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25) 제주시 삼도2동 헌책방 동림당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한 시대를 주름잡던 헌책방, 헌책방은 말 그대로 헌책을 사거나 파는 가게이다. 하지만 이제 새 책이 넘치는 시대, 헌책방이 사라져가는 이유다. 책방지기의 색깔이 곧 책방의 색깔이라고 했던가. 책 읽는 이가 드물어가는 요즘, 책이 너무 좋아서, 책을 모으다가 책에 파묻힐 것 같아서, 결국은 제주에 와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 송재웅 씨를 만나보았다. 헌책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털털하고도 편안했다.

삼도2동에 있는 헌책방 동림당 지하서점은 입구에도 책이 가득 쌓여 있다 ⓒ제주의소리
삼도2동에 있는 헌책방 동림당 지하서점은 입구에도 책이 가득 쌓여 있다 ⓒ제주의소리

“미치도록 헌책이 좋아”
서울이 고향인 송재웅 씨는 석사 과정은 한일관계사를, 박사과정은 한중관계사를 공부했다. 수료 후 강의, 번역, 글쓰기 등을 하면서 제주로 오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연기되다가 2011년 4월, 자그마치 5t 트럭 4대 반의 책을 싸 들고 제주로 왔다. 

처음엔 노형동에서 약 132.2m²로 시작했다. 그러나 이도 곧 좁아지고, 66.1m²를 더 늘렸으나 소용없었다. 노형동은 책을 쌓아두는 창고로 하고, 이곳 삼도2동에 지하서점 99.2m², 2층에 전시장 99.2m²를 임대하게 되었다. 엄청난 분량의 책 앞에서 발조차 내딛기 조심스러웠다.

송재웅 씨가 헌책을 모으게 된 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건 중국에 있을 때였다. 그때 중국은 상대적으로 물가도 쌌고 환율도 괜찮았다. 주말이면 북경의 헌책방 가를 뒤지고 다녔고, 답사 가든 여행 가든 그 동네 책방을 뒤지는 게 가장 큰 취미였다. 국내에 와서도 책 모으기는 이어졌고, 쌓이는 건 책밖에 없었다. 집이 터질 지경이었다. 

반상회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책은 상자에 담긴 채 방 가운데고 어디고 마구 쌓여 있었다. 그렇게 많은 책이 쌓여 있다는 걸 모르고 살던 이웃은 집이 무너질까 무섭다고 했다. 실제로 집이 무너진 건 아니지만 위험하긴 했다. 아내는 “차라리 어디 공간을 따로 만들어서 책도 보고, 책 좋아하는 사람끼리 수다도 떨고, 책 읽기도 같이 하고, 책도 팔고 하면서 놀이터를 만들자.”라고 하였다. 그렇게 헌책방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책 때문에 쫓겨난 셈이다.

책방은 이왕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곳, 아이들도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곳에서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강의하는 마음만 비우면 충분했다. 대중적인 책과 달리 중국 책이든 전문적인 책이든 역사 관련 책이든 자료로 쓰는 책이든 유물로 쓰는 책이든 이 책들은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다. 송재웅 씨가 소장한 책 역시 대부분 이런 책들이다. 책이 필요한 사람은 필요한 책을 찾아 어디든지 달려간다. 설령 물류비가 든다 해도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제주도로 오게 된 가장 큰 계기다.

지하엔 서점, 2층엔 송재웅 씨가 지금까지 모아온 골동품과 그림, 고서적 외에도 여러 가지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서울에서 집 무너질까 이웃이 무서워했다는 건 괜한 말이 아니었다. 지하서점엔 땅이 꺼질 정도로 많은 책이 쌓여 있다. 더 충격적인 건 노형동 창고엔 이곳보다 4~5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창간호 잡지, 저자 서명본 도서, 절판 희귀도서, 고서 등 약 15~20만 권 정도 될 거라는데 사실 셀 수도 없다. 특수 도서는 인기와 희소성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책 한 권을 찾으려 해도 힘들 것 같은 책방, 누군가에겐 귀물이 이곳에 숨어 있다. 

