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27) 구좌읍 월정리 ‘책다방’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구좌읍 월정리,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제주시에서 약 35분 거리란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낯선 만큼 정신적 거리는 멀었다. 섣불리 나서기가 주저해졌다. 마침 남편이 쉬는 날이라 운전을 부탁했다. 한 시간이 더 걸렸다. 

구좌읍 월정리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84호로 지정된 ‘당처물동굴’이 있고, 서쪽으로는 3분 거리에 김녕해수욕장, 남서쪽으로는 5분 거리에 만장굴이 있다. 김녕해수욕장과 모래사장이 연결된 해안선을 즐기는 하이킹과 야경은 마을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구좌읍 월정리 홈페이지 마을 소개 참조). 이처럼 아름다운 마을 구좌읍 월정리에서 책다방을 운영하는 책마담 조선영 씨를 만났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월정리 바닷가 근처 책다방 별채에서는 책을 판매하고, 안채는 책을 읽는 곳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트레이너에서 책마담으로”
‘제주도’ 하면 일단 여행지다. 물론 일일생활권에 접어들면서 비즈니스로 오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여행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구좌읍 월정리 책다방의 책마담 역시 그렇다. 그도 제주도는 여행이 아니면 오지 못할 곳이라고 생각했던 한 사람이다.

운동을 좋아했던 조선영 씨는 원래 경기도에서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트레이너 일을 즐겼던 그는 일대일로 개인레슨까지 하면서 그야말로 열심히 일했다. 따라서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었다. 모든 게 취향이고 인연이며 운명이었다. 회원들을 관리하고 일하는 동안 자신의 몸도 건강해졌고, 살을 빼서 원하는 몸매도 만들 수 있었다. 행복했다. 성취감도 느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휘청, 회의감이 몰려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고민하는 찰나, 옆에서 일하는 언니가 제주도로 가서 게스트하우스를 같이 하자고 했다. 

국내에 있으면서도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 제주도, 생각지도 못했던 권유에 조선영 씨는 가슴이 뛰었다. 구미도 확 당겼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조선영 씨는 그해 바로 제주도로 왔다. 그리고 정착하기 위해 집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20대 중반을 달리던 2015년이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만의 느낌이 있나 보다. 제주에 도착한 조선영 씨는 고산, 애월, 협재, 명월 등 서쪽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왜였을까. 서쪽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면서 동쪽을 돌아보기로 했다. 인연이었나 보다. 서쪽과 달리 동쪽은 편안한 끌림이 있었다. 그렇게 월정리에 머무르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삼 년 후엔 책방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제주에 온 지도 벌써 7년이다.

틈틈이 제주도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조선영 씨는 소심한 책방, 라이킷 등 책방 몇 곳에 가게 되었다. 책방의 분위기가 그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그곳에서 조선영 씨는 자신도 책방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했다면 솔직히 모순이다. 여행에서 둘러보았던 책방처럼 그저 책 읽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만족이었다. 사람을 좋아했던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서 와 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찾아온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책방에서 즐기고 싶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마담이라 자처하는 조선영 씨는 이미 책과 결혼한 사람이다. 책이 판매되는 책다방 별채 내부엔 책과 함께 판매하는 양초가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마담 조선영 씨의 말처럼 책 읽는 안채는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한번 와 보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고향 같은 공간이다. 물론 고향이란 분위기에 정석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정서엔 이미 친숙해진 보편적 이미지가 있다. 책다방의 안채가 그렇다. 안채로 들어서면 태초의 고향인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혹은 할머니 댁에 온 것처럼 편안해진다. 

