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서른여섯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DNA 유전자AGCT가 30 18 19 32. 천연두(天然痘Variola)는 33 16 16 33로 이것이 진화된 돌연변이 변종(變種)이 코로나의 원형이다. 천연두는 ‘두창’ 혹은 ‘마마’라고도 불렸다. 천연두는 천연두 바이러스(variola major)에 의해 감염된다. 천연두는 한번 앓기 시작하면 사망에 이르는 높은 치사율을 지닌 전염병이다. 급성 발열과 발진 등의 고통을 견디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얼굴에 남겨 사람들을 괴롭게 했다.

천연두는 최초의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꼽힌다. 무려 기원전 1만 년 경부터 존재했다. 학계에서는 이집트 람세스 5세 미라에서 발견된 농포성 발진을 천연두의 가장 오래된 흔적이라고 보고 있다. 천연두가 가장 심하게 유행했던 시기는 18세기 유럽에서였다. 이 시기 감염자의 20~60%가 사망했다. 아이들이 감염되면 사망률이 80%로 치솟았다. 파리 지하철 밑에 지하무덤에 가보면 사람의 뼈가 장작개비 모양으로 쌓여있다. 그러다 20세기 이르러서는 사망자들이 급감하기 시작한다. 백신 접종을 통해 천연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1980년, 천연두는 인류가 완벽하게 정복한 바이러스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된다. 바로 에드워드 제너의 백신 덕분이었다. 에드워드 제너는 ‘백신’을 최초로 고안해 낸 의학자다. 백신(vaccine)은 제너가 우두법을 성공시킨 암소(cow)를 뜻한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한 말로  전염병에 대해 인공적으로 면역을 얻기 위해 쓰는 항원을 말한다.천연두는 요즘 코로나만큼 무서웠다.

작년, 외국에 연구차 나갔다 코로나에 걸려 부득이 전세비행기를 혼자타고 와 서울대병원에 한달 간 입원, 목숨을 구한 교수가 그 후도 가끔 기침을 한다. 후유증이 무섭다. 요즘은 AZ나 화이자, 얀센 백신주사로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인도발 델타 변이 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6월25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영국 보건당국은 1주일동안 3만5204건의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사례가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1주일 동안 46% 증가한 것이다.

델타 변이는 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 기존 바이러스 대비 전파력이 더 센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영국에선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총 117명이 사망했다. 변종바이러스 최초 발현국에 따라 작명된 이름은 영국은 알파, 남아공은 베타, 브라질은 감마다.

한편 국내에서도 델타 변이 확산여부에 방역당국이 촉각을 집중하고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전날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델타 변이가 190건이 확인됐고, 지역감염 사례가 3건 보고돼 유입의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1차 백신 접종 후 델타 변이의 예방 효과는 30%에 그친다. 하지만 2차까지 완료하면 예방효과가 60~88%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델타 바이러스와 백곡 김득신. 백곡 김득신은 당시 유행했던 천연두를 심하게 앓아 아둔해져 둔재로 평가됐으나, 독서에 대한 열정으로 59세의 나이로 문화증광시에 합격했다. 김득신 동상 사진(오른쪽)=충청북도.

조선 중기 무서운 천연두 앓은 김득신, 59살에야 행정고시 합격

백곡 김득신[金得臣, 1604년 12월 8일 ~ 1684년 10월 8일은 조선 중기의 문인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1554~1592)장군의 손자]은 천연두로 아둔해진 탓으로 책을 1억번 이상 읽었다. “<사기> ‘백이전’은 1억1만1000번, ‘능허대기’는 2만500번, ‘노자전’, ‘분왕’, ‘벽력금’ 등은 2만번, ‘제책’, ‘귀신장’…등은 1만8000번 등 모두 37편….”(<백곡집>) 머리 좋은 세종과 달리 조선 최고의 독서왕 김득신은 손꼽히는 둔재. 어릴 적 천연두를 심히 앓아 머리가 아둔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이기환 글을 인용한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 김득신은 1661년(현종 2년) 환갑을 바라보는 59살의 나이에 당당히 문화증광시에 합격했다. 지금으로 치면 59살에 행정고시에 급제했다는 얘기다. 대기만성의 끝판왕의 모습이다. 김득신은 그제서야 자신이 1억1만1000번(실제로는 11만1000번) 읽었다는 <사기> ‘백이열전’의 글귀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득신=둔재’ 일화가 정사인 <숙종실록>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움직일 수 없는 ‘팩트’였음을 알 수 있다. <숙종실록> 1684년(숙종 10년) 10월9일 자에는 “김득신은 젊어서부터 늙어서까지 부지런히 글을 읽었지만 사람됨이 오활(세상물정에 어두운)해서 쓰임받지 못했다”는 인물평이 나온다.

비록 세인들의 평가에 비아냥이 섞이긴 했어도 책읽기와 시짓기를 향한 김득신의 열정과 집념에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예컨대 김득신은 글을 수만 번, 십수만 번을 읽으면서 글의 맥락이 담긴 부분에는 밀줄 쫙, 둥근 점을 잇대어 놓았고, 핵심의미가 있는 곳에는 흘려쓴 글씨로 각주를 달았다고 한다. 시를 지을 때는 턱수염을 배배 꼬고, 괴롭게 읊조리는 버릇이 있었다. 한번은 아내가 점심상을 차리면서 상추쌈을 얹어놓고는 양념장은 올리지 않았는데, 김득신은 그냥 싱거운 상추쌈을 먹었다. 아내가 “싱겁지 않냐”고 묻자 “응. 잊어버렸어!”라 ‘쿨’하게 대꾸했다(하겸진(1870~1946)의 <동시화>).

충북 증평 율리에 있는 김득신 묘소. 묘비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마라. 재주가 부족하거든 한가지에 정성을 쏟으라. 이것저것해서 이름이 얻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김득신의 말이 새겨져 있다. “책 1만 권을 읽으면 붓 끝에 신기가 어린 듯(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하며, “글을 1000번 읽으면 의미가 저절로 나타난다(讀書千遍 其義自見)”(<두소릉시집>)는 당나라 시인 두보(712~770)의 언급 그대로였다.

당시 효종(재위 1649~59)은 김득신의 시를 “당나라 시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라고 칭찬했다. 김득신을 ‘멍청한 둔재’라 평한 안정복도 “밤낮으로 책을 읽은 김득신은 문장으로 이름을 드날렸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박세당(1629~1703) 역시 김득신의 치열한 삶을 상찬한다.

내 친구 이름이 두석, 우리는 돌대가리(石頭)라고 놀려댔다. 공부를 잘해서 대학 교수를 지냈다. 아홉 번 고시 떨어지고도 검찰총장한 사람은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바이러스는 ‘지구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요즘 세상에.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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