헌책방 동림당에는 뜯지 않은 채 상자에 놓여 있는 책이 더 많다. ⓒ제주의소리
헌책방 동림당에는 뜯지 않은 채 상자에 놓여 있는 책이 더 많다. ⓒ제주의소리

“이제는 슬림화해야 할 때”
한때는 헌책방이 많았다. 그만큼 많이 이용했다는 뜻이다. 헌책방에 가면 어떤 책이든 구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65년생 송재웅 씨,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전공 서적을 제외하면 읽었던 책들이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서가에 잔뜩 꽂힌 책에선 익숙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더 정겨웠다. 그러나 산만할 정도로 많은 책, 매출이 많은 업종도 아니다. 노형동과 달리 이곳은 온전한 임대, 이제 장르를 줄이고 고서적만 판매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누가 봐도 불안할 정도로 쌓여 있는 책, 책이 좋아서 모으다 보니 이 난리가 되어버렸다. 그렇다. 분명히 난리였다. 감당도 못 하면서 욕심만 부리는 건 아닐까? 극적인 전환이 없는 한 방법이 없다.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올해 안에는 결정 내려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책만 팔면 공간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 책꽂이 하나에 있는 책을 다 합해도 부가가치가 높은 책 한 권의 가격이 안 된다. 문제는 주머니 가볍게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손님들이 왔을 때다. 책이 좋아서 책을 모았는데, 이들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다. 대중적인 책도 판매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은 치솟고 임대료도 비싸졌다. 생각대로 되는 게 없다. 지금 책방지기는 몹시 힘들다. 

송재웅 씨가 소장한 책 중에는 대장경만 해도 신수대장경, 고려대장경, 남전대장경 등 7종류다. 한글대장경의 경우는 370권이 넘는 세트로 책꽂이 하나 반을 차지하는 분량이다. 이는 낱권으로 팔 수도 없다. 필요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볼 일도 없거니와 책꽂이에 모두 전시할 필요도 없다. 박스에 담긴 채 공간을 차지하는 이유다. 이런 책들은 비가 안 드는 넓은 공간만 있으면 된다. 그러다가 찾는 이가 있을 때 출장 가서 발송해주면 된다. 굳이 제주도가 아니어도 된다. 그런데 지금은 네 곳의 공간이 있으면서도 실제 활용도는 없다. 

뭔가 전공한다고 하면 누구나 관련 서적을 갖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다르다. 그런데 책방지기는 경상비를 무시한 채 귀하고 좋은 책이라 여기며 끌어안고 있다. 손익계산을 해 보면 엄청난 손해다. 욕심으로, 지역사회에 뭔가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이제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구석이다. 슬림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헌책방 동림당 지하 1층 서점에는 대도시 대형서점을 능가하는 책들이 있다. ⓒ제주의소리
헌책방 동림당 지하 1층 서점에는 대도시 대형서점을 능가하는 책들이 있다. ⓒ제주의소리

송재웅 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헌책 수집가다. 그가 이곳에 쪼물딱쪼물딱 가게를 만들어 놓은 이유도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조금은 드문 것들을 보여주고자 해서다. 박물관이나 전시장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작년엔 코로나19로 매출도 1/3이나 줄었다. 물론 그전에도 문 열고 유지하면 다행이었다. 연세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돈은 안 되는데 그는 계속 헌책을 수집하며 일을 벌여 놓는다. 죽을 둥 살 둥 일해도 쪼들리는 이유다. 골이 깊어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이곳 2층 전시관에서 특화된 뭔가를 하려면 나머지 세 개 공간 중 최소한 하나 이상은 줄여야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책방지기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책방지기는 책을 파는 것보다 사는 걸, 제가 찾던 책을 만나는 게 즐겁다. 당연히 팔리는 양에 비해 사는 게 더 많다. 70~80년대엔 헌책방도 열 권을 사들이면 대여섯 권을 팔았던 호황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헌책 스무 권을 들여서 한 권 팔기가 땀 난다.

