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07) 손병현,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 문학들, 2021.

손병현,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 문학들, 2021. 사진=알라딘.
손병현,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 문학들, 2021. 사진=알라딘.

1.
폭염과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심신이 지쳐있는 나의 생기를 회복시켜준 한 소설집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작가 손병현의 소설집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에 수록된 8편의 작품들을 읽어가는 동안 문학비평가이자 연구자로서 모색해왔던, 그러면서 비판을 감내하며 기획해왔던 구미중심주의에 바탕을 둔 소설을 창조적으로 전복하는 소설을 만났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미중심주의의 소설이 그렇듯이, 소설은 근대의 삶을 표현한 최적화된 예술 양식 중 하나인데, 이것은 ‘말하기(telling)’의 형식보다 ‘보여주기(showing)’의 형식을 근간으로 함으로써 전근대적 문학에서 주류를 담당했던 구연적(口演的) 상상력을 낡고 오래된 것으로 치부하였다. 바꿔말해 구미중심주의 소설에서는 ‘말하기’에 젖줄을 대고 있는 구술성(口述性) 및 연행성(演行性)보다 문자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표현을 소설의 모범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이 짧은 지면에서,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펼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제도화된 소설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편파적일 뿐만 아니라 정당하지도 않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숱한 소설 모두를 온전히 포괄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서구의 근대 문학 질서를 유지 및 지탱시키려는 소설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따름이다. 여기에는 서구의 근대 문학 질서로는 애오라지 이해할 수 없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구연적 상상력’, 그 언어적 표현을 예의 ‘소설 이데올로기’로 억지스레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손병현의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를 읽어가면서, 오랫동안 관성적으로 자명하게 수용하였던 구미중심의 ‘소설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을 만끽한다. 그런데 이 해방이 간단치 않는 것은 이 소설집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것들로, 종래 5․18광주를 다뤘던 이른바 5․18서사의 문학적 성취에 자족함으로써 자칫 그것에 갇혀 있음으로써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화석화(化石化)시키는, 그리하여 해방의 정치문화적 상상력을 봉쇄할 수 있는 우려를 손병현이 말끔히 지워내고 있다. 이것은 문자적 상상력의 가두리에 갇혀 있지 않고, 문자적 상상력과 구연적 상상력 사이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뒤섞임을 통한 손병현 특유의 소설적 표현을 미적으로 성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령, 조금 길지만 다음의 대목을 읽어보자.

교복을 입은 앳된 여고생이 걸어 나왔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양쪽으로 환한 빛이 퍼져 나갔다. 광장의 기적을 펼쳐 보인 여고생은 친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추억을 만들러 나온 모양이었다.
“전남여고 다닌디 친구들이 나갔다 오믄 찐빵 사 준다고 해서 그래서 나왔어요. 이왕 나왔응께 노래 한 자리 하고 가께요. 데모할 때 부르는 노래 그거 있잖에요. 아리랑, 예 진도 아리랑 개사헌 것이요. 다 아싱께 함께 불렀으믄 좋겄어요.”
“오매-, 어치케나 이쁜지 꽃이 걸어 나온지 알았소. 춘향이도 울고 갈 꽃 같은 여고생이 진도 아리랑 개사곡얼 항꾼에 부르자고 허네요. 군인덜 오기 전에 연습헌다 생각고 소리 한번 맞차 봅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으으응 아라리가났네~ 광주 무등골에 계엄군이 웬말인가 최루탄 방망이에 눈물이 난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으으응 아라리가났네~ 만경군중에 두둥둥 어깨동무 어기여차 어야디여라 함성을 질러라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으으응 아라리가났네~ 노다 가세 놀다가 가세 민주주의 벌떡 서도록 놀다 가세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으으응 아라리가났네~ 동지가 죽어서 하늘에 가면 이내 몸도 따라가지 뒤따라가지……”
시민들이 어깨동무로 파도를 일으켰다. 바다는 넘실거리고 은빛고기 떼는 춤을 췄다. 수평선 너머 저 멀리 무지개를 따라 윤슬이 피어올랐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흥겨운 노랫소리 들리고 어기여차 어야디야 무지개를 좇아 돛단배 노 저어 갔다.

