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Am ‘게난 할망은 어디서 와서?’

‘게난 할망은 어디서 와서?’ 출연진과 제작진. ⓒ제주의소리
‘게난 할망은 어디서 와서?’ 출연진과 제작진. ⓒ제주의소리

제주 여성 극단 ‘그녀들의Am’이 모처럼 맨 얼굴로 관객 앞에 섰다. 엄밀히 말하면 인형극 활동도 병행해온 그녀들의Am이 지난 2019년 10월 ‘별빛이 내리는 편의점’ 이후 1년 9개월 만에 올리는 정극(正劇)이다. 

18일부터 19일까지 공연한 ‘게난 할망은 어디서 와서?’는 네 가지 단편극을 담은 옴니버스 작품인데, 모두 ‘치매’라는 소재를 공통점으로 다루고 있다.

‘초로기치매’라는 질병으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29세 젊은 딸마저 같은 판정을 받았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아버지와 딸 이야기(작품명 :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요양원 입소를 앞두고 안타깝게 이별하는 치매 어머니와 딸(빈자리), 치매 할머니가 수영장에서 다른 사람의 우산을 가져가며 시작하는 이야기(노랑우산), 알뜰살뜰 꿋꿋하게 부양을 책임지는 며느리와 치매 시어머니(산처럼 거기 있었다)까지. 작품은 모두 치매를 마주한 가족 안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작품까지는 분량이나 이야기에 있어 무난한 구성이거나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전개된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는 부녀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압축해서 그려내고, ‘빈자리’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딸에게 밀려오는 비애가 중심이다. ‘노랑우산’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치매 어머니를 챙기는 딸을 통해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 중에서 ‘산처럼 거기 있었다’는 주목을 끈다. 며느리가 치매 시어머니와 대화 도중에 시어머니 옛 사연을 듣게 된다는 내용이다. 치매 부양가족의 하루를 담담히 보여주면서 어려움 에도 의지를 잃지 않는 며느리, 그리고 지금까지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는 두 가지 이야기 축은 나름의 흡입력을 가지고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시어머니를 대하는 며느리의 행동 하나 하나가 흥미롭다. 정해진 시간과 순서에 맞춰 움직이는 아침이나, 시어머니가 정돈한 빨래를 다시 풀어서 내려놓으며 이야기를 유도하는 등의 세세한 행동은 설득력과 신선함을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온다.

네 번째 작품에서 고유한 힘이 느껴진 이유는 실제로 치매 시어머니를 부양해오다 얼마 전 이별을 겪은 극단 단원의 사례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산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가족을 지켜오다 지금은 지워진 기억 안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을, 누구보다 가깝지만 동시에 가까워지기 어려운 '며느리'라는 다른 여자가 기억한다는 작품 뼈대는 살을 덧붙여 새로 만들어볼 만 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네 편 모두 단원들이 글을 쓰는 창작 참여, 타 극단 예술인과의 협업 확대 등 이번 작품은 그녀들의Am의 또 다른 발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비록 완성도에 있어 차이는 존재했지만 구성원들이 작가로 배우로 다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무척 역동적이고 건강하게 느껴진다.

어머니, 며느리, 딸. 각자 다른 위치에서 치매를 마주한 여자들을 보듬는 이번 작품을 비롯해, 앞으로 그녀들의Am 만이 할 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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