들여오는 책은 많고, 경상비를 줄이려면 빨리 솎아서 버려야 된다. 그런데 내치는 순간 폐지가 된다고 생각하니 선뜻 버리지 못한다. 이곳에 비하면 피라미 한 마리 정도의 책을 소유한 나도 그렇다. 수업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같은 책이 두세 권 쌓인다. 똑같은 책인데도 버리지 못한다. 집은 좁고, 산만할 수밖에 없다. 종종 아이들한테 주기도 하지만, 받는 아이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과연 그 책을 가치 있게 읽어줄 것인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주면서도 유쾌하지 않다. 송재웅 씨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도 그렇다. 전화 받고 책을 인수하러 갔었다. 그쪽에서는 싸게 줄 테니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버리겠단다. 송재웅 씨에게 꼭 필요한 책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버리겠다는 말이 아팠다. 폐지하라고 퉁으로 주는 것도 아니고, 골라서 사 가라고 했으므로 돈을 줘야 한다. 가져와도 돈을 준 만큼 벌지 못하지만 안타까워서 끌고 온다. 책방에 또 책이 쌓였다. 

헌책방 동림당에는 대도시 대형서점을 능가하는 책들이 있다. ⓒ제주의소리
헌책방 동림당에는 대도시 대형서점을 능가하는 책들이 있다. ⓒ제주의소리

“공간이 필요해”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해서 부가가치가 있는 책만 취급하면 간단하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문제는 공간이다. 

살펴보면 도내에도 활용이 잘 안 되는 공간이 많다. 예를 들면 월드컵 경기장의 운동장 사각지대다. 이곳은 경기나 행사가 있을 때 말고 평상시엔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차장 시설도 좋다. 이런 곳에서 책방이나 문화시설 등 문화공간으로 항상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다면 송재웅 씨 경우는 더할 바람이 없다. 그런데 이미 그 공간을 임대하여 박물관도 만들고 이런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들어가 놓고도 인건비를 못 댄다. 수입이 없다 보니 연세도 내지 못한다. 또 체육 시설인 경우는 체육과 관련된 업종이 우선이다. 책방 같은 업종은 들어갈 수 없다. 

공으로 하겠다는 게 아니다. 지금 네 개 공간 중 세 군데를 합쳐서 쓸 수 있는 공간만 마련된다면, 임대료는 똑같이 내면 된다. 그리만 된다면, 오히려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그렇게 10~20년 장기로 임대할 수 있다면 공간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해진 규정은 체육 관련 기관이 우선이다. 

시골의 감귤 창고나 선과장 같은 곳은 식당이니 카페니,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들어섰다. 책방지기처럼 비실비실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낸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네 군데나 있지만 실용적이지 못한 공간, 소장한 책의 3/4이든지 절반이든지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책들은 경상비용이 적은 곳에 보관하고, 이곳은 순환이 되는 것으로 꾸려나가야 한다. 

헌책방 동림당 2층 전시장에는 송재웅 씨가 지금까지 모은 골동품 등 다양한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의소리
헌책방 동림당 2층 전시장에는 송재웅 씨가 지금까지 모은 골동품 등 다양한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주의소리

“골동품”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그림과 골동품, 그리고 고서적들, 이건 또 어떻게 모아놨을까? 이 역시 송재웅 씨가 좋아해서 취미로 모은 거다. 한나라 때 유물부터 요나라, 고려, 원나라 때 유물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시대를 뛰어넘고 눈에 띄는 건 중국 송~원 시대의 자주요(磁州窯)에서 만든 “사자형 촛대” 한 쌍이었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이 소장하고 있던 전두환 컬렉션 중 하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세금 안 내고 버티던 때다. 당시 국내 최고의 경매회사에서 전두환 가족이 소유한 그림, 도자기 등 문화예술품들을 경매했다. 그때 송재웅 씨는 이 사자용 촛대 한 쌍과 그림 한 점, 부채 그림 하나를 낙찰받았다. 그중 부채 그림은 조선 시대 목판본 몇 권과 바꿨다. 

