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제주선거구획정 난항, 압도적 '부정적 여론' 딛고 원칙론 고수

내년 6월 실시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뜨거운 감자'가 된 제주도의원 선거구 획정 과정이 난항에 빠졌다. 사실상 최적의 대안으로 평가돼 온 '의원 정수 증원'에 대한 도민들의 냉혹한 평가로 인해 명분을 잃게 되면서다.

다만, 설문조사 결과와는 별개로 선거구획정위원회 차원의 의원 정수 증원 방침은 유지될 전망이다. 이대로 후퇴하는 안이 선택될 경우 도민의 정치적 대표성이 더 축소되고, 지방자치의 민주성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위원장 고홍철)가 도민 7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주도의회의원 선거구획정 제도개선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0.1%는 현재 도의원 정수가 '적당하다'고 답했고, 38.1%는 오히려 '정수가 많다'고 응답했다.이에 반해 '정수가 부족하다'는 응답은 11.9%에 그쳤다. 전체 응답자의 88.2%가 정수 확대에 부정적 의견을 낸 것이다.

여론조사를 추진한 선거구획정위 내부적으로도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할 것은 일찍이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도 부정적 의견이 더 압도적이었다는 점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의원 정수 증원은 충분한 설득 논리를 갖춘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다. 인구수나 지역 인프라가 급변하는 제주 각 지역의 여건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제주도의회 의원 정수는 43명이지만, 비례대표 7석, 교육의원 5석을 제외하면 지역구 의원은 31석이다. 기본적으로 각 읍면에는 1명씩 의원을 배정한 상황에서 동지역의 경우 인구가 밀집한 곳은 선거구를 나눴다. 인구수가 가장 적은 지역구를 기준으로 삼아 이른바 '안덕면 룰'이 적용된 형태다.

문제는 농촌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화되고, 도심으로의 인구 이동이 늘어나는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하면서 이 최소한의 인구 요건도 갖추지 못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의 특성 상 산남과 산북지역의 격차도 두드러지고 있다. 

현행 의원 정수는 급증한 인구 수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제주의 경우 2020년 기준 제주도의원 1인당 주민대표 인구는 1만5581명이다. 이는 전국 지방의회 1인당 평균 주민대표인구 1만3805명보다 1776명이나 많은 것으로, 제주도의원은 전국 지방의회의원보다 1인당 12.9% 더 많은 주민을 대표해야 한다. 기초의회와 광역의회를 나눠가진 타 시도와는 달리 제주는 1명의 광역의원이 감당해야 할 지역현안이 산적해 있다.

특별자치도 출범 시 인구 대비 23.6%가 증가했음에도 의원 정수는 기존 41명에서 단 2명이 늘었다. 이 또한 중앙 정치권에 읍소 전략을 펼쳐야만 가능했고, 정부부처의 반대에 '의원 입법' 형태로 우회해서야 가능했던 사안이다.

특별자치도 출범시 적용했던 도의원 산정 근거를 도입하면 현재 의원 정수는 48명이 돼야 한다. 현실적으로 제주의 입장에서는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의원 증원 입장을 고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떠나 민의를 엿본 이번 여론조사를 통해 의원 정수 증원은 명분을 상당 부분 잃게 됐다. 뒤늦게 '안하느니 만 못한 조사였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제주도의회 A의원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상황에서 설문조사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상됐다. 뻔히 예상됐던 것이 설문조사를 통해 수치로 드러나니 앞으로의 선거구 획정 과정은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A의원은 "사실 선거구획정 과정은 여론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해 추진됐어야 할 것 아니냐. 고도의 자치분권을 살린다는 전제하에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 결정이 돼야 하는데, 그런 점에 대한 도민 설득 과정 없이 '의원 정수를 늘려야겠느냐'는 질문만 던지면 당연히 반대하는 여론이 높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문조사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모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B씨도 "그동안 정쟁만 일삼아 온 정치인들에 대한 도민의 냉혹한 평가"라며 "도의원들의 의정활동 능력을 봤을때 그동안 제주도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지에 대한 도민들의 의문이 반감을 만든 결과"라고 되돌아봤다. 그는 "매우 복잡한 사안을 단순 문항으로 정리하려 한 설문조사의 한계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결국 나름의 설득논리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도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아무리 효율적인 방안이라 한들 민의를 왜곡하는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길 수 있다.

선거구획정위는 기존의 의원 정수 증원 대안을 유지하면서 도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겠다는 입장이다.

고홍철 선거구획정위원장은 "지금 시점에서는 선거구획정에 대한 관심도가 낮기 때문에 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을 수 있다"며 "여론이 좋지 않더라도, 의원 정수 증원은 도민의 대표성이나 대행성 등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위원회 차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안은 도민 설득을 통해 관철시켜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지방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주민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존의 선거구를 죽이는 조정이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기본적인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낼지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