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52) 근로자대표 선출 요식행위 개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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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현재 각 현장에서 노동자를 대변할 근로자대표가 제대로 선출되어 있지 않아 법상의 ‘서면합의’가 형식적인 요식행위로 치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집단 내에서 그 조직에 대한 대표를 선출하는 일은 크게 어색한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 반장, 전교회장을 선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지역구와 국가를 대표할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다. 본인의 취미나 업무상 특성에 따라 소속되어 있는 OO협회, XX조합, **모임 등의 단체들도 그 목적에 따라 대표를 선출하여 고유의 의견을 모아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업장에서는 어떠한가? 보통의 경우 사업장은 사업주가 경영을 대표한다. 그렇다면 그 사업장 내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도 사업주가 대표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라면 노동조합의 대표가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겠지만, 노동조합이 없거나 전체 직원에 비하여 노동조합원의 수가 작은 경우에는 노동법에서는 별도의 “근로자대표”를 설정하고 있다. 노동법에서 “근로자대표”가 등장하는 경우는 대부분 노동조건이 불이익하게 변경되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①경영상 이유로 인한 인원감축 ②임산부와 연소자의 야간휴일근무시행 ③취업규칙의 내용 변경 시 근로자대표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①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②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 ③유급휴일의 대체휴무 시행 ④재량 간주 근로시간제 ⑤연장야간휴일근무에 대한 보상휴가제 ⑥연차유급휴가의 대체 ⑦퇴직급여제도 설정 및 변경 ⑧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등을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필요하다. 합의가 되지 않았거나 구두로 합의한 후 해당 제도를 도입한 경우에는 그 내용이 무효가 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경우다. 공휴일에 쉬지 않고 예외적으로 다른 날에 쉰다는 결정을 하거나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서 일정 기간에 몰아서 일을 하고 평균적으로 주40시간을 맞추어 운영한다는 결정을 하는 경우, 취업규칙의 내용을 불이익 하게 변경하는 등 노동시간이 유연화 되거나 노동자에게 불리한 경우 해당 노동자 개인과의 합의가 아닌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필요로 한다. 근로계약서를 통해 사업주와 1:1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하지만 노동 과정에서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위치를 고려하여 근로계약의 내용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그의 입장을 대변해 줄 ‘대표’를 등장시킨 것이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각 현장에서 노동자를 대변할 근로자대표가 제대로 선출되어 있지 않아 법상의 ‘서면합의’가 형식적인 요식행위로 치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는 아예 근로기준법상 위의 보호 조항들이 적용되지 않아 법의 적용을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5인 이상 사업장에 근로자대표가 선출되어 위 조항들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상담사례에서 근로자대표의 선출과정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사용자측이 정한 대표에 동의한다는 연서명을 강요받는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대표를 지정하는 경우, 아예 근로자대표를 지정하지 않고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경우 등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한 노동자 보호 장치는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로 주40시간 준수 및 주12시간이상 초과근무 금지를 명확히 법제화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적용한 결과 5인 이상 사업장에까지 확대되는 것이 돌아오는 7월 1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도입한 것이 사업주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확대가 그것이다. 주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대신에 일정기간 평균해서 주40시간이 넘지 않는다면, 주간 노동시간을 최대 64시간까지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동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근무시간이 매우 유동적일 수 있어 안정적인 휴식의 보장과 규칙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불이익이 발생한다.

이러한 유연근무제를 실시할지 여부의 결정권한은 근로자대표에게 있다. 사용자가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려면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5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라면 누구나 빨간날(공휴일)에 쉴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근로자대표에게 휴일을 대체할지 여부에 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명절에 쉴 수 있는지의 결정권이 근로자대표에게 쥐어져 있는 것이다. 

최근 개정된 근로기준법 시행으로 노동과정에서 근로자대표의 역할이 강화되었지만 아직까지 과반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대표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운영하는 노사협의회의 근로자위원은 “근로자대표”와는 법상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학창 시절, 1년의 시작점에서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신다면, 우리 학급을 위해서~~~”라며 정견발표를 보았던 그 경험을 떠올려보자. 현재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우리 일터의 노동자 대표로 뽑아주신다면, 저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로 시작되는 대표가 한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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