원래 이 촛대는 사자의 등에 초를 꽂을 수 있도록 기둥이 있었다. 그런데 원이 멸망하고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넘어가면서 몇백 년이 지나다 보니 골동이 되었다. 그 후 등에 하얗게 붙은 촛대가 보기 흉하다고 일부러 잘라냈다. 잘라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촛대는 입안에 구슬이 들어 있어서 흔들면 방울 소리가 나는, 그래서 장난감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술잔으로 쓰였다는 유물도 있었다. 술잔을 엎으면 ‘제주도사’와 ‘경로장수’라고 쓰여 있다. 제주도지사를 일제강점기 때는 제주도사라고 했다. 술잔 안에는 학과 거북이 그려져 있는데, 노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 하면서 선물용으로 만들었던 술잔이다. 

고려청자 청병 왼쪽과 오른편에 있는 게 전두환 컬렉션 중 하나인 “사자형 촛대”다. 오른쪽 상 위에 놓여 있는 건 고려시대 수저이며 뒤에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패러디 또는 오마주한 이승오 작가의 헌책과 폐지로 만든 “캠벨 토마토 스프”가 보인다.  ⓒ제주의소리
고려청자 청병 왼쪽과 오른편에 있는 게 전두환 컬렉션 중 하나인 “사자형 촛대”다. 오른쪽 상 위에 놓여 있는 건 고려시대 수저이며 뒤에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패러디 또는 오마주한 이승오 작가의 헌책과 폐지로 만든 “캠벨 토마토 스프”가 보인다.  ⓒ제주의소리

 

일제강점기 제주도지사가 경로잔치 때 선물용으로 만들었던 술잔이다. ⓒ제주의소리
일제강점기 제주도지사가 경로잔치 때 선물용으로 만들었던 옷칠한 술잔이다. ⓒ제주의소리

“문충성 교수의 장서와 유품”
책방엔 문충성 선생의 장서와 유품도 있었다. 송재웅 씨와 문충성 선생님과의 인연은 문충성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문충성 선생님께서 편찮으시면서 책과 물건을 정리하던 며느님께서 연락이 왔다. 

원래 책을 폐기하려면 돈을 받고 처리한다. 이것 자체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중하게 여기던 책을 폐지로 처리되기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헌책방에라도 넘기면 누군가는 그 책을 가치 있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연락을 받고 가서 보니 책들은 예사 느낌이 아니었다. 시집 등 대략 1만5천~2만 권 정도였다. 누군지 모르고 갔는데 알고 봤더니 문충성 선생님이셨다. 송재웅 씨는 선생님의 장서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인수하기로 결정 났을 때, 며느님께서 혹시 자료로 쓰거나 기념이 될 만한 거 있으면 같이 가져가라고 했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육필 원고도 나왔다. 

의미 있는 장서라고 생각한 송재웅 씨는 일반적일 때보다 인수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해 드렸다. 그렇게 가지고 와서 책은 문학관에 납품하고 육필 원고나 나머지 유물은 기증하는 형식으로 하고 싶었다. 육필 원고는 가치로 따지면 책보다 크다. 또 문학관에서 자료실 같은 걸 만들면 연식 있는 책이며 자료 모두 상당한 돈을 줘야 구비할 수 있다, 책도 거의 문학 관련 책이다. 문헌 자료로 권당이든 한꺼번에든 계약하면 육필 원고나 그 외 초등학교 졸업장부터 시계 등 고인의 자료를 기증하면 사업도 되고 의미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심의 평가에서 결렬되었다. 평가자마다 생각이 다르니 어쩔 수 없었다. 유품은 모두 자산이다. 차라리 갖고 있는 게 나을 수 있지만, 이번 행사에서 문충성 선생님의 책들을 일부라도 풀까 고민 중이다. 좋은 책은 누군가 읽어야 더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김원민 선생님께서 문충성 선생님께 선물했다는 해바라기 시화가 나를 보며 웃는 듯했다. 

