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06) 폴 오닐, 믹 윌슨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 김아람 옮김, 더플로어플랜, 2021

폴 오닐, 믹 윌슨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 김아람 옮김, 더플로어플랜, 2021. 출처=예스24.
폴 오닐, 믹 윌슨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 김아람 옮김, 더플로어플랜, 2021. 출처=예스24.

‘00적 전환’이라는 수사는 매우 드라마틱하게 ‘전환의 서사’를 담아낸다. 플라톤의 존재론적 전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적 전환, 데카르트의 인식적론 전환,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적 전환, 클레어 비숍의 사회적 전환 등. 무수한 전환의 사유와 서사가 역사와 동시대의 지평에서 예술 담론과 조응해왔다. 그런데 ‘교육적 전환’이라는 틀로 예술 생산과 향유와 매개를 논의하는 일은 현실 지형의 변화에 비해 담론 차원에서는 다소간 생소한 일로 남아있다. 이 책은 교육적 전환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을 모아서 동시대 예술 제도에 나타나는 교육적 전환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두루 살핀다. 

이 책을 번역해서 한국어판을 펴낸 데는 <더플로어플랜(The Floorplan)>이다. 특정 공간 없이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은 전시, 전자출판, 관객참여프로젝트 등을 선보이며, 출판사이면서 동시에 아트플랫폼(www.thefloorplan.net)을 지향한다. 플로어플랜은 그동안 몇권의 시리즈물을 출간했다. 첫 번째는 지난 30년간 큐레이팅 영역이 예술과 문화와 어떻게 관계 맺으며 변화해 왔는지를 다룬 책, 『동시대 큐레이팅의 역사: 큐레이팅의 문화, 문화의 큐레이팅』이다. 큐레이터, 비평가, 미술사학자, 예술가 등이 큐레이토리얼 쟁점과 실천을 조명한 책, 『큐레이팅의 주제들』도 있다. 이 책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은 큐레이팅과 교육의 관계를 다룬 27편의 글을 수록한 선집이다. 

큐레이팅의 영역은 전시라는 결과와 함께 교육이라는 과정을 공유함으로써 더욱 풍성하게 예술적 소통의 가능성을 넓힌다. 이 책의 미덕은 큐레이팅에 대해 이와 같이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관점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원제는 “Curating and the Educational Turn”이다. 직역하자면 ‘큐레이팅과 교육적 전환’이다. 그런데 책 제목은 ‘큐레이팅의 교육적 전환’이다. 큐레이팅과 교육적 전환의 관계에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큐레이팅에 있어 교육적 전환의 양상에 주목할 것인가? 이 책의 번역자는 후자를 선택했다. 전자든 후자든 핵심은 큐레이팅이라는 행위가 ‘가르침과 배움’의 영역인 교육과 관계맺는 방식이나 과정, 결과 등에서 확연히 전환적 국면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최근 전시와 비엔날레에서 교육적 성향이 강한 프로젝트를 부가물이 아닌 예술 생산의 필수 부분으로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기본적으로 이는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예술 학교 시스템이 일반적으로 문화 실천의 잠재성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다 명백하게 드러낸다.”

아티스트인 리암 길릭이 말하듯이, 현대미술은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담론의 창출과 소통과 더불어 교육을 통한 재생산의 구도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고 촘촘하게 그물망을 펼치는 것이 동시대미술의 큐레이팅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예술의 향유는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전시 이외에도 다양한 직간접적인 체험을 통하여 보다 내밀하고 친밀하게 만나는 교육적인 다가섬을 거쳐 성숙한 예술적 소통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의 큐레이팅은 ‘전시와 교육’이라는 프로젝트를 예술작품의 체험이라는 틀에서 동일한 선상에 놓고 풀어나간다. 

동시대의 전시들과 미술제도에서 교육적 전환 현상에 주목한 필자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전환의 계기를 진단한다. 또한 그러한 현상이 결과한 새로운 현상에 주목한다. 탈근대적 지형에서 미술은 작업실에서의 창작과 전시장에서의 향유라는 선형적 코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수의 경우, 비선형적인 과정을 거쳐 의외의 결과를 낳기도 하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필자들은 교육적 전환을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하여 분석하고 해석한다. 과정으로서의 교육과 지속적인 실험으로서의 교육 등 교육적 전환을 통하여 큐레이팅이 어떻게 진화하고 확장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다. 

“영화와 정치에 대한 장뤼크 고다르(Jean-Luc Godard)의 명언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교육적인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보다 ‘교육학적으로’ 프로젝트나 전시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프로젝트나 전시가 교육으로부터의 경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더 유용할 수 있다. 게다가 교육학적 환경에서의 발언의 선행이 줄어들어야 하고, 이와 더불어 정보의 풍부함이나 상징적 미술 시장을 우선시하는 측면에서 교육의 수익성에 대해 불안해하는 일도 줄어들어야 한다. 그 대신 우리는 경험과 만남의 구현에 다시 초점을 맞춰야 한다.”

페이오 아기레는 「혁신을 동반한 교육」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주장에서 나타나듯이 (전시를 비롯하여 다수의 예술) 프로젝트들은 교육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이들 프로젝트는 교육을 선행 프로젝트에 비해 후행하는 프로젝트로 사유하고 행동한다. 그 결과 프로젝트를 충분히 공유하고 향유하는 데에도 부족하고, 교육학적인 성취를 만드는 데에도 미진한 결과를 낳곤 한다. 오늘날 한국의 미술 현장에 자리잡은 전시와 교육의 관계를 돌아보면 대략 참담하다. 특히 뮤지움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매우 심난하다. 교육을 전시의 부대행사 쯤으로 취급하는 천박한 경향이 아직도 팽배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져서 말하자면, 뮤지움의 본질은 전시나 교육이 아니다. 뮤지움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와 역할은 소장품의 체계적인 수집과 과학적 보존이다. 소장품을 위하여 조사연구를 튼실하게 해야 함은 물론이고, 그 조사연구의 결과로 꾸려진 소장품에 대한 조사연구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한마디로 뮤지움은 소장품을 중심에 두고 사전적으로, 사후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전시와 교육은 낱낱의 프로그램으로 존재한다. 전시도 프로그램이요, 교육도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한국의 뮤지움들은 아직도 전시장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에 비해 교육공간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소홀하다.

뮤지올로지의 총체적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큐레이팅은 전시를 구성하는 기능적인 역할의 문제가 아니라 뮤지움의 본질과 현상을 두루 관통하는 핵심적인 역할이다. 큐레이팅의 핵심은 선택과 배치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선택과 배치는 전시의 출품작을 선택하고 그것을 전시장 공간에 배치하는 1차원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인류사적으로 유의미한 유물로 선택할 것이며, 그것을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 자리잡도록 배치할 것인가 하는 포괄적인 문제가 그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의 큐레이팅은 선택과 배치의 문제에 있어 전시나 프로젝트라는 드러나는 결과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너머 가르침과 배움으로 문화생산을 촉진하는 과정의 문제로 확장하는 것이 동시대 예술적 소통의 대세라는 점. 큐레이팅과 교육적 전환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평론가. 한국큐레이터협회장.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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