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앞둔 공판서 증거물 신빙성 ‘공방’...검찰 징역 10년 구형

제주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는 20년 전 강간 사건에 대한 증거물 신빙성 여부를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서 재판부의 판단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날 검찰은 피고인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2일 오후 2시10분께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 법률 위반(주거침입강간등) 등 혐의로 기소된 한모씨에 대한 4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한씨에게 징역 10년에 신상정보공개, 청소년·장애인 관련 복지시설 취업제한 10년, 위치추적장치 10년 등을 구형했다. 

 범행 현장서 발견된 다섯 조각의 휴지 뭉치

한씨는 2001년 3월5일 서귀포시내 한 가정집에 침입해 A씨를 강간해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당시 경찰은 목격자와 CCTV 등을 확보하지 못해 피의자를 확정하지 못했으며, 증거는 피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휴지 뭉치 5조각이 전부였다. 

휴지 뭉치를 중심으로 용의자를 색출하기 위해 DNA 검사가 이뤄졌지만, 일치하는 대상을 찾지 못했다.  

2010년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법(DNA)' 법 제정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6년부터 미제사건에 대한 재분석을 시작했고, 2019년 3월 제주 강간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휴지조각의 DNA가 피고인 한씨와 동일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귀포경찰서는 다른 사건으로 타지역에서 복역중이던 한씨를 제주로 이감해 수사를 진행,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인 올해 3월2일 한씨를 기소했다. 

 DNA 나온 휴지뭉치 ‘증거 효력’은?

이날 4번째 공판에서도 검찰과 변호인은 증거물인 휴지뭉치에서 나온 DNA 신빙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씨는 2004년 제주를 떠나 2009년까지 인천과 경기, 서울 등지에서 강간 등의 범행으로 징역 18년을 선고 받아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이번 사건으로 제주교도소로 이감됐다. 

한씨 변호인은 사직당국이 적법한 절차를 밟아 휴지를 압수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발견된 휴지는 용의자 것으로 추정 ‘유류물’로서 영장집행 없이 압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만에 하나 증거물 압수 조서 미작성 등 절차를 지키지 않아도 휴지 자체를 증거물로서는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내놨다. 

DNA 분석 결과에 대한 공방도 이어졌다. 

한씨 변호인은 “피고인이 강간 이후 증거물(휴지)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증거물에서 피해자의 DNA도 같이 검출돼야 한다. DNA가 명확히 구분돼 검출됐다면 남·여 성별도 구분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의 유전자를 별도로 요구하지 않은 상태인데, 검출된 DNA가 (다른 사람과) 뒤섞여서 검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또 사건 당시에는 DNA 감정이 불가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DNA 검사 결과 훼손·조작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적법한 증거물을 토대로 한 과학적 증거물이다. 대법원은 과학적 증거에 대한 신뢰성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공인된 표준 기술로 제출·채취·분석된 증거는 오류 가능성이 없거나 무시할 수 없다”며 DNA 분석 결과가 유죄의 증거로 타당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감정인에 의해 DNA 감정 절차가 이뤄졌고, 분석 과정에서도 훼손이나 조작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라며 증거로서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이미 처벌받은 피고인, 추가 처벌은 

형법 제39조(판결을 받지 아니한 경합범, 수개의 판결과 경합범, 형의 집행과 경합범)에 따르면 경합범 중 판결을 받지 아니한 죄가 있을 때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그 죄와 판결이 확정된 죄를 동시에 판결할 경우와 형평을 고려해 형을 선고해야 한다. 

한씨 변호인은 이미 징역 18년을 선고 받아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해 또 처벌을 내릴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한씨에게 내려진 징역 18년에는 드러나지 않은 범죄에 대한 처벌도 포함됐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반면, 검찰은 한씨의 처벌이 지나치게 감형됐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확정적 범죄다. 당시 검찰에서 항소까지 했지만 기각된 사안”이라며 “피고인의 수단과 방법을 봤을 때, 피해자 그 누구로부터 용서 받지 못한 점 등을 감안하면 징역 18년은 지나치게 감형됐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중형을 선고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한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한씨는 최후 진술에서 “정말 죄송하다. 어떤 판결을 내리던 받아들이겠다. 깊이 반성하고 사죄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법원은 오는 8월26일 재판을 속행해 한씨에 대해 선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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