이곳은 책마담과 같이 온 언니, 그리고 아는 목수 동생과 셋이서 뚝딱뚝딱 만들었다. 그리고 내면 저 깊이에 자리한 정서에 익숙한 옛날 분위기로 꾸며 놓았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책다방이다. 책마담은 여행자들이 이 공간에서 책을 읽으며 쉬고 가는 그런 꿈을 꾸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이었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책다방은 책을 읽는 안채와 책을 판매하는 별채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을 판매하는 책다방 별채 내부. 책 외에도 약간의 잡화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흥분된 피를 가라앉히는 공간 책다방”
내가 사는 곳은 서촌인 데다가 중산간, 반면 월정리는 동촌인 데다가 바닷가다. 정반대의 환경을 지닌 곳, 내겐 낯선 곳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일주도로를 지나기는 했다. 그래도 내 나이 60이 넘도록 월정리를 지나친 건 아마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그렇게 낯선 곳을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가다가 일주도로에서 좌회전하는 순간, 눈앞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펼쳐졌다. 그랬다. 일주도로에서 보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이따금 모래밭이 보이긴 했지만, 마술처럼 순식간에 시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었다. 상가들만 휘황찬란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들어서 있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같이 왔다던 언니분은 옆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었고, 책마담은 약간의 잡화와 함께 책다방을 하면서 돈벌이는 어느 정도 된다고 했다.

책마담은 책다방이란 공간에 들어서면 안락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 안락함의 요소 중 하나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다. 책마담은 운동을 했고, 활달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다. 그런 만큼 그에게선 약간은 흥분된 피가 돈다. 아니, 돈다기보다 뛴다. 그런데 책다방에 오면 자신도 모르게 뛰던 피가 가라앉는다. 그리고 잔잔한 음악처럼 여유로움이 깔린다. 그 여유로움이란 멍석은 책마담에게 생각의 기회를 준다. 밖에서는 말도 많아지고 신나게 떠들며 놀다가도 출근하면 안겨드는 안락함이다.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공간이 주는 힘이다. 책다방은 책마담의 흥분된 피를 가라앉히는 공간이다. 

책다방에 있는 안락함의 요소 중 또 하나는 옛날 분위기가 흐른다는 것이다. 하얀 벽과 초콜릿 색깔의 가구는 물론 전구색 조명도 안락함의 요소 중 하나다. 책다방에 종일토록 묻혀 있다 보면 이러한 옛날 분위기가 스멀스멀 책마담에게로 스며든다. 그러면서 책마담은 자신이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직도 더 많이 달라져야 하지만 어쨌든 많이 좋아졌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길에서 태어났지만, 우리의 이웃입니다. 책다방 별채에서 안채로 이어지는 통로 창가에선 길고양이를 사랑하는 책마담의 마음이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월정리에도 책방이 생겼대”
책방을 시작하면서 별다른 홍보는 없었다. 그저 주위 사람들한테 “책방 할 거다, 북카페 할 거다.” 등 소문냈을 뿐이다. 다음은 손님이 알아서 찾아와 줬다.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손님이 오면 책다방에 가 보라면서 연결해 주었고, 한번 왔던 손님들의 입을 따라 소문이 퍼져갔다. 예를 들면 주위에서 책방이 생겼으니까 가 봐라, 또는 이곳을 다녀간 손님들이 사진과 함께 인스타에 분위기를 올려주었다. 촉매작용의 효과라고 할까 인프라라고 할까. 맨투맨 식으로 인프라가 형성되면서 ‘월정리에도 책방이 생겼대.’ 하는 식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인스타 등 SNS에서 책다방을 소개하는 건 단순히 ‘월정리에 책방이 생겼대.’가 아니다. 이곳에 오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현대인은 암암리에 혼자만의 시간을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다방 안채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널따랗고 쾌적한 공간이 있다. 여행객들은 이 공간을 좋아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무리에 끼어 있다. 그러다가 독립할 때쯤 어렴풋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학교에 다닌다든지 직업 등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하지 않은 채로 다시 무리에 껴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한 혼자만의 시간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때 여행지에서 오롯이 가지게 되는 혼자만의 시간, 이 공간을 찾아온 여행자에겐 진정한 혼자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 읽는 곳인 책다방 별채엔 누구라도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어울려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세상의 잡다한 소음 내지는 수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지나친 수다로 인한 외로움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풀어야 할 혼자만의 숙제가 있기 때문일까. 우리는 삶 속에서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일들, 이는 오직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책다방이 영업하는 동안 안채에선 맘껏 머무를 수 있다. 이곳에 한 번 머무른 사람이라면 떠날 때 ‘이 공간이 너무 좋아서 다음에 또 올게요, 또 올 것 같아요,’ 혹은 ‘이런 공간이 우리 집 근처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등 미련과 만족이 뒤섞인 얘기를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단골이 되어 제주도 여행 시 다시 들른다. 

