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생명평화 정신이 제주의 미래 비전...분권이 아닌 집권, 자치 아닌 통치 안돼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제주도는 온대와 아열대의 점이지대에 있고, 문화도 대륙문화와 해양문화가 섞여 있어 기후나 문화가 본토와는 다소 다르고, 우리나라 유일의 상록의 화산섬일 뿐만 아니라, 제주어와 전통문화도 본토와는 이질적이다. 따라서 제주도는 국민관광지와 휴양지가 되고,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전시상황이 되면 최남단 제주도는 마지막 보루 내지는 최전선이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제주도가 군사기지의 섬으로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전체의 1퍼센트 남짓한 인구를 가진 제주도는 새로운 정책을 실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그 정책들이 실험에 성공하면 전국으로 확산하고 실패하더라도 큰 부담이 없어서 제주도는 늘 국가정책 실험을 위한 ‘~시범도’가 되고, 그를 위한 ‘~특별법’이 많다. 이를테면 영어공용화, 영리병원, 영리학교, 무비자지역, 쇼핑아울렛, 기초자치단체폐지, 전기자동차, 탄소중립 등은 좋은 예이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도민들 사이에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 없이 그 정책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거나 그것들이 도민들 간에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였다. 

중앙정부에서는 1991년 제주도의 개발 절차를 간소화하고, 개발사업자에 대한 행정적 지원을 촉진하며, 도지사의 개발권 강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제주도개발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리고 법을 더욱 심화하여 제주도를 사람, 상품, 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완화 및 국가적 지원의 특례가 실시되는 지역, 이른바 제주국제자유도시를 만들기 위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2002년에 제정했다. 하지만 그 법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중앙정부는 2006년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하고, 교육의료 및 노동시장을 개방할 수 있도록 도지사의 권한을 강화하고 행정규제를 더욱 완화하여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자치도법)’을 제정하였다. 그 사이에 제주도는 양적 팽창이 이뤄져서 인구는 70만명에 이르고 있고, 코로나19 여파가 있기 전인 2019년에는 관광객이 1500만명을 넘어섰다.

인간이 농사짓고 고기 잡고 물을 공급받기 위해, 주택과 도로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 채광, 쓰레기 처리, 산소 생산, 이산화탄소 합성 등을 위해 일정 정도의 토지가 필요하다. 제주도의 생활공간도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제주도는 여러 보전지역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특히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역과 세계지질공원 공원 등을 제외하면 개발할 수 있는 면적이 더욱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민들이 인간답게 살고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쾌적한 관광을 즐길 수 있으려면 제주도가 감당할 수 있는 환경 수용력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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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자유도시를 선포한 지 19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15년이다. 그로 인해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나,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도민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지 밀도있는 논의들이 지속돼야 한다. 그래픽 이미지=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선포한 지 19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15년이다. 그로 인해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잃은 게 적지 않다. 개발과정에서 제주도의 자연생태계는 파괴되고 훼손되었고, 부동산이 폭등하고, 폐기물과 오폐수가 넘쳐나면서 도민의 삶의 질은 바닥을 치고 있다. 현재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이 심의되고, 제주특별자치도법 전면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이 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주특별자치도가 도민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지 밀도있는 논의들이 지속되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법을 제정했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종전의 제주도의 지역적, 역사적, 인문적 특성을 살리고 자율과 책임,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설치하여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보장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규제의 폭넓은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의 적용 등을 통하여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함으로써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목상의 목적이요 법조문에 드러나지 않은 보다 상위의 실질적인 목적은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과 제주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다. 그러나 15년이 흐른 지금 제주도의 권력이 제왕적 도지사로 집중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도민들의 삶의 질은 더 악화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법에서 제주도는 사람, 상품, 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의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이다. 다시 말해서 제주도가 외국자본들이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중국자본을 비롯한 외국자본이 들어와 제주도의 토지와 건물을 마음대로 매입하고, 제주도의 경관과 자연생태계를 아랑곳하지 않고 개발하려 들고,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중앙정부의 여러 권한들을 위임받아서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주특별자치도법 덕분이다.

