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정조의 위협(?)을 느낀 데칸고원

나는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과거에 이미 일어났던 일을 배워, 그 지식을 현실에 반영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유추해보는 것은 공부라기보다는 차라리 놀이에 가깝게 여겨질 정도로 즐거운 일이다.

수학이나 물리는 영 아니올시다! 이지만, 역사만큼은 내가 재구성해가는 재미가 쏠쏠해 이과를 선택한 지금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만약 랑케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건 역사가 아냐!’ 하며 무덤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재미난 걸 어쩌란 말인가. 하하하.

▲ 엘로라 16번 굴 정면.
역사와 종교와 삶이 한데 엉킨 나라 인도. 인도에 가서는 종종 과거의 흔적으로부터 환영을 보곤 했다. 거리에 널린 게 종교이고, 종교마다 얽힌 게 역사이며,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의 점막에 진득하니 달라붙어 오는 삶의 냄새. 그리고 문득문득 떠오르곤 하는 데칸고원의 엘로라 석굴들.

인도여행을 시작하고 20일. 엘로라를 방문했을 땐 이미 질리도록 지쳐있던 상태였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16번 굴의 ‘현지인은 10루피, 외국인은 250루피’라는 엄청난 입장료 차이에도 분개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고작 10루피를 아끼려고 옷가게 점원과 30분을 실랑이 했었던 나였기에 이때 내가 얼마나 안 좋은 상태였는지는 두말하면 잔소리, 세말하면 입 아플 정도이리라.

▲ 엘로라 16번 굴 다른 각도.
데칸고원. 중학교 2학년시절이었는지 3학년시절이었는지의 지리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다. 사회과부도에 4B연필로 굵직굵직하게 표시해두었던 바로 그 장소. 상태는 최악이라 불러도 나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 데칸고원이라는 게, 그리고 어쩌면 내가 칠한 검은 4B연필자국 아래일지도 모른다는 게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가 정말로 이 자리에 서 있구나. 가끔은 정말 이 지도상의 모든 나라가, 모든 도시가 실존하는 곳일까? 싶었지만, 정말로 실존하고 있는 거였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 엘로라 16번 굴 안.
입장을 미루기엔 참을성도, 미뤄야만 할 이유도, 또 기다림을 버틸만한 체력도 모자랐다. 그래서 바로 뛰어 들어가려다가 16번 굴 뒤로 둘러싼 바위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16번 굴 전체가 한눈에 보인다고, 굳이 250루피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혹해 일단은 바위부터 올라보기로 했다. 뭔가 있어 보이면 입장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30분도 지나지 않아 입장권을 끊어버렸다. 있어 보인다는 말로 표현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차라리 바위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새로운 경험을 했으니 잘 올랐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바위에서 생명의 위협과 정조의 위협을 동시에 느꼈으니까!!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그리 거창한 일은 아니다. 한 무리의 현지인이 내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해오고, 내가 찍어주며 립 서비스로 'You look good.'이라고 말하자 한 인도인이 갑자기 One kiss please라 말하는 것을 one-piece please로 알아듣고 I don't have one-piece라고 대답한 생뚱맞은 사건일 뿐이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 상황에 One kiss please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남자들을 박씨시라고 생각한다면 one-piece please는 차라리 설득력 있는 문장 아닌가? 솔직히 그렇게 빈티 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 "One kiss please"의 악몽.
그 남자, 참 얄미웠다. 바위가 무너져라 한숨을 쉬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의아해하는 중 갑자기 달려들어 얼굴을 붙들고 입을 맞추려하는 게 아닌가! 반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팟 하고 밀었는데, 아뿔싸. 내가 서 있던 곳이 바위 끄트머리였던 것이다. 그것도 밑에 있는 사람이 새끼손톱만 하게 보일 정도로 높은 절벽 끝. 무게중심이 흐트러져 몸의 반은 바깥으로 딸려나갔던 것 같다. 정말 이게 끝이구나 싶었지만, 혼자서 갈순 없지! 라는 물귀신 작전으로 내게 입 맞추려 달려들던 남자의 멱살을 꽉 쥐었다. 그 남자도 죽기는 싫었는지 안간힘을 써서 바위를 붙들고 늘어지고, 그 남자의 일행들도 필사적으로 우리를 붙들고 늘어져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내가 아무리 ‘싫은 일 유쾌하게 넘겨버리기’ 4단이라 해도 못 참는다. 삼백안을 뜨고 가슴팍을 다시 밀쳐내며 ‘Go!'를 외치자, 이번엔 잘못한 걸 알았는지 조용히 산을 내려가더라. 참 아찔했던 순간이다.

▲ 엘로라 16번 굴 안.
불쾌한 기분을 털어내고 입장. 출입구 바로 옆의 벽면에 기대앉아 가만가만 눈앞의 건축물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등 뒤에는 차갑게 식은 돌 벽이, 눈앞에는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인 것 같아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 몸을 경계로, 뒤쪽은 시간이 멎어버린 것 같고, 앞쪽은 여전히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고.

▲ 엘로라 16번 굴 안.
꼭 해리포터에 나오는 펜시브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들이 기억이 액체화 되어 저장된 물체) 속으로 고개를 들이민 듯 한 느낌이었다. 아무도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 또한 시간이 흐르고, 무언가 계속해서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간신히 인식 할 수 있을 뿐인 느낌.

물론 그게 엄청난 착각이라는 건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가족끼리 놀러 온 현지인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느라 안면근육에 경련이 일어 날 정도였으니까. 나중엔 대기 팀(?)들이 몇 팀씩이나 기다려서, 결국 삼십 여분 동안 한 번도 앉지 못하고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 엘로라 21번 굴에서 촬영한 힌두교 신의 하나, 가네사.
정말 지쳤다 싶고 더 이상 사진을 찍을만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을 무렵, 풀릴대로 풀려버린 다리를 직직 끌어 석조 건축물 위로 올랐다. 5평방미터정도 되는 너비의 공터였는데, 벽에 등을 기대고 내려다보는 사원은 정말이지 활기에 넘쳐서, 내가 피곤하다는 게 왠지 억울하게 느껴졌다.