단골손님은 지역 손님도 있지만 대부분 뭍에서 오는 여행객이다. 힘든 시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아니면 진짜 혼자만의 시간을 원해서 여행 오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겐 이미 그 어떤 아우라가 있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아도 티가 난다. 책마담은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이나 그들이 듣고 싶은 게 무엇인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헤아리며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대부분 이별을 하였거나 퇴사 혹은 이직하기 전, 그도 아니면 부모님을 보호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등 사연도 다양하다. 이들 중엔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풀어 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 다무는 사람도 있다. 

마음의 상처로 너무 힘들어하는 손님이 한 분 계셨다. 그 손님 역시 혼자만의 힘든 상황을 이겨내야 할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았다. 이때 책마담은 묵묵히 그 손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런 거는 정말 별일이 아닐 거다, 언젠가 나에게도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먼저 찾아온 것 같다.’라고 위로의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후 그 손님과 책마담은 친해지게 되었다. 

책을 읽다가 시 한 구절에서 갑자기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다. 이는 그만큼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어라고 이야기는 안 했지만,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랑이 주제인 책을 읽으며 눈물 흘렸던 분도 있었다. ‘어, 이걸 읽었는데 왜 눈물이 나지?’ 하면서 흐느끼던 그 사람은 어쩌면 막 이별한 후였는지도 모른다. 이때 책마담은 눈물을 훔치는 그 손님 앞에 조용히 휴지를 놓아 주었다.

소설이든 시든 특히 에세이는 잘 쓰는 사람이 많다. 짧은 글, 긴 글 등 장르에 상관없이 글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그리고 무수한 아포리즘이 있다. 거기에서 한 줄 두 줄만 읽어도 딱 와 닿는 게 있다. 말하지 않아도 뭔지 알 것 같은, 이런 경험은 머무르는 손님들에게 울림이다. 

조금은 불쾌한 손님도 있다. 책다방이란 이름 그대로 책 읽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을 만남의 공간으로 하여 차를 마시던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분위기가 궁금해서 들어왔겠지만, 엄연히 이곳은 책 읽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들 남녀에겐 분위기나 이목은 아랑곳없었다. 불붙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쯤 되면 책 읽는 손님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도 종종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을 읽는 공간인 책다방 안채 난간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버지의 책장”
트레이너를 하다가 책방을 하게 된 책마담 조선영 씨, 그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 친했던 언니의 영향이었다. 조선영 씨가 중학교 때는 사실 권장도서나 겨우 읽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언니는 언제나 책을 끼고 다녔으며, 틈날 때마다 읽었다. 늘 같이 다니는 언니가 옆에서 책을 계속 읽고 있으니까 궁금한 걸 자주 물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때로는 책을 권유받고 읽게 되었다. 조선영 씨는 이때 책을 가장 많이 접했다. 