“책이 헌책방으로 오는 경로”
송재웅 씨 경우는 중국에 오래 있었고, 그때 알던 인연들이 있다. 공부하다 보면 시작과 달리 전공 분야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전공이 바뀔 땐 한 번씩 슬림화한다. 이때 책들을 가져가라고 그냥 주시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팔기도 한다. 그렇게 다양한 방식에 의해서 책방으로 오는 책 중 중국 책도 몇만 권 된다.

지난번에는 일문학 하시는 선생님께서 정년퇴임하셨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선생님이지만 바로 옆 방에 계신 분이 송재웅 씨와 친한 선배였다. 선생님은 책을 정리해서 버려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어떻게 버려야 하나 고민할 것이다. 선배는 후배가 책방을 하는데 줄 거냐고 물었다. 그렇게 송재웅 씨는 서울로 출장 가서 몇십 박스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외에도 영문학, 독문학 관련 등 책은 다양하다. 중국 관련 역사, 철학은 더 많으며 중국 경제와 관련된 책들도 몇십 박스 있다. 하지만 뜯지도 않은 채 창고에 쌓여 있다. 

헌책방의 묘미는 뭐니 뭐니해도 의외의 발견에 있다. 나의 방문 목적은 책방지기와 이야기도 나눌 겸 헌책방 구경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난 그곳에서 1982년에 발행된 濟州道誌를 구매했다. 이처럼 생각지도 않았던 책을 만나면 기분은 절로 상승한다. 

어느 개인 소장가에게서 나온 80~90년대 낡은 카세트 테잎들이다. ⓒ제주의소리
어느 개인 소장가에게서 나온 80~90년대 낡은 카세트 테잎들이다. ⓒ제주의소리

“기준에 따라 다른 책의 가치”
송재웅 씨는 책을 정리하다 보면 재미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책을 읽기만 하는 사람들은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감명 깊게 읽으면 좋은 책이다. 하지만 헌책을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좋은 책임에도 양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덜 인정 받고, 별로인 책인데 귀하면 대우를 받는 책이 있다. 희소성에 따라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조금 다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정리할 때 우리는 깨끗하고, 세트도 맞고, 산 지 얼마 안 되고, 비싸게 산 책이 좋은 책이고 비싸게 팔 거라 여기고 챙겨 놓는다. 또 옛 어른들이 보다가 여기저기 꽃이 피어 있고 구석에 박아놨던 책은 내칠 거라며 옆에 가득 쌓아 놓는다. 의미 없는 책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좋은 책이라 여기는 책도 송재웅 씨가 보기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귀물은 폐지로 버릴 거라고 쌓아 놓은 그 안에 숨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본에서 가져온 책이다. 송재웅 씨는 헌책이라면 일본까지도 출장 간다.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가지만 제주도에서 책방을 하면서 제주도 관련 책이라면 어디든 간다. 명색이 헌책방인데 다른 데서 구할 수 없는 희귀본을 갖추는 건 자존심이다. 그는 국내 헌책 시장에선 보기 힘든 책을 일본에서 찾았다. 1918년 영주서관(瀛洲書舘)에서 발행한 김석익 선생님의 ‘탐라기년(耽羅紀年)’ 원본이다. 

탐라기년은 제주사 연구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제주의 첫 번째 편년체(編年體) 역사서’로, 939년부터 1906년까지의 제주 역사를 모두 4권에 나눠 수록했다. 이 책을 저술한 저자의 의도는 스승인 부해(浮海) 안병택(安秉宅) 선생의 서문에 있는 ‘앞에 우리 연대를 쓰고 중국 연호를 할주(割註)로 나눈 것은 우리나라를 중히 여긴 것’이란 구절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춘향전 프랑스어판도 있다. ‘향기로운 봄'이란 제목으로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출간한 사람은 제주목사를 지내신 홍종우다. 우리나라 첫 번째 프랑스 유학생이던 그는 기메 박물관에서 동양 고서적들을 분류하는 일을 할 때 한국의 로맨스 소설을 소개해 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때 춘향전을 번역해 소개한 1892년판 원본이다. 책을 살짝 들춰보았다. 삽화가 재미있었다. 1892년에 프랑스 작가가 상상해서 그린 춘향의 모습이 유럽 아가씨였기 때문이다. 옥사 역시 유럽풍이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 고전이 외국어로 번역되었던 것 중에 제일 먼저 언급되는 책이다.

