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제주특별자치도, 무늬만 특별했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15주년을 맞아 그 성과를 평가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제주도민의 10명 중 4명이 ‘제주특별자치도’의 의미와 배경을 잘 모르고, 젊은 층은 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한 인지도가 더 낮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초창기에는 우리도 한 번 해보자 하는 결의와 으싸으싸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주민이 증가하는 등 크고 작은 변화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실천적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제주특별자치도법이 시행된 후, 15년 동안 여러 정책이 좌초됐다. 필자가 보기에는 목표 설정 자체부터 ‘제주의 특별함’과는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정책이 ‘영리병원 정책’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일 컸다. 제주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정책에서 제주의 특별함은 드러나지 않았다. 

외국 자본을 무분별하게 끌어온 것도 문제였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서 제주 땅을 조금씩 가져가는 것이 보였다. 발전을 위해 자본이 절실하지만, 소중한 제주 땅까지 팔아선 안 된다. 여러 개발 사업이 있었지만, 제주의 특별한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이 많았다. 주민간의 갈등은 증폭되었다. 

국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국가의 지원이 기대만큼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이내 알 수 있었다. 외부에서 특별함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이제는 내부에서 그 동력을 찾아야 한다.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선포한 지 19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15년이다. 그로 인해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나,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도민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지 밀도있는 논의들이 지속돼야 한다. 그래픽 이미지=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중요한 것은 제주특별자치도를 뒷받침하는 ‘먹거리’를 어디에서 확보할지, 제주별자치도라는 이념을 현실화하는 실행력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여부다. 그래픽이미지=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의 특별함에서 출발해야 

제주도에서 특별하다면 뭐가 과연 특별할까? 당연히 누구나 ‘제주 자연’을 손꼽는다. 제주는 천혜의 자연을 품은 아름다운 곳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제주 자연을 즐기러 제주로 온다. 특별한 ‘제주 자연’을 염두에 두고 특별함을 펼쳐가야 한다. 생태관광, 체험관광을 소재로 제주 관광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넓혀야 한다.

제주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수많은 해양 자원과 해양 보고들이 넘쳐난다. 해양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연구소를 만들 수 없을까? 규모 면에서가 아니라 섬과 관련된 독특한 해양 자원을 연구하는 특별한 연구소를 키울 수 없을까?

제주도를 한반도의 시각에서 보면 아래에 있는 작은 섬이지만,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달리 보인다.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중요성이 보인다. 지도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대양을 향해 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의 관계가 지금처럼 좋지 않다면 발전 가능성이 없겠지만, 계속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나은 삼국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면, 한국, 중국, 일본 간의 해양 루트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 현재에 고착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는 설계자가 필요하다. 

제주섬이 가진 독특한 환경과 문화를 좀 더 부각시킬 수 없을까? 관덕정을 중심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삼성혈을 중심으로 인문적인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탐라국에 대한 고증을 거쳐 고대해상왕국 탐라를 다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 제주의 인문학적, 역사적 매력을 제대로 드러내는 곳이 필요하다. 무궁무진한 자원이 여기에 숨어있다. 

제주 환경과 IT 산업

제주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을 실질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고,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제주섬에 터전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제주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통로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필자는 IT 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자가 좋아하고 늘 추천하는 책이 있다. 김수종씨가 쓴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 제주도로 떠난 디지털 유목민’(시대의 창, 2009)이다. Daum은 글로벌 경영을 기치로 내세우며, 제주도를 사업기지로 삼는 역발상을 실행에 옮겼다. 물론 이후 다음이 카카오에 합병이 되면서 빛이 바랬지만. 제주도에서의 IT 산업 유치의 청사진을 제시한 점은 틀림없다. 

필자는 ‘다음의 실험적인 도전’이 세계적인 시각에서 ‘서울 중심’의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고 지역화와 세계화를 실천하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제주도의 가치를 새삼 재발견하고, 제주에서의 삶을 부각시킨 ‘다음’에 무척 호감이 갔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졌으면 좋겠다.

모든 기업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다. 우수한 대학이 서울에 집중될 필요도 없다.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은 서울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다. 대학과 기업은 적절하게 분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정반대다. 기업은 서울로 몰리고,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일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수록 뜻있는 기업이 나서 제주로 내려오면 좋은데, 이를 위해 제주도는 과감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제주가 자랑하는 특별함인 ‘제주 자연’과 ‘IT 산업’은 매칭이 잘 된다. 

“이념이 현실에서 힘을 가지려면 선포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구속력과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볼프강 조프스키).” 제주특별자치도법이 있다고 해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자동적으로 실현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주특별자치도를 뒷받침하는 ‘먹거리’를 어디에서 확보할지, 제주별자치도라는 이념을 현실화하는 실행력을 제대로 갖추었는지 여부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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