대학 땐 전공 책을 읽었고, 트레이너로 일할 때는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다행이랄까, 아버지께서 종종 책을 사주셨다. 그렇게 졸업 후엔 아버지가 사준 책들을 읽게 되었다. 아버지께선 사회 초년생이 된 딸이 느낄 수 있는 책들을 선물로 사주셨다. 자기계발서나 성공담 스토리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다방 안채는 책방을 오픈하고 문을 닫을 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버지의 책장엔 대부분 철학이나 시집이 꽂혀 있었다. 조선영 씨는 제목에서 끌리는 것들을 찾아 읽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김규환의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 외에도 명상집과 윤동주 시집, 박완서의 작품을 주로 꺼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마담이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책이다. 우리 삶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정서며 내용이 확 와닿았다. 엄마를 잃은 가족들 각각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글을 읽으며 책마담은 울고 또 울었었다. 

무슨 일이 있었으며 또 누구에게 엄마를 부탁한다는 뜻일까? 자식을 보러 올라오던 지하철에서 아빠가 손을 놓으면서 엄마는 실종되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엄마를 찾는 가족 구성원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엄마를 떠올리게 되고 또 그리워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를 찾아 헤맬 정도라면 진작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자신의 감정을 자세하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너’라는 2인칭 호칭으로 읽는 이를 몰입하게 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엄마라는 부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벅차오른다. 그러므로 구구절절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엄마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만약에 찾았다면 부탁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딸의 외침이 아프게 다가와 많이 울었다는 책마담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다방 안채에선 책방을 오픈하고 문을 닫을 때까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문득, 가족 단톡에서 우리 어머니랑 똑 닮았다며 동생이 올렸던 심순덕 님의 시가 떠올랐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앉아 대충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책마담은 일단 잘 읽히는 책이 제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감정 이입이 되어 절로 읽히는 책, 자신 있게 누군가에게 추천해 줄 수 있는 책, ‘너도 한 번 느껴 봐’라고 권유해 줄 수 있는 그런 책, 즉 감동을 안겨주는 책이 진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책마담에겐 그런 책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옛날 분위기가 흐르는 책다방의 안채에선 책방을 오픈하고 문을 닫을 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여행지에서는 가벼운 주제로”
책다방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관광객이다. 그러다 보니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선호한다. 그래서 책마담은 산문집, 요리책, 여행책, 그림책 등 짧으면서도 굵고 임팩트 있는 책들을 많이 갖다 놓는다. 그림책도 기왕이면 제주도에 어울리는 책들을 골라서 놓는다. 

본인이 가장 즐겨 읽는 책은 요리책이다. 비록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잘하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혼자 잘 차려 먹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혼자 잘 차려 먹게 되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래서 책다방에 요리책을 갖다 놨는데 의외로 잘 팔린다. 아마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책마담은 환히 웃는다. 

모든 걸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씩 는다. 그 무엇도 이길 수 없는 게 꾸준함의 힘이다. 책마담 역시 그렇다. 스포츠 트레이너에서 책방으로 방향을 튼 그는 처음엔 책방 운영이 조금 서툴렀다. 무엇보다도 책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책을 사 가는지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 사서도 아니었고, 그전에는 이처럼 책과 오래 있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본인이 읽었던 책도 공유하면서 전과 달리 책과 오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엔 뛰는 피를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해 주는 공간의 힘이 크다.

약 한 시간을 앉아 있는 동안 삼삼오오 들어오는 손님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책 한 권 사지 않고 그대로 나갔다.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책방임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호기심으로 들르는 사람이 더 많다.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책을 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책마담은 먹고살 만하다. 책을 찾는 이가 아직은 많기 때문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토끼섬을 가까이 둔 월정리 거리마다 문주란꽃이 한창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다방은”
이제 막 이별하셨나요? 이직을 앞두고 계시는가요? 퇴사하셨나요? 힘에 부치시나요? 구좌읍 월정리 책다방을 찾아가 보세요. 책다방 안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며 해결책도 찾아보고 안락함과 여유도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제주시 구좌읍 월정1길 70-1 
영업시간: 11:00~19:00(월요일 휴무, 임시휴무는 SNS로 공지)
인스타: www.instagram.com/bookdabang153_jeju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