이외에도 일본에서 발매됐던 제주도 역사지, 제주도 인민들의 4•3 무장투쟁사 자료집, 홍정표 선생님의 제주도 민요해설도 일본에서 들여왔다.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도굴 사건으로 유명한 Ernest Oppert의 저서도 있다. 
 

사진 앞 보자기에 싸인 건 명주천, 뒤 왼쪽은 제주도 민요해설, 가운데는 김석익의 탐라기년 원본, 오른쪽은 오페르트의 저서, 뒤에 세워진 책은 우리나라 첫 번째 프랑스 유학생이던 홍종우 목사의 춘향전 불역 초판이다. ⓒ제주의소리
사진 앞 보자기에 싸인 건 명주천, 뒤 왼쪽은 제주도 민요해설, 가운데는 김석익의 탐라기년 원본, 오른쪽은 오페르트의 저서, 뒤에 세워진 책은 우리나라 첫 번째 프랑스 유학생이던 홍종우 목사의 춘향전 불역 초판이다. ⓒ제주의소리

“2021 문화도시 책방축제 책섬[썸:]”
7월부터 9월까지는 책방축제가 진행된다. 1부는 7월 4일~17일까지이며 ‘제주 속 우리네 삶의 흔적’ 전에서 동림당 헌책방이 소장 중인 제주도 관련 책과 자료 중 100종을 엄선해서 전시한다. 이어서 18일에는 경매가 진행된다. 2부는 9월 4일~17일까지이며 ‘책 속에 담긴 지은이의 흔적’ 전에서 책방에 소장 중인 저자 친필 서명본 150권을 엄선해서 전시한다. 마찬가지로 18일에는 경매가 진행된다. 어쩌면 창고 대방출이 될지 모른다. 그럴 정도로 사람이 많이 오진 않는다지만 정말 대방출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방엔 이중섭 관련 작품, 이중섭 화백과 친구였다는 최영림 화백의 그림도 있다. 두 화백 모두 제주도에 살았었고, 제작방식이 다를 뿐 최영림 화백의 은지화도 있다. 이 외에도 눈에 띄는 건 이승오 작가의 “캠벨 토마토 스프”였다. 앤디 워홀의 작품을 패러디 또는 오마주한 작품으로 이는 헌책방 동림당과 관련이 많다고 했다. 작품의 재료가 모두 헌책과 폐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송재웅 씨는 남의 자식 같지 않고 무척 정이 가는 놈이라고 했다. 

비단천에다 탱화기법으로 그린 박하용의 모란도다.  ⓒ제주의소리
비단천에다 탱화기법으로 그린 박하용의 모란도다.  ⓒ제주의소리

“헌책방 동림당은”
삶의 향기가 그리우신가요? 삼도2동 헌책방 동림당을 찾아가 보세요. 우리 기억 속에 아련한 화백의 그림, 골동품, 고서적은 물론 제주 속 우리네 삶의 흔적과 책 속에 담긴 지은이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털털하고도 편안한, 헌책이 안겨주는 안락함과 함께 헌책의 색깔이 그대로 묻어나는 책방지기와 헌책에 얽힌 에피소드 등 이야기를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제주시 관덕로2길 24 지하 1층과 2층
영업시간 : 화~토 13:00~19:00 (지하 서점), 일/월 13:00~18:00(2층 전시장)
송재웅의 책 이야기 : http://www.jejuilbo.net/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197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donglimdang/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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