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형 도시재생 현장을 가다] ‘2021 광해, 원도심을 만나다’ 9월까지...인문학 강좌, 걷기투어 등 다채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1 광해 원도심을 만나다’ 프로그램이 7월15일부터 진행된다. 제주 원도심에 있는 광해의 궤적을 담은 제주 ‘광해, 빛의 길을 걷다’ 지도.

폭군이냐, 개혁군주냐? 우리 역사에서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관덕정에서 눈을 감은 광해군의 이야기를 담아 원도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도시재생의 콘텐츠로 부활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 펼쳐져 주목된다.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1 광해 원도심을 만나다’ 프로그램의 일환인 ‘광해, 빛의 길을 걷다’ 사전 인플루언서 팸투어가 13일 오후 3시부터 제주시 원도심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걷기 코스는 △오현단(귤림서원터) △광해군 적소터 표지석 △제주목 관아 △관덕정을 포함한 원도심 일대로, 설명에는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 연구원인 김진철 박사가 나섰다.

선조의 둘째 아들인 광해군은 휘 혼(琿), 공빈(恭嬪) 김씨의 소생이다. 비(妃)는 판윤 유자신(柳自新)의 딸이다.   

선조의 후계자로서의 광해군은 왕에 오른 과정부터 여느 왕과는 달랐다. 장자인 임해군(臨海君)이 광폭하고 인망이 없기 때문에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됐다. 

장자도 적자도 아닌 광해군은 왕세자에 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갑작스럽게 세자에 책봉돼 전란을 수습하면서 백성의 지지를 받게 된다.

광해군은 우리 역사 속에 폭군의 이미지로 각인됐지만 즉위하는 동안 부정적인 과거를 청산하는 여러 개혁 정책을 강행했다. 대동법과 중립외교가 대표적인 예다.

대동법은 토지의 소유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으로 세금 부담이 높아진 사대부들의 반발을 샀다. 거기에 친형 임해군과 인목대비의 친자 영창대군의 죽음에 광해군이 연루되면서 그의 왕권 회복에 대한 노력은 서서히 물거품이 됐다.

거기에 그의 중립 외교 역시 명나라를 섬기며 성리학을 신봉하던 사대부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다. 그는 결국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고 쫓겨나 묘호조차 얻지 못해 쓸쓸하게 유배지 제주에서 눈을 감는다. 

폭군과 개혁가,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광해군은 역사시대 제주 유배인 중 유일한 임금이었다. 광해는 폐위된 후 강화도로 유배됐다가, 병자호란 발발 다음 해인 1637년 제주로 유배됐다.

광해가 어등포(현 구좌읍 행원리)에서 처음 제주땅을 밟고, 그로부터 4년 간 유배 생활을 하다 제주에서 생을 마감한 사실을 아는 도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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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광해 원도심을 만나다’ 참여자들이 오현단과 귤림서원을 지나며 설명을 듣고 있다. 제주사람들은 광해군에게 직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제주에 유배되어 10년을 지낸 동계 정온을 오현의 한 사람으로 모셨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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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광해 원도심을 만나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제주시 중앙로 인근의 광해군적소터(KB국민은행 제주지점 앞)에서 위리안치된 광해군의 유배생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광해가 제주에 유배되었을 당시 이곳 주변에 적거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의소리

광해군은 폐위된 왕이기에 더욱 철저히 감시를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주성에 위리안치된 후에는 병사들이 가시울타리 주변을 지켰으며, 여러 모욕과 암살의 위험을 견디며 쓸쓸히 남은 여생을 보냈다.

끝내 1641년 음력 7월, 광해는 제주 유배생활 중 병사로 눈을 감는다. 제주목사 이시방은 제주목 관아에서 광해의 장례를 준비했다. 그는 제주도민들의 애원을 담아 광해에 대한 예를 표해야 한다며 왕실에 요청했고, 실제로 광해의 장례는 관덕정 앞에서 왕자에 준해 치러졌다.

광해가 숨을 거둔 그해 1641년은 제주에 극심한 가뭄이 왔다. 장례 이후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해서 제주 사람들이 지독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를 ‘광해우’라 부른다고 한다.