▲ 엘로라 16번 굴 안.
지금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바닥 위로 건축의 흔적들이 잔뜩 쌓여있었을 사원 건축 당시를 생각하니 땅! 땅! 하고 돌이 깨지는 듯 한 소리도 귀울림처럼 들리고, 따뜻한 햇볕에 달궈진 공기도 어쩐지 돌가루를 안고 있는 듯 까끌하게 느껴졌다. 재미있었다.

‘저기 저쯤엔 인부들이 돌을 깨내려고 망치질을 했겠지?’, ‘저쯤에선 지휘하는 사람이 서 있었을라나?’ 하는 생각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내가 깔고 앉은 돌의 표면 하나하나마저도 다 의미 있게 느껴져서, ‘거칠거칠한 이 부분은 꼭 사람이 웃는 모습 같네, 이 부분을 작업한 인부도 그렇게 느꼈을까? 그랬다면 정말 시대를 뛰어넘은 공감이잖아! 영화 동감같아!’ 하고 생각해버렸다. 한국에 돌아오면 꼭 영화 동감을 다시 보자는 생각과 함께.

▲ 엘로라 16번 굴 안.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그때의 다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수능준비 하랴 뭐 하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영화는 꿈도 못 꾸고 있었던 거다. 가끔가다 도서관을 들러 책이나 읽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최고의 휴식일 만큼 여가생활이 빈곤했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불쌍하다. 그래도, 다른 수험생에 비해선 훨씬 융통성 있게 시간을 활용 할 수 있으니 그건 다행일까?

가만 보면, 난 멀뚱히 앉아있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전개시키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요즘처럼 정신없이 지내는 때엔 엘로라 16번굴의 석조건축물 위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던 시간이 너무나 그립다. 과거와 현실이 온통 뒤섞여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과거인지 분간해 낼 수 없었던 공간. 그리고 시간.

▲ 엘로라 16번굴 앞의 뜰.
그때의 까끌한 공기마저 그립다. 가만히 서있으면 녹아버리지 않을까 싶었던 이마의 열도, 한걸음을 내딛기도 피곤했던 다리의 묵직한 통증도, 심지어는 계속 웃고 있느라 안면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뻔 했던 삼십 여분마저도 그립다.

그리움. 내 빈곤한 어휘력으로 인도를 이 이상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기나 할까. 아직도 틈이 날 때마다, 정말로, 정말로, 수학문제를 풀다 어깨가 뻐근해서 기지개를 켜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마음은 인디안 에어라인을 타고 인도로 날아가 버리곤 한다. 내가 걷지 못한 길. 내가 마시지 못한 공기. 내가 겪지 못한 수많은 사건과,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수많은 무언가들.

   
 
 
현실로 돌아오면, 인도 복식을 하고, 인도에서 산 플립플랍을 신고 눈 내린 제주공항을 딛던 그 날로부터 벌써 다섯 달 째라는 데에 놀라곤 한다. 아직도 제주공항에 서 있는 듯, 32일간의 여행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 시간만 혼자 앞으로 내달려버린 듯 한 기분이다.

델리, 아그라, 바이샬리와 엘로라. 아직 바라나시의 장터도, 녹야원에서 만난 초전법륜상에서의 감동도, 고아에서 만난 인상 좋은 민박집 사장언니와 함께 했던 미사도, 푸리에서 만난 과일장수 아저씨에게 덤으로 받은 포도 이야기도, 아우랑가바드에서 세 시간동안 졸다 보다 했던 인도의 맛살라 영화 ‘GURU'나, 뭄바이의 눈 튀어나오게 비싼 물가도, 함피에서 소매치기 당한 100달러의 설움도,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것 같은데…. 6월도 끝자락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수험생에게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음속과 같다지만, 그간 얼마나 게으름을 피웠으면, 산더미 같은 이야깃거리 중 고작해야 너댓개밖에 풀어놓지 못한 것인지.

▲ 뭄바이 공항.
후회스럽지만, 이제는 어떤 형태로든 인도에서 헤어나와야 할 것 같다. 인도를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간만 살짝 본 주제에 묶여있기는 엄청나게 오랫동안 묶여 있어서 이쯤에서 뿌리치고 나와야, 다음 여행을 정말 즐겁게 할 수 있을 듯 한 느낌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 후반엔 디카 상태가 좋지 않아 사진도 거의 찍지 못했고, 무엇보다 새로운 여행지인 ‘한국’에서의 이야기도 잔뜩 있어서 손가락이 근질근질 하고 말이다.

지금까지는 인도를 ‘되돌아’ 봤으니, 이젠 앞을 ‘내다’ 봐야지. 일단 불만이 많아서 먹고싶은 것도 많은 수험생 생활을 멋지게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서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어디로든지 떠나자! 그 곳이 한국의 숨겨진 마을이 되었던지, 아프리카가 되었던지, 유럽의 ‘헉’소리나게 사치스러운 호텔이 되었던지! 지금 기분 같아서는 왠지 또다시 인도의 게스트하우스가 될 것 같지만.

생각하면, 그리움 뿐이다. 무서워서 울면서 밤을 지새웠던 빤짐의 엘리트 롯지도, 지금은 그저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뿐. 그러니, 더 이상은 아무 말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다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 안녕!
안녕, 안녕, 정말로 안녕.
열일곱의 끝과, 열여덟의 시작을 함께했던,
‘나의’ 인도에게.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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