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럼 2021] 4.3세션, "냉전체제의 희생량...세계사적 보편성으로 접근해야"

25일 '제16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4.3과 세계 냉전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열린 세션. ⓒ제주의소리
25일 '제16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4.3과 세계 냉전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열린 세션. ⓒ제주의소리

"1948년 제주에서 발생한 4.3사건은 냉전의 기점에서 정점을 찍은 세계적인 학살사건이었다"

20세기 강대국이 주도한 냉전 시대, 수많은 인명 살상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다. 제주라는 자그마한 섬에서 발발한 4.3 역시 결코 지역적 사건이 아닌, 세계적 규모에서 진행된 냉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단법인 제주4.3연구소는 25일 오후 1시30분 제주 해비치호텔 앤 리조트 다이아몬드홀A에서 '제16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4.3세션을 진행했다.

'4.3과 세계 냉전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열린 이날 세션은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의 발표와 정근식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의 기조강연, 마스다 하지무 국립 싱가포르대학교 교수와 허호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의 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박태균 원장은 1960년대 동남아시아에서의 학살 사건과 제주4.3을 연결지었다. 박 원장은 "1945년 얄타회담 이후 세계적으로 냉전체제의 틀이 만들어졌고, 한국전쟁은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출발점이 됐다"며 "인간이 보다 잘 살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할 이데올로기가 목적이 됐고, 이데올로기의 이름 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 과정에서 인권은 완전히 무시됐다. 이데올로기를 중심에 놓은 마녀사냥은 비정상을 정상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그 대상이 됐다"며 "그러한 피해는 주변부에 있는 국가들에 집중됐다. 냉선 시기 아시아 국가에서는 지속적으로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먼저 박 원장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학살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게릴라와 일반 주민들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주민들은 게릴라를 숨겨줬고, 게릴라는 주민들로부터 충원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피의 보복이 발생한 것으로, 대표적 사건인 1968년 3월16일에 있었던 미라이 학살"이라고 했다.

전쟁 중 벌어진 민간인 대량 학살사건인 '미라이 학살'은 약 26명의 미군이 관여해 약 500명으로 추정되는 민간인을 학살한 건이다. 희생자는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었고, 상당수는 여성과 아동, 5개월 미만의 유아였다. 그러나 학살에 관여한 이 중 한 사람만 유죄 판결을 받았고, 상급 명령권자인 영관급 장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박 원장은 또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문제는 국내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에 의해 약 80여건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으며, 9000여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된 것으로 집계돼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로서의 역사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자성의 목소리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대학살도 또 다른 예시가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50만명 정도의 인도네시아인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학살당한 사건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화교계 인도네시아인으로, 약 8만명이 희생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최근에야 이 사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제16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4.3세션 발표에 나선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제주의소리
25일 '제16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4.3세션 발표에 나선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제주의소리

이와 관련 박 원장은 "4.3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상황을 통해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원장은 "4.3사건은 항쟁과 학살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성격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면서도 "사회적 공감대를 고려할 때 '학살'에 우선 초점을 맞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더 중심을 두고, 논란이 될 수 있는 항쟁과 관련된 부분은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4.3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담보해야 한다. 국내 다른 사례와 함께 다룸으로써 한국 현대사에서도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 여순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라며 "보다 큰 관점에서 보면 4.19혁명이나 광주항쟁, 6.10항쟁의 뿌리로서 4.3사건의 항쟁을 위치지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조발제에 나선 정근식 위원장 역시 냉전체제라는 역사적 배경에 초점을 맞췄다. 정 위원장은 "4.3은 지방사적 맥락과 일국사적 맥락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사적 맥락에 놓여 있다. 4.3사건의 출발은 1947년 3.1절 행사인데, 대만에서는 1947년 2월28일 대중적 저항 사건이 일어났다"며 "거의 동시에 두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돼 새로운 질서 또는 국가형성을 모색하던 상황에 있던 한국과 중국의 주변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힘을 상정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 위원장은 "4.3사건 이후 한반도에서 끝내 분단국가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중국의 동북지방에서는 본격적 내전이 시작됐으며, 베트남,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에서도 탈식민을 향한 요구와 국가형성 주체들 간의 갈등이 요동치고 있었다"며 "동남아에서 냉전적 적대가 격심해진 결과"라고 했다.

토론을 통해 허호준 기자는 공간적 개념을 확대해 그리스 내전 사례를 조명했다. 허 기자는 "냉전체제 형성기 탈식민지적 상황과 이데올로기의 결합은 수많은 학살을 가져왔다. 미-소간 갈등은 그리스 내전을 직접적 계기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며 "전후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난 그리스에서 발발한 내전의 후유증은 오늘날까지도 그리스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고 했다.

허 기자는 "1946년부터 1949년까지의 그리스 내전과 1947년 타이완 2.28사건, 1947년부터 1954년까지의 제주4.3은 거의 동시대에 일어났다. 이들 사건에 공통된 키워드는 냉전과 이데올로기 학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세계적 냉전체제 속에 일어난 사건의 생존자와 경험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내고 공감하는 공동작업이야말로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아시아 민중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연대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며 " 각 국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 인식의 차이 등 여러 면에서 다룰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사회통합과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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