이날 걷기 투어에서는 광해의 제주 유배생활과 더불어 유년시절부터 왕이 된 후의 전시복구, 대동법 등 개혁 군주로서의 업적들, 오늘날에도 의미있게 적용할 수 있는 명과 후금 사이 중립외교 전략 등을 짚어봤다.

물론 선정뿐 아니라, 광해에게는 임진왜란으로 불탄 궁궐을 무리하게 다시 지으며 백성의 원성을 사거나 매관매직을 성행하게 둔 실책도 있고, 폭군으로 기록될 만한 사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임을 고려한다면, 광해를 비운의 폭군으로만 정의내릴 게 아니라 그의 다양한 개혁적 정책과 업적 또한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광해군 테마 원도심 걷기투어에 참여한 김지혜 씨는 “유배지라면 사실 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는 공간을 떠올리게 되는데 제주도심에서 광해군과 연관있는 곳들을 함께 볼 수 있고, 제주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것에 놀랐다”며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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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년 음력 7월, 광해는 제주 유배생활 중 병사로 눈을 감는다. 제주 관덕정은 광해군의 시신을 안치하고 빈소를 마련해 대제를 지냈던 곳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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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착한여행에서 광해군의 생애와 주요업적 이야기를 담은 팝업 전시를 열고 있다. 김미라 씨(제주착한여행)가 참여자들에게 원도심 시간여행 지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15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으라차차, 어쨌든 원도심’ 2021 광해, 원도심을 만나다 프로그램은, 제주 원도심에서 약 4년의 유배생활을 한 광해의 이야기로 원도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도시재생사업이다.

주요 프로그램은 15일 ‘광해군을 배우다’ 인문학 강좌를 시작으로, △‘광해 책 보따리’ 체험프로그램 △‘광해, 빛의 길을 걷다’ 원도심 걷기투어 △‘광해군을 찾아라!’ 역사 퀴즈쇼 △‘광해군의 특별한 외출!’ 승하일을 기리는 퍼포먼스 △원도심 퍼레이드 △광해 리빙랩 소모임 등으로 구성된다.

‘으라차차, 어쨌든 원도심’ 2021 광해, 원도심을 만나다 프로그램은, 제주 원도심에서 약 4년의 유배생활을 한 광해의 이야기로 원도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는 도시재생사업이다.

‘광해, 빛의 바다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걷기 투어 프로그램은, 광해군 제주 입도일(1637년 음력 6월6일, 올해 7월 15일), 승하일(1641년 음력 7월1일, 올해 8월8일), 대제일(1641년 7월28일, 올해 9월4일), 제주 출도일(1641년 음력 8월18일, 올해 9월24일)과 같은 주요 기념일과 연계해 7월부터 9월까지 제주시 원도심 일원에서 진행된다.

‘광해군을 배우다 인문학 강좌는 광해군과 제주, 요리, 여인들, 유산을 주제로 7월15일, 7월23일, 8월7일, 9월25일 진행된다. 광해군 당시는 음력을 기준했으나 현대에 맞게 양력 기준으로 전환해 행사가 기획됐다. 

자세한 프로그램 일정 확인과 참여 신청은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광해군의 생애와 주요업적 이야기는 팝업 전시 공간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 1층, 제주사랑방, 제주착한여행에서 광해군을 테마로 콘텐츠를 전시한다.

제주시 원도심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상인들과 함께 광해군 테마 상품도 개발해 선보인다. 임금님께 올리는 작은상 한상차림 ‘광해소반’, 나들이 음식 ‘광해행반’, 광해군의 시를 담은 유리문진 등 광해 기념품과 체험 프로그램도 만날 수 있다.

광해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제주에서의 유배 생활은 쇠락해진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에 적절한 역사문화적 콘텐츠라 평가받고 있다. 광해를 주제로 원도심이 커다란 박물관이 되어, 제주를 ‘빛의 바다’로 이끌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원도심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상인들과 함께 광해군 테마 상품도 개발해 선보인다. 광해군의 시를 담은 더아일랜더의 유리문진은 가장 인기가 많은 상품 중 하나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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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는 생전 팥죽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건입동백설공주에서는 제주 향토음식 빙떡을 더해 임금님께 올리는 작은상 한상차림 ‘광해소반’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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