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간 오이 ‘일곱 개의 단추’

구부정한 허리에 걸음마저 불편한 치매 할머니가 벽돌을 든다. 자신 앞에서 게임 속 소총 사격을 흉내 내던 남성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열린 제주 극단 예술공간 오이의 연극 ‘일곱 개의 단추’는 정신이나 육체 모두 온전하지 못한 제주 노인이 왜 폭력을 사용했는지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름도 주민번호도 지문마저 남아있지 않는 ‘무적자(無籍者)’ 노인. 그를 조력하는 국선변호인과 상담사의 노력으로 할머니의 과거를 알게되고, 무대는 일본제국군의 중국 어느 주둔지로 향한다.

이 작품은 국내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삼았다.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모태로 하는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이 제도적으로 ‘군위안소’를 설치해 점령지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해 성노예로 만든 범죄”를 일본군 성노예제(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라고 지칭한다.

11세에서 27세에 이르는 한국 여성들은 취업 사기, 유괴, 납치 등의 방식으로 위안부에 동원됐다. 위안부 운영에 있어 군이 직접 관리하거나 민간에 위임한 경우도 있지만, 어느 경우라도 일본군의 엄격한 통제가 이뤄졌다. 여성들은 무자비한 구타, 고문, 성폭력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문제는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현지에서 버려지거나 폭격으로 사망,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등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까스로 돌아온 생존자들은 침묵을 지켜야 했다. 그러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이듬해 1월 8일부터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7월 14일이면 수요시위는 1500차를 맞는다.

‘일곱 개의 단추’는 일반적인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특수한 사례 하나를 덧붙인다. 바로 제주 위안소다. 2019년 조성윤·고성만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탐라문화 제61호에 논문 ‘태평양 전쟁 말기 요카렌(予科練)의 제주도 주둔과 위안소-성산 지역을 중심으로’를 발표한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봄, 일본군은 미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하는 ‘결호 작전’을 추진한다. 제주 역시 계획에 포함되면서 섬 전체를 요새화하는 ‘결7호 작전’이 추진된다. 결7호의 일환으로 서귀포 성산 지역에 병력이 집중됐는데 해군 비행 예과 연습생을 뜻하는 ‘요카렌’ 생도들도 이곳에 머물렀다. 이 과정에서 위안소가 설치·운용됐다는 내용이다.

16세부터 20세 전후의 청년들이었던 요카렌 출신 병사들은 미군 함정에 돌격·자폭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증언에 따르면 위안소에는 장교와 요카렌 생도만 드나들었고, 그들의 제복에는 ‘일곱 개의 단추’가 달려 있었다. 비록 증언 이외에 증거나 추가 연구까지는 진전되진 않았지만, 제주에서 처음 알려진 사실이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곱 개의 단추’ 작가 겸 연출 전혁준은 조성윤·고성만 교수의 연구 소식을 접하고 집필을 결심했다. 작품도 무적자 할머니가 중국에서 고향 제주 위안소까지 왔다는 설정이다.

ⓒ제주의소리
연극 '일곱 개의 단추' 출연진과 배우들. ⓒ제주의소리

보통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상이나 공연 예술 활동을 떠올려보면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기거나 재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중에서도 유쾌함으로 감동이 배가돼 관객 328만명이라는 흥행을 기록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 고 장자연 사건과 위안부 문제를 함께 다룬 연극 ‘빨간 시’(2011), 2021년을 사는 캐리커쳐 작가가 우연히 1948년으로 이동해 위안부 생존 소녀를 만난다는 연극 ‘뚜껑없는 열차’(2021) 등 다른 접근을 고민한 작품들도 존재한다.

예술공간 오이의 ‘일곱 개의 단추’는 ‘존엄’이란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존엄하다”는 소녀들의 행동강령 외침은 위안부를 피해자로만 바라보게 하는 관객 시선의 틀을 벗겨낸다. 극 말미 성산지역 주둔 일본군 장교가 언급하는 천황·일본군의 ‘존엄함’과는 더욱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앞선 존엄이 '비록 억울하게 당했지만 우리 모두 온전한 인격의 주체'라는 통렬한 외침이라면, 일본군 장교의 그것은 전체주의에 찌든 가식적인 존엄에 불과하다. 

더불어 국가를 위해 개인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일본군(자폭용 요카렌 생도)과 어떤 경우든 살아남는 것을 우선시 하자는 위안부 소녀들은 생명을 대하는 자세로서 대비를 이룬다. ‘죽고 싶지 않다’는 요카렌 생도를 주인공이 위로하는 장면으로서 비인륜적인 전체주의를 고발한다.