제주특별자치도법으로 제주도가 중앙으로부터 권한의 분권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함으로써 제주도 내부에서의 분권은 상실되고,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제왕적 통치자(道統領)이 되어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폐단을 막으려면 따라서 제주특별자치도법의 애초 취지대로 풀뿌리 자치역량을 키우고, 제주도민 스스로 제주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와 행정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제주국제자유도시 프로젝트의 목적과 결과를 현재의 시점에서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대세를 이루던 2000년 6월 미국의 ‘존스 랭 라살사’가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용역보고서를 제출하자, 건설교통부가 제주도를 정부차원에서 2001년 11월 제주국제자유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02년 4월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시행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의 폐단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생태환경 파괴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생태환경의 가치,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가치, 문화적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의 자연은 자타가 공인할 만큼 빼어나다. 2002년 국제자유도시를 선포한 이후 제주섬은 생태적, 경관적, 지질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등에 등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곳이 람사르습지 선정되면서 다중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제주도의 탁월한 자연은 그 자체가 인류의 유산이어서 제주도, 정부, 유네스코는 이를 철저하게 보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하면서 제주도의 자연과 문화는 급격히 파괴되기 시작하였다. 생명의 숲인 곶자왈에 골프장, 관광단지, 영어교육도시 등이 건설되었고, 5종보호구역인 서귀포해안을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강정마을에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었다. 제주도의 지역경제의 장기침체, 거대자본의 대규모 개발, 군사주의로 인해 자연과 생태계는 원형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파괴되고 있다. 

제주도의 경관, 지하수, 바람은 제주도민의 공유자산으로 특정 개인이나 업체의 소유물일 수 없으며, 그로부터 얻어지는 수익의 일부는 제주도민들의 복리를 증진하는 데 쓰여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의 대규모 개발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바보짓은 멈춰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중앙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는 무제한의 개발, 무제한의 관광객, 무제한의 인구를 수용할 태세로 항만, 공항, 도로를 확장하고 있다. 끊임없는 도로 확장과 개설, 제2공항과 제주신항 건설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제 제주도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와 관광객의 수를 감안한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별도로 제주특별법 전부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제주도의 강점인 탁월한 자연환경에 부합되는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만일 지금까지 추진해온 국제자유도시가 외자유치를 통해 빌딩 많은 두바이, 홍가포르(홍콩+싱가포르)같은 도시를 꿈꾸면서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도민들의 삶의 질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면 하루빨리 다른 대안을 찾는 편이 낫다. 그런데도 최근 제시된 제3차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도 예전과 변함없는 개발사업 위주의 계획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겉만 화려한 제주국제자유도시계획보다는 제주도의 강점인 자연과 생태계를 살리고 도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수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법은 제주도민에 의한, 제주인을 위한 특별법이라기보다는 국적 불문하고 대규모 개발업자들이 특혜를 받으며 제주도를 맘껏 유린하고, 그럼으로써 도민을 소외시키고 타자화하는 특별법이다. 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가 실리 없는 분권이고, 제주도 자체에서 분권이 아닌 집권(集權)이 이뤄지고 있으며, 특별자치가 아닌 특별통치(統治)가 이뤄지고 있다면, 도민의 자기의사 결정권을 확보하고, 제주도민들 스스로 역량을 키워나가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법 전부개정안과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에는 제주도의 환경수용력, 즉 도민 및 관광객들에게 고품질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개발사업과 환경보전의 갈등구조를 해결하고, 인간의 과도한 경제활동으로 환경이 더 이상 오염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적정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기준이 되는 제주도의 수용능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추진하는 여러 정책들이 성공을 거두려면 서로 상충되지 말아야 하고, 제주도의 역사, 환경, 문화 등과 잘 부합되어야 하며, 오늘날 국내외 추세와도 잘 어울려야 한다. 세계환경수도를 이야기하면서 제주자연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하고, 세계평화의 섬을 이야기하면서 군사기지의 섬을 만들고, 탄소제로의 섬을 이야기하면서 제주도를 아스팔트로 뒤덮으며 자동차 천국의 섬을 만드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고 조화롭지 못하고 진정성도 부족해 보인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제주도는 빼어난 자연환경, 제주4.3을 비롯한 뼈아픈 역사, 수눌음이라는 공생과 상생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제주도의 미래 비전은 그러한 천혜의 자연환경, 고난의 역사, 생태적 삶에 바탕을 둔 전통문화 등과 부합되어야 하며, 특히 다양한 체험을 산업화하는 시대적 조류와도 어울려야 한다. 제주도가 다른 지역보다 환경과 생태계가 상대적으로 빼어난 게 사실이지만, 제주도가 진정한 세계환경수도로 되려면 환경과 생태계가 월등히 잘 보전되어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도시화 경향이 뚜렷하고 야생이 점점 사라지는 현대적 추세에 비춰볼 때, 잘 보전된 자연과 생태계는 귀한 보물이다. 제주도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은 인위적 시설로 채워져야 할 개발예정지가 아니라 그 자체가 영구 보전해야 할 인류의 자산이다. 따라서 거대자본에 의한 대규모 개발을 지향하는 국제자유도시 대신 인간끼리 상생하고,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생태환경과 생명평화 정신이 제주의 미래 비전으로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 /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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