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예스24.

시인 김원욱이 최근 신간 ‘푸른 발이 사라졌네(도서출판 애지)’를 출간했다.

본인의 네 번째 시집인 이 책은 시공을 넘나드는 확장된 사유의 공간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서정으로 녹아든 강렬한 신화적 시선을 담아냈다. 

총 64편의 시가 수록된 책은 △미륵이 오는 방식 △그리운 문명 △하늘을 달리다 △웅성거리는 별 등 4부로 구성된다. 

1부인 미륵이 오는 방식은 신화적 사유를 표현하고 2부 그리운 문명에서는 현실과 고뇌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담겼다. 

3부인 하늘을 달리다에서는 죽음과 성찰에 대한 시인의 시각이 녹아났고, 4부 웅성거리는 별에서는 기억과 반추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수록됐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생멸의 통찰과 인류애의 발현을 우주론적인 거역할 수 없는 대상으로 나타내며 그 바탕에 제주신화를 깔았다.

김원욱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제주신화와 함께 꿈을 꾸었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인 ‘미여지벵뒤’에서 뒤척거렸다. 숙명일 수밖에 없는 길, 나는 또다시 긴 여정에 나선다”고 말한다.

영등할망

큰바람 부는 날 하늘에 실금이 갈 것이다
벼락같은,
나의 서툰 언어는 누구와 소통하고 있는지
낯선 말 밖에 좌정한 간절한 눈빛에 들어 지독하게 앓던
천계의 남루한 렌즈 속
거대한 별 무리 이끌고 억천만겁을 건너오시는
꽃 도포 펄럭이며 기어코 칠성판을 휘저으시는
내 안 가득,
거역할 수 없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색하며 역동적인 신화적 상상을 보여준다. 서정의 깊이에 꽂히는 따뜻한 시선과 내면에서 꿈틀대는 인류 근원에 대한 물음은 시의 외연을 다채롭게 한다.

해설은 쓴 김지연 시인은 “영등할망은 이 시집의 권두시 성격을 띤다. 제주인의 정서 속에 자리잡은 무속신화의 영등할망을 끌어온 뒤 창작인으로서의 소회를 이입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어 “시인은 풍요의 여신 영등할망을 통해 자신의 시작행위를 오버랩하고 있다. 그가 응시하는 시작은 고통스럽고 때로 ‘칠성판을 휘저을’만큼 죽음에 맞닿은 엄숙한 소명의식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거역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록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 고통의 방식은 영등할망의 행위처럼 풍요로운 결실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시인은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신화는 자유롭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그것은 때로 일상의 서정으로 변모하고 때로는 삶을 관통하는 철학으로 변모하기도 한다”며 “그의 시는 화려하고 난해하기보다는 담백하고 정갈하다”고 말했다.

서평을 쓴 문무병 시인은 “문명의 폐허 위에 처절한 슬픔을 빚어낸 김원욱의 시는 제주신화와 함께 꿈을 꾼다”며 “모순된 현실에 안착한 자신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인류 근원과 대자유에 닿으려는 몸부림이 치열하다”고 소개했다.

이어 “제주는 신화의 섬이다. 그런 점에서 김원욱의 시가 지향하는 신화적 가치와 인류애를 바라보는 기쁨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원욱 시인은 제주 서귀포시 위미에서 태어나 1997년 시집 ‘그리움의 나라로 가는 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노을에 들다’, ‘누군가의 누군가는’ 등 책을 펼쳐냈다.

128쪽, 도서출판 애지,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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