이 없어 문호(文浩)가 아닌가 했다. 출생 신고를 면(面)서기가 실수(?)로 문호(門浩)로 잘못 올렸지 않나 싶었다.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문(門)을 찾아 배낭여행을 하면서 찾은것은 門자는 좌우대칭(Symmetry)으로 가운데가 텅 비어 모든 사람이 오고갈 수 있도록 길(路)이 되어 있다. 얼마나 큰 은혜인가. 

그런데 2년 전 어느 날, 선친 존함은 갑(甲)자 부(富)자를 생각하게 됐다. 제 이름과 선친이 이름을 합치면 수문(水門, Dam) 갑(閘). 부자(父子)간에 네트워크(Networking)가 이뤄진다. 이 한 글자로 인해 왜 제 이름을 문(門)자로 작명했는지를 알았다. 선친이 살아계실 때 이름 문(門)자를 물어보면, “살암시믄 알아져, 이름(名) 값 허여”가 답이었다. 門+甲=閘. 이글을 꼼꼼히 읽어주신 문후경 전 제주여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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