작품이 15세 소녀에서 22세 청년까지 위안부 7명, 자칭 칠공주를 어둡고 비참하게만 접근하지 않은 대목은 바로 ‘존엄’이라는 작품 가치와 연결돼 있다. 칠공주는 술기운을 빌려 새로 온 막내와 반갑게 통성명을 하고, 제각각 춤을 추다가 파워풀한 현대적인 군무를 선보인다. 쉬는 날을 보장하라며 “투쟁!”을 외치고, 수면 시간에 서로 안부를 전하는 장난도 친다.

실험적일 수도 있는 이런 표현들은 그들이 위안부 이전에는 꿈 많았던 아름다운 소녀들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한다. 무대 위 위안부 소녀들이 밝고 힘차게 웃을 수록, 관객 마음 한 구석에서는 슬픔이 퍼져나간다. 이것은 마치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연극 '장기자랑'을 연상케 한다.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이 고등학생으로 분해 제주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열심히 연습한다. 발랄하고 유쾌하게 "제주야 기다려라"라고 손을 흔들지만 관객은 차마 웃지 못한다.

'일곱 개의 단추'는 1시간 40분 공연 시간 동안 ‘위안부’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성노예로서 직접적인 묘사도 12세 이상 관람가에 맞게 거의 없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돼 버린다”는 대사 정도로 대체한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고, 몸과 마음이 크게 고통 받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고령의 생존자는 14명 밖에 남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의 반성과 책임, 그리고 남은 이들의 기억이다.

‘일곱 개의 단추’는 기억해야 할 역사를 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보여준 작품이다. 생(生)의 무게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전하는 연극 ‘4통 3반 복층 사건’, 제주4.3과 미래 SF 판타지적 소재를 연결한 ‘프로젝트 이어도’ 등 예술공간 오이는 이미 역사의 공감대 확장을 중요시 해왔다.

이번 공연은 설문대여성문화센터 공연장에서 가졌다. 서귀포에서 조명 기기를 공수할 만큼 여러 면에서 완성도 있는 연극을 구현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환경이었고, (2일 첫 공연 기준으로) 촉박한 일정에 리허설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서 첫 번째 장이나 군무 진행 장면은 삐걱 이는 감이 없지 않았다. 

초연이었던 대한민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에서는 주인공과 대화하는 요카렌 생도들의 대사가 빔 프로젝터 자막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행히 잘 작동했다. 다만, 꿈에도 그리던 고향 제주를 주인공이 해방이 돼서야 “고향이 지척이었구나”라며 알았다는 설정은 여러모로 관객 입장에서 받아들이는데 부담이 크다. 차라리 주인공이 제대로 판단이 어려울 만큼 심신이 지쳤다는 설정을 추가해, 그런 상태를 요카렌 생도가 짧게라도 언급한다면 이해하기 낫지 않을까 싶다. 칠공주 리더 나문순의 일본어 대사도 자막 처리된 일본군 대사든 어떤 방식이든 관객이 보다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배려하면 좋겠다.

남자가 “그냥 하고 싶어서” 1인칭 슈팅 게임(FPS) 게임을 따라했고, 그 모습에 트라우마가 일어나 주인공 할머니가 남자 머리를 내리쳤다는 진행 역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와는 별개로 보다 매끄러웠으면 싶다. 아무리 감정이 복받쳐 오르더라도 관객 앞에서는 본래 역할에 집중하고, 일본어 대사를 암기하는 수고에 더해 어렵겠지만 억양까지 조금 신경 쓴다면 좋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과거 회상 전까지 활력을 불어넣는 고민도 더 필요하지 않나 사족을 더한다.

‘일곱 개의 단추’는 공연 제작비를 온라인 공개 후원 플랫폼(텀블벅)을 통해 마련했다. 목표 금액 700만원은 후원자 113명이 최종 806만원을 모으며 115% 초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예술공간 오이는 후원자를 위해 스티커, 프로그램북 같은 굿즈를 제작·제공했다. 프로그램북은 오이도 이번에 처음 만들어 봤다.

제주 연극계의 열악함은 이미 자료로도 잘 입증된 사실이다. (기사=제주 공연 창작자는 느는데, 연습공간 부족 언제까지 방치) 작품 한 편을 위해서는 보통 공공 지원금을 신청하거나 제작진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마련하기 마련이다. 전자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순수 민간 후원금만으로 제작비를 모으고, 공연 이외 방법으로 화답하는 창작자의 자세는 지역 연극계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저력 있는 제주 극단과 연극인들이 자유롭게 열린 자세로 역사와 사회를 직시하는 창작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진심어린 노력이라면 관객들은 기꺼이 화답하리라 본다.

"이 작품의 잔향이 관객 여러분들을 넘어 하늘과 땅을 이어 '위안부' 할머니들 아니 소녀들에게 가서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느려도 좋으니 부디 가서 닿길......"

- '일곱 개의 단추' 작-연출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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