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05) 고광민, ‘제주도 도구의 생활사’, 한그루 출판사, 2019

출처=예스24.
제주도 도구의 생활사. 저자 고광민 / 출처=예스24.

도구의 생활사

책의 제목은 ‘제주도 도구의 생활사’이다. 서민 생활사 연구자로 ‘제주 생활사’,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돌의 민속지’, ‘제주도 포구 연구’, ‘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 ‘마라도의 역사와 민속’ 등 제주도의 민속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서를 출간한 바 있는 고광민 선생의 저서이다. 책의 제목이 흥미롭다. 도구의 생활사라! 도구는 물질인데, 어찌 살아 숨 쉬는 생활이 있을 것이며, 그러한 생활이 어떻게 역사가 되는 것일까? 책의 목차를 보면, 의식주 도구의 생활사, 생산 도구의 생활사, 운반 도구의 생활사, 도구 생산의 생활사, 감산리 도구의 생활사 등 5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의식주, 생산, 운반 등과 관련한 도구에 관한 내용, 도구를 제작하는 방법, 그리고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에 있는 「민속자료실」을 중심으로 마을의 도구에 대한 집중적인 탐색이 주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책 제목을 제주도 생활도구 연구, 제주도 생활도구의 세계, 도구로 본 제주의 생활사, 제주도 도구지道具志 등으로 쓰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굳이 그러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적응의 산물

도구는 “일할 때 쓰는 연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본서는 “백성들이 삶에 필요한 자원을 자연에서 마련하여 살아가던” ‘원초경제사회’ 때 사용하던 도구에 한정하여 다루고 있다. “원초경제사회 때의 도구는 공동으로 만든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같은 도구라도 지역마다 이름이 다르고, 쓰임새도 다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제주에서 호미는 ‘ᄀᆞᆯ갱이’라고 부르는데, 강원도 홍천에서는 ‘양귀호미’라고 부른다. 전자는 주로 밭에서 김을 매거나 모종을 솎아내며, 갯밭에서 고동 따위를 잡는 도구인데, 후자는 잡초를 제거하거나 두둑에서 흘러내린 흙밥을 북돋는 도구이자 파종할 때 구멍을 내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5-7쪽) 어디 호미만 그러하겠는가? 조선시대에 양반이든 아니든 모자를 썼는데, 제주도는 주로 정동벌립이나 털벌립, 대패랭이를 썼다. 패랭이야 전국 각지에서 통용되는 말이고 벌립은 벙거지의 제주말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말의 털로 만든 털벌립이나 댕댕이 덩굴(정동)로 엮어 만든 정동벌립은 제주 특유의 것이다. 사람들이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이루어낸 것이란 뜻이다.

“제주도 화산암은 구멍이 숭숭 나 있다. 화산흙은 푸석푸석하다. 제주도에는 1년에 1,549mm의 비가 내리지만, 비는 땅속으로 스며버리거나 건천을 타고 바다로 흘러나간다. 제주도 경지면적 중 논은 고작 0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밭농사를 지어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한반도와 그 주변 사람들은 논에서 난 볏짚으로 겨울나리용 소죽 지붕을 이는 재료, 그리고 여러 가지 생활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밭에서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소 먹이 꼴을 마련하는 밭을 ‘촐왓’(牧草田), 지붕 재료인 띠를 마련하는 밭을 ‘새왓’(茅田)이라고 한다.”(77쪽) 

이렇듯 사람은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들 특유의 것들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 한다. 그 안에는 정치, 경제, 사상, 예술, 언어와 문자, 이념, 법률 등은 물론이고, 의식주와 관련된 각종 도구와 물질, 민간의 습속과 신앙 등이 모두 포함된다. 제주말과 마찬가지로 제주의 도구 역시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한 결과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도구는 그 시대의 생활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8쪽)일 뿐만 아니라 “주어진 풍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이다.” 공동체 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현한다. 

도구지道具志

사서史書에 실린 내용이 경전처럼 진리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지난 시절의 실체는 사라지고 전적만 남았으니 달리 무엇으로 증험의 단서를 삼을 수 있겠는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집권층 또는 식자들의 전유물이던 시절인지라 더욱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고대 사서는 주로 임금과 그 주변의 집권층(제후, 귀족, 관리), 일부 영웅과 각 영역의 영수領袖 등 사회 상층부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편찬되었다. 이에 반해 큰 무리(大衆)나 장삼이사張三李四, 갑남을녀甲男乙女라 불리는 이들은 구전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를 전승했다. 전자가 과거를 반추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지녔기 때문이라면, 후자는 그저 삶에 체화된 언어체계에 의존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고대의 역사 관념에는 ‘생활사’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사서’에 드리워진 거대하고 중후한 장막을 거둬내고, 모든 글이, 모든 사람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싹트기 시작한 이후이다. 과거 엘리트 위주로 거시적 안목을 중시하는 역사관이 한 걸음 물러나고 20세기 후반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과 행태에 주목하는 이른바 미시사微視史가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기존의 역사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던 과거의 일, 사람, 사건, 사물 등이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이때 비로소 ‘생활사’가 단순히 생물의 발생부터 사망까지의 순환을 기록하는 ‘life cycle’의 범주를 벗어나 ‘life history’, ‘everyday history’로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구의 경우와 달리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志’(표기와 기록의 뜻)라는 독특한 사서의 서사敍事 체례體例가 있었다. 처음 등장한 것은 반고의 ‘한서’(본기, 열전, 지, 표)이나 그 시작은 기전체 사서의 본류인 사마천의 ‘사기’이다. 아시다시피 ‘사기’는 본기本記, 세가世家, 열전列傳, 서書, 표表(연표) 등 130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서’는 기존의 정치 중심의 편년체 사서 체례에서 벗어나 여러 방면의 전문적인 문제에 대해 분류, 기록, 논술하는 체제를 뜻한다. 이것이 나중에 ‘지’로 명칭을 바꾸어 여러 기전체 사서에 등장했던 것이다. 예컨대, ‘삼국사기’는 ‘한서’의 체례를 그대로 따라 본기, 열전, 지, 표로 구분했고, ‘고려사’ 역시 기전체의 방식에 따라 세가, 열전, 표, 목록 외에 ‘지’ 39권을 편찬했다. 

