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차별금지법은 심각해지는 차별 문제 대응 시작점이다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구_제주시내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앙로’라는 한길이 있다. 이 길을 중심으로 동쪽 편에 주로 제주 동쪽에서 온 사람들이 거주했고, 서쪽 편에 제주 서쪽에서 온 사람들이 거주한다. 지금은 신제주도 생겼고 자가용도 많이 타고 그래서 꼭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대체로 그러했다. 이는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한 교통편의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었지, 특별히 동쪽과 서쪽을 나누는 경계의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의 동쪽과 서쪽은 서로 다른 자연환경으로 인해, 사회적 풍습과 모습이 여러모로 달랐다. 농작물도 다르고, 심지어 사투리도 차이가 있다. 그 때문일까? 제주 북서부 출신인 필자에게 어른들은 종종 ‘동쪽과 남쪽 지역 사람들은 이렇다저렇다, 제주시 사람들은 뭐가 어떻다’ 등등의 말들을 하곤 했다. 대체로 그쪽 사람들은 우리랑 다르니 가능하면 상대하지 말라는 투가 많았다. 교통편의 때문에 생겨난 중앙로 기점의 집단 거주는 이러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만나면서, 서로 간의 경계와 차이 그리고 가끔은 차별의 요소로 작동하였다.

제주제2공항 건설 과정에서 불거진 동쪽과 서쪽 사람들의 반목과 대립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이는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차이를 이유로 경계의 선을 긋고 배제와 혐오의 말을 쏟아내면, 이는 차별이 된다. 그 동네는 땅이 거칠어서 사람들이 거칠다느니, 도시지역이어서 사람들이 약아빠졌다느니, 기후가 따뜻해서 미적지근하고 게으르다느니 등등 온갖 경계가 그어지고 혐오가 난무하면 차별적 인식이 마치 사회의 기본 기준 인 냥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2공항 추진 과정 막바지에 나왔던 유력정치인의 서쪽 지역 운운 발언은 지역갈등과 차별을 조장한 참으로 뼈아픈 제주사회의 한 페이지가 되고 말았다. 그 발언이 제주도내 지역차별의 인식으로 고착되는 계기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2018년 제주에서 예멘난민이 대거 유입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많은 제주 사람들은 이들을 매우 낯설어했다. 하지만 제주 4.3을 기억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제주는 “그래도 구제해야 할 사ᄅᆞᆷ은 구제 해사 주게!”라고 말하며 그들을 품었다. 하지만 초기 상황과 달리 전국적으로 예멘난민에 대한 적대적인 경계심과 혐오정서가 강하게 드러나면서, 제주 사람들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일부 제주도내 마을에서는 외국인만 보면 경계하고 경찰서에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시간이 흘러, 2021년 초에는 일부 이주노동자들의 숙소에서 코로나19 전염이 발생했다면서, 외국인들에 대해서만 전수검사를 추진하는 등 외국인 혐오의식을 제주방역당국이 드러낸 적도 있다. 이러한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결국 우리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 제주사회를 더 좁고 옹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당면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난민을 수용하던 평화의 섬 제주는 작아지고 불안이 커졌다. 외국인 전수검사는 제대로 시행되지도, 전염병 확산 방지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차별의식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안정을 더 더디게 만든 것이다. 

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주에서도 차별금지법을 요구해야 한다. 풍요로운 인간적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놓고 다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다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모두의 제주도를 상상해야 하며, 그 시작점에서 제주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적극 요구해야 한다. 사진=차별금지법제정연대.

다른 한편, 제주지역에 다른 뿌리 깊은 차별이 있다. 바로 학력 차별이다. 과거 제주도는 시내 인문계고, 시외 인문계고, 실업계고로 구분하면서 성적에 따라 진학을 결정하였다. 그 결과 성적 차이에 따른 학생들에 대한 편견이 심화했다. 사회적 낙오가 1차적으로 고등학교 진학하는 순간부터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은 1등급이 아닌 2, 3, 4등급의 사람으로 경계 지어진 많은 학생들을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뜨렸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도 그런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찾거나, 자신들의 가르침에 대한 보람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도외에서 많은 학생들이 유입되고, 학교교육제도(일반계고, 특성화고, 특목고 등으로 변경)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으로서 성적에 따른 사회적 편견의 흐름은 아직도 여전하다. 결국 학생들에 대한 학력차별은 제주도내 소수 학생을 제외하면 많은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좌절감을 먼저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한 아이도 뒤에 남겨놓지 않겠다고 했지만, 맨 앞의 아이만 키우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주도내 공직사회에 여성들의 진출이 증가함에 따라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반면 제주도의회에서 선출직 여성의원은 여전히 미미한 소수이다. 뿐만 아니라 공적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의 자발적 기구나 단체, 비공식적 기구에서 여성이 책임자를 맡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편견이 여전히 기본적 인식으로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여성의 안전이 사회적 문제로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성인지적 관점에서 본질적인 정책이 고민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또 다른 한편, 최근 ‘제주이민’ 현상으로 발생한 육지 출신 주민들의 대거 유입은 제주토박이들과 이주민들 간에 사회적 경계를 만들고 있고, 사회적 배제와 차별적 인식이 태동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는 지금 장애인 차별, 노인 차별, 성적 지향성에 대한 차별의 문제 등 다양한 차별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제주에서도 차별금지법을 요구해야 한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차별금지법은 차이를 규제하거나,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점점 심각해지는 차별의 문제에 대한 대응의 시작점이다. 차별금지법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자행해왔던 차별을 드러내고, 그러한 차별을 해소하려는 최소한의 법적 노력이다. 차별금지법은 서로 자유롭게, 서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 다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 규칙을 정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제주지역사회는 공동체적 문화로 서로를 돌보고, 어려운 풍파를 헤쳐 왔다. 뿐만 아니라 천혜의 자연유산과 상부상조의 문화로 지역사회를 풍요롭게 가꾸어왔다. 그러나 경제적 발전과 풍요, 제주 사회환경의 변화는 기존의 제도에서 여러 차별적 문제들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제주도가 이러한 차별의 문제를 뛰어넘어 한 단계 더 풍요로운 인간적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놓고 다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계를 세우고 경쟁을 심화시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소수만의 제주가 아니라 누구나 다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모두의 제주도를 상상해야 한다. 그 시작점에서 제주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적극 요구해야 한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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