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기후변화 피해, 취약계층에게 더 클 수밖에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제주도 토양의 분포. 자료=제주도농업기술원.

약 120만 년 전, 망망대해 그 한가운데서 바닷물이 뽀글거리더니 마그마와 함께 땅이 솟아올랐다. 무시무시한 불꽃과 함께 엄청난 화산재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대략 30만 년 전 즈음 지금의 제주모양으로 돌이 굳고 재가 쌓였다. 이때 제주에는 대략 편서풍이 불었다. “편서풍이 불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편서풍은 지구의 위도 30도에서 60도 사이의 지역에서 일 년 내내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을 일컫는다. 중국의 미세먼지가 서쪽에서 자주 날아오는 것도 이 편서풍의 영향이다. 이 편서풍이 중요한 이유는 제주에서 동쪽과 서쪽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매우 달라지는 근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화산폭발로 형성된 제주는 대체로 뜬땅(화산회토)와 된땅(비화산회토)로 구분될 수 있는데, 그 토양에 따라 재배가 적합한 작물이 달랐다. 바람의 영향으로 화산재가 많이 불려간 동쪽은 화산회토인 뜬땅이 많고, 서쪽은 된땅이 많다. 대략 동쪽은 주로 당근, 감자, 무 등이 재배되었고, 서쪽은 보리와 조, 양파, 마늘 그리고 벼농사도 지었다. 이렇게 다른 흙의 특성으로 인해 지역별 재배 작물이 달라졌다. 그리고 각 재배 작물의 생장 시기와 특성에 따라 그 지역의 농사의 시기와 양태가 달라졌다. 재배된 작물에 따라 음식의 조리 방법도 달라졌다. 수많은 삶의 단면들이 다르게 발전하고 다른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제주도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은 꽤 다른 삶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참조 논문 [제주 토양환경을 알면 제주의 사회․ 문화를 안다], 현해남, 2011). 이렇게 기상현상은 삶의 본질적 모습을 변화시키는 큰 원인이 된다. 

한편 지구의 역사를 보면 지구의 기후는 큰 주기를 가지고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한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지구의 기상은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투발루를 비롯한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이 통째로 바닷물에 잠기고 있다. 다르푸르 지역에서는 가뭄과 사막화로 아랍계 유목민족과 비아랍계 농경민족이 생존을 건 싸움을 벌임으로서 큰 분쟁이 발생하였고, 수십만 명 이상 죽거나 다치는 비인도주의적 상황이 발생하였다. 

기후변화으로 인한 변화가 제주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2019년 제주환경운동연합의 보고서에 의하면, 고산지대까지 조릿대가 확산되고, 구상나무군락이 죽어가고 있으며, 다른 기후권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이 출현하고 있고, 저지대의 바닷물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제주의 기온은 한반도의 기온 변화 +1.8℃보다 높은 +2.19℃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의 제주의 생태와 풍광이 점차 사라지면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조: 제주환경운동연합 (http://jeju.ekfem.or.kr/archives/15991) ) 농사를 짓고 있는 필자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확연히 느낀다. 농사의 주기가 과거와 매우 달라져 있고, 재배 작물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감귤이라는 단일작목에 기대는 비중이 매우 큰 제주도의 입장에서, 남해안까지 올라간 감귤 재배 가능 지역은 제주도의 경제, 사회, 문화에 큰 변화의 요인이 아닐 수 없다. 과거 편서풍의 영향으로 인한 달라진 제주 문화의 원형을 생각해보면 기후변화로 인한 제주의 변화는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들의 도를 넘는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급격한 기후변화는 인간들의 존엄한 삶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투발루와 다르푸르의 사례에서 보듯이 급격한 기후변화는 현재 인간들의 삶을 원천적으로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주에서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주요한 산업이 붕괴하거나 타지역으로 이전되는 등 기후변화로 인한 변화는 제주지역에서도 여러 사회적 분쟁과 혼란이 야기할 수 있다. 아열대 식물의 재배를 추진하는 것과 같이 다른 대체 산업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급격한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심각한 인도적 위기를 야기하는 기후변화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는 인권의 문제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사람 또는 국가와 피해를 보는 사람 또는 국가는 다르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에게 피해가 더 가중되고 있고,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회의 취약계층의 피해가 더 심각한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취약한 주민들은 기후 변화로 생겨난 위험지역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렴한 가격의 거주 공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변화의 위기가 사회적인 취약계층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기후변화의 위험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태풍 피해 소식을 잘 살펴보면, 누가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는지 잘 알아차릴 수 있다. 기후변화는 모두에게 들이닥치지만, 그 피해는 사회적 불평등에 비례하여 취약계층에게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기후정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지구적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탄소중립과 같은 탄소 줄이기에 동참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도 친환경 에너지 생산이나 전기차 이용 장려 등 나름대로 기후변화에 대한 고민을 담아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비해 너무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탄소중립은 본질적으로 탄소를 발생시키는 인간행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데, 단지 탄소 발생 수치를 조정하는 데에만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제주의 경우, ‘탄소없는 섬 제주’라는 비전을 세우고, 신재생에너지 자급, 친환경 전기차 보급, 에너지 융복합신산업 선도, 최종 에너지 원단위 절감 등을 정책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시행하였다. 대체로 신재생에너지 사용과 에너지 소비를 조정한다는 정책적 목표이다. 하지만 전기차 보급정책의 시행을 살펴보면 기존의 탄소배출량의 많은 자동차를 대체하는 방식이 아닌 전기차를 추가로 지원 보급하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단기간에 차량 수의 급증, 교통체증의 심화와 같은 문제를 발생시켰고, 2030년까지 탄소 50%를 절감하겠다고 한 탄소 저감 목표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탄소 절감을 이루고, 최종적으로 급격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활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불편함에 대한 정책입안자들과 결정권자들의 정치적 두려움 때문인지 실질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의 핵심은 ‘주민 수용성’이라면서 주민들에게만 온통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설득력이 있는 설명과 정책이 보다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실현가능한 정책으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기후변화에 대한 당위성만 설명하고 현실정책은 주민들의 눈치만 보다 마는 꼴이다. 

올해, 프랑스 하원은 열차로 2시간 30분이내의 거리의 항공노선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2030년까지 프랑스가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서 40%까지 줄이려는 기후변화 법안 중 하나이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에서는 제주노선을 제외하고 모든 국내 노선은 폐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현실적일까? 사실 국내 항공노선들은 대부분 지역에서 필수적인 교통수단이 아니며 이미 대체 교통수단이 잘 구성되어 있다. 상상해본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정책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생활 양태의 변화를 적극 설득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제주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누려왔던 물질적 번영만큼 우리는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와있다. 불편하다고 회피하거나 슬금슬금 돌아간다면 바로 지금 긴급하게 요구되는 기후정의에 입각한 기후행동은 그 시기를 놓치게 될 것이다. 

제주는 향후 수십 년 이내로 현재의 제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경작하는 농산물도 달라지고, 먹는 음식도 달라질 것이고, 우리의 문화도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이 변화의 핵심원인은 기후변화이며, 기후변화는 근본적 요소의 변화임으로 사회전체를 한꺼번에 변화시키는 거대한 흐름이 된다. 동시에 우리는 기후 변화가 바로 인간들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인권의 문제이고 사회 정의의 문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연스런 기후의 변화를 넘어서,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인간들의 행동을 줄이는 삶의 양식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바로 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우리 미래세대의 희망을 되살려 놓는 문제이며, 지금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가능케 할 것이다. 변화된 제주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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