전통적인 사서에서 ‘지’는 천문, 지리, 예약, 역, 오행, 식화(경제제도), 전제(토지제도), 백관(관리제도) 등 전문적인 내용을 기술했는데, 근본적 목적은 통치에 도움을 주고, 교화에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나중에 전국을 두루 포함하는 ‘대청일통지大清一統志’나 하나의 성省이나 현, 시의 역사를 담은 ‘통지通志’, ‘현지’, ‘시지市志’ 등 지방지地方志로 발전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장물지長物志’(김의정 역주, 학고방출판사, 2017)라는 책이다. 명대 사대부인 문진형文震亨이 1621년(천계 원년)에 완성한 책으로 건축, 서화, 가구, 문방사우, 골동품, 원예, 조경, 동식물, 음식, 복식, 교통수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장물’이란 몸 밖의 물건으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춥다고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그냥 그런 물건이다. 말인 즉 명대 사대부들이 즐기고 아꼈던 물건을 말한다. ‘도구’가 일상생활, 특히 노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물건이라면, ‘장물’은 한적한 생활에서 귀하게 여기는 애완물의 일종이다. 비록 ‘도구의 생활사’와 내용과 의도는 다르지만 명말의 물질문화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책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가 지방지와 또 다른 물질의 생활사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

아라동에서 나오는 질 좋은 대나무는 ‘맨촌’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도련 2동에서 가공되어 ‘맨촌구덕’, ‘맨촌차롱’이라는 명품으로 되살아났다고 한다.(255~291쪽) 아라동에서 30여 년을 살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많던 딸기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만 했지 대나무가 그리 좋았는지는 정말 몰랐다. 그런 까닭인가? 고광민 선생을 만나면, 왠지 주눅이 든다. 내 삶의 반경 안에 있는,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어쩌면 애정 결핍을 들킬까 조마조마하기 때문인가? 

구덕이든 차롱이든 그것을 만드는 이는 사람이다. 사람이 그것을 만드는 이유는 삶에 필요하기 때문이고, 자연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덕이나 차롱 속에는 누군가의 삶이 어른거리고, 땅이며 하늘이며 그 사이에 사는 온갖 동식물의 냄새가 배어 있다. 도구에 당시 사람들의 생활사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또한 사람이 만든 도구는 생산-활용-소멸을 하나의 주기로 끊임없이 순환한다. 도구 나름의 생활사가 있다는 뜻이다. 비록 요즘 무슨 상점이나 숍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하는 차롱은 이미 실생활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 상실 또한 그의 생활사인 셈이다. 이렇듯 ‘도구의 생활사’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제주도 생활도구 연구’라든가 ‘제주도 생활도구의 세계’, ‘도구로 본 제주의 생활사’라고 써서는 아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요즘 경향 각지의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유형의 네모나고 마치 닭장처럼 생긴 곳에서 거주하며, 철갑에 엔진 달고 부르릉거리는 차車(수레)를 타고, 한인韓人이 당연하다는 듯이 양복洋服을 입으며, 거대한 물건창고에서 수레에 먹고 마실 것이며, 입고 쓸 것, 심지어 놀 것까지 다 주어 담아, 넘치면 넘치는 대로 썩으면 썩는 대로 버릴 것은 버리고 처박아놓을 것은 또한 그리하면서 살고 있다. 도구는 더 이상 우리의 삶과 무관하게 생산되고, 무심하게 활용되며, 어느 날 그냥 사라진다. 먹고 마시고 놀고 듣고 쉬는 생활이 엇비슷하니 생각 또한 비슷하고, 생각이 비슷하니 고만고만한 것을 두고 아웅다웅하며, 오늘과 내일만 있지 어제가 있는 줄 모른다. 이렇게 사는 것이 대단한 문명화인 줄 알고 있으니 그 외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필자가 ‘제주도 도구의 생활사’ 일독을 권하는 이유는 옛날에 제주도 사람들이 “영 살암쩌.”라고 말하며 ‘라떼는’ 타령을 부르기 위함이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제대로의 삶인가? 한 때 제주도에서 살았던 이들에게 부끄러운 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라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싶기 때문이다.

#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사)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다. 역서는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문화답사기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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