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선흘분교 본교 승격 눈앞…학교살리기 패러다임 변화

개과천선한 선생 김봉두가 뒤늦게 막아보려 했지만, 학교 문은 닫히고 말았다. 끝내 반전은 없었다. 

애초 김봉두의 시커먼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한 순하디 순한 시골 주민들은 폐교를 막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할 태세였다. 그것은 김봉두의 마음을 붙잡으려는 형태로 나타난다. 촌지는 과일, 채소로 대신했다. 

여하한 노력의 이유는 분명했다. 주민들에게 학교는 심장이었다. 멈추는 순간 생명이 꺼지고마는. 운명도 하나였다. 학교가 없어진다면 결국 마을도 사라질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마을의 생존이 달려있는데, 설사 주민들의 손에 돈봉투가 들려있었다 한들 이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영화는 억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애잔함을 더했다. 시간적 배경은 2003년. 제주에서도 이농현상 등으로 폐교가 잇따를 때였다. 2000년대 들어서만 하천초, 화산초, 가시초, 연평초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겼다. 비교적 최근의 폐교 사례는 2009년 서광초 동광분교, 2010년 조천초 신흥분교 등이 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폐교 위기를 넘기는 학교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물론 주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전입 학생들이 거주할 공동주택을 짓기위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고, 지역특성을 살린 생생한 체험프로그램 등으로 도시민들의 이주 심리를 자극했다. 교육당국 등에서도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2011년, 2년만 시간을 달라며 “그래도 학생수가 늘지 않으면 분교장 격하가 아니라 자진 폐교하겠다”던 한 마을 이장의 절절한 호소는 농촌 지역에서 학교의 존재 이유를 되새기게 했다. 당시 이장이 배수의 진을 쳤던 해당 학교는 마침내 폐교 위기에서 벗어났다. 

ⓒ제주의소리
지난 2018년 본교 승격이라는 '역주행의 신화'를 쓴 제주시 애월읍 더럭초등학교(왼쪽), 역시 본교 승격을 눈앞에 둔 제주시 조천읍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장(오른쪽). <그래픽=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추세를 거스른 ‘역주행’의 압권은 본교 승격이다. 세계적인 색채디자이너 장 필립 랑클로(Jean Phiilippe Lenclos)가 디자인한 무지개색 건물의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더럭초등학교. 학생수 감소로 1996년 분교가 된 더럭초는 2009년 전교생이 17명에 그칠 만큼 사정이 심각했다.  

존폐 위기에 몰렸으나 2012년 ‘불현듯’ 기사회생의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 굴지 가전업체의 이미지 광고를 통해 학교 건물이 무지개색으로 단장되고, 이 과정이 소개되면서 전국적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여기에 학교를 살리려는 주민과 행정당국, 학교 측의 다각적인 노력이 더해졌다. 그 결과 더럭초는 2018년 2월 본교 승격이 결정됨으로써 제주 교육사에 한 획을 그었다. 제주에선 그 전에도 분교가 본교로 승격한 사례가 있었지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영화에서도 이루지 못한 기적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육지부와는 확연히 다른 제주에서의 이같은 반전은 인구 유입도 큰 몫을 했다. 2010년 이후 불어닥친 귀농·귀촌 열풍과 함께 제주살이에 대한 동경은 이주민 급증으로 이어졌고, 학생수도 덩달아 증가했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주 인구 순이동은 2010년 2분기에 처음 플러스(+)로 돌아선 이래 거의 10년간 증가세를 유지했다. 반전의 기회가 어쩌다 찾아온게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나 대세는 대세였다. 고착화된 저출산에다 2020년 1분기 이후 인구 유입마저 멈칫하자 학생수 감소는 막기 어려워졌다. 2020년 9월 발표된 ‘2020~2025 중기학생배치계획’에 따르면 제주 초등학생 수는 2024년부터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제 학교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예전과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가 대안이 될지 모르겠다. 2014년 학생수가 20명에 불과해 폐교까지 거론됐던 선흘분교는 올해 7월1일 현재 110명으로 불어났다. 지난달 제주도교육청에 본교 승격을 요청한 상태다. ‘건강생태학교’가 비장의 무기였다. 람사르습지(2011년), 세계지질공원 대표명소(2014년)로 각각 지정된 제주 생태체험관광의 명소 동백동산을 십분 활용했다. 주민들의 숨은 노력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 2일 현지에서 열린 ‘본교 승격 준비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석문 교육감의 다음과 같은 한마디는 시대와 상황 변화에 맞게 처방 또한 달라져야 함을 시사한다. 

“20세기 작은학교 살리기 모형은 다세대주택을 기반으로 했다면, 선흘분교장은 미래 가치인 생태·환경·건강을 기반으로 활성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도심 공동화로 학생수가 급감한 초등학교의 원조격인 제주북초는 ‘김영수 도서관’으로 대표되는 도시재생사업과 맞물려 부활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역의 구심점이자 마을 부흥의 중심, 희망과 관계망 복원의 매개체인 학교를 살리기위한 각 교육주체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공동대표>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