- ‘광장’, 190-191쪽

전남도청 앞 “일순간 군인들이 빠져나간 광장에는 패잔병 같은 시민들”(177쪽)이 남았는데, 이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는 즉석에서 마련한 광주시민들의 걸판진 입담 한바탕으로 활기가 넘쳐 흐르는 분위기로 뒤바뀐다. 누구할 것 없이 광장 주변에 흩어져 있던 시민들은 마이크의 확성기에서 퍼져 나오는 남도어로써 5․18광주민주화운동과 연관된 일상의 세목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한다. 그 중 여고생도 빼놓을 수 없다. 여고생은 마이크를 당차게 들고 시위 현장에서 부르는, 진도 아리랑의 노랫말을 개사한 아리랑을 시민들과 함께 신명나게 부른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위 대목을 눈으로 읽어가지만, 엄밀히 말해 눈으로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새 입술을 달싹거리고 혀를 궁글리며 입으로 읽기 시작한다. 심지어 보다 더 적극적 독서 행위에 동참하는 독자들은 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어깨짓도 둥싯둥싯하고, 양 손을 무릎 장단도 쳐가는 책읽기의 정동을 몸소 수행할 터이다. 그래서 이 대목은 문자적 상상력과 구연적 상상력이 한데 어우러진, 지금까지 익숙한 소설 읽기와 전혀 다른 새롭고 경이로운 소설 읽기의 체험을 안겨준다. 

우리는 이러한 소설읽기의 정동이 21세기에 발표된 이 작품에 대한 미적 체험으로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1980년 5월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사회적 상상력을 어떻게 공유해나갔는지, 그 생동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관념적 추상적 사유를 넘어선 그들의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민주주의를 향한 강렬한 정동을, ‘다 함께’ 부르고 어울리는 아리랑의 구연적 상상력으로 작가도 함께 그때, 그곳의 현장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이 어깨동무로 일으키는 장엄한 파도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과 죽음의 공포를 무력화시키는 평화의 민주주의 바다로 면면히 흐른다. 

이렇듯이 작가 손병현은 구미중심의 소설에 안주한 채 우리에게 낯익은 정통 소설 문법으로 5․18서사의 유토피아를 추구하지 않는다. 남도어가 자연스레 수반하는 구연적 상상력이 지닌 문학의 힘을 5․18서사의 새로운 유토피아로 형상화하고 있다. 

3.
그렇다고 손병현이 5․18서사의 유토피아에만 치우쳐 있지는 않다. 그의 장편소설 ‘동문다리 브라더스’(2017)에서 비판적 성찰의 모습을 보이듯,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대를 관통해온 세대들이 겪는 비관주의와 세태 순응주의에 대한 웅숭깊은 응시는 5․18서사가 진력해야 할 민주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탐구의 긴요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이뤄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에서 주목할 것은 80년대에 짓밟힌 민주주의를 향한 순정과 그 상처가 잘 치유되기는커녕 형식적 민주주의의 미명 아래 한층 음험해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타락한 것과 공모함으로써 “왜 서로를 상처 내면서 아파하는 쪽으로만 치닫고 만 것”(87쪽)인지,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감정이 자꾸만 꼬여 들”(96쪽)고 있는 자화상을 마주하도록 한다('생선매운탕'). 5․18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의 죽음과 민주 열사에 대한 헌신적 죽음을 추모하고, 더 나아가 그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궁리하는 흐름 속에서 결국 전두환 군사정권에 종언을 고하는 ‘87년 체제’를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5․18의 민주주의가 온전히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매섭게 인식하고 있다.

그 한 사례를 작가는 오월 어머니 소속 한 분의 전화 인터뷰를 바탕으로 ‘태극기 아래서’에서 드러낸다. ‘태극기 아래서’의 작중 인물 학철은 그 어머니가 증언하듯이,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 의해 학살을 당하였는데도, 동서기는 학철의 사망 신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데모허다 총 맞아 죽은 폭도 아들을 나라에서 생각고 일반인모냥 선량한 죽음으로 바꽈 준다”고 하여 “사월 달에 집이서 죽었다고 적”(126쪽)을 것을 독촉한다. 하지만 학철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폭도라는디 나가 우리 아들 폭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댕겨야 쓰겄다, 억울허게 죽은 우리 아들 다시 살려 내야 쓰겄다.”(127쪽)고 한다. 비록 소설 속 작중 인물과 연관된 일이라고 하지만, 증언을 토대로 한 만큼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될 것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이러한 일들이 바로 형식적 민주주의 아래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광주 시민의 숭고한 죽음을 국민국가의 안녕을 어지럽혔다는 ‘폭도’와 착종시키고자 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정치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안타깝게도 “쓸 만한 놈들은 다 죽거나 감옥소에 들어가고 없”(‘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 169쪽)는 현실을 상기해볼 때, 작가의 이 매서운 비판은 좁게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사자들과, 넓게는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자 한 모든 이들이 맞서 싸워야 할 과제다. 그래서인지, 1980년 5월 광주의 곳곳을 누비며 가두방송을 담당한 ‘가두방송녀 모란꽃’의 광장 연설이 이 소설집의 마지막 수록작 ‘광장’의 말미에 소개하는 작가의 치밀한 서사전략이 돋보인다.

“우리의 목적은 첫째도 민주주의요 둘째도 민주주의요 셋째도 민주주의임을 명심합시다. 우리의 선한 목적을 선한 방법으로 지켜 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분명히 역사는 우리를 위대한 승리자로 기록할 것입니다.”

- ‘광